행정통합시 20조원 인센티브…짭짤한 '당근'에 솔깃해진 지자체
2026.01.16 11:18
대한민국이 그동안 걸어온 수도권 중심의 성장 방정식이 한계에 부딪혔다. 서울은 비대해진 몸집 탓에 집값 폭등과 교통 지옥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고, 지역은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바로 광역 지방정부 행정통합이다. 단순히 지도를 다시 그리는 수준이 아니라, 생활권과 경제권을 하나로 묶어 지방이 국가 발전의 새로운 축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돈과 권한을 몰아주겠다는 일종의 메가시티 프로젝트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지역균형발전은 지역을 배려하는 정책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존 전략”이라며 역대급 인센티브 보따리를 풀었다.
정부가 제시한 가장 달콤한 ‘당근’은 단연 돈이다. 행정통합을 결정한 통합특별시에는 연간 최대 5조원, 4년간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재정이 투입된다.
(가칭)행정통합 교부세와 행정통합 지원금이라는 새로운 주머니를 만들어 국가 재원을 통째로 재배분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차관은 “충남·대전과 광주·전남에 각각 매년 최대 5조원 수준의 재정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은 주민편의시설 확충과 복지서비스 확대 등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 주력산업을 강화하는 사업에 집중적으로 쓰이게 된다.
단순히 지갑만 채워주는 게 아니다. 어깨에 힘을 실어줄 위상 강화도 확실하다. 통합특별시에는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가 부여된다.
부단체장 수를 4명으로 늘리는 것은 물론, 이들의 직급이 차관급으로 격상된다. 소방본부장이나 기획조정실장 같은 핵심 보직도 1급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인사권과 조직 운영권도 사실상 독립 수준으로 격상된다. 지역 특성을 반영한 실·국 설치가 가능해지고, 소속 공무원의 선발·임용·승진 등 인사 운영의 자율성도 강화된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확대된 권한을 바탕으로 복잡한 행정수요에 더 잘 대응하는,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지방정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활력 마중물이 될 기업과 공공기관 유치 경쟁에서도 통합특별시는 프리패스 권한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27년 추진되는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통합특별시 지역이 우선 고려 대상이다.
홍지선 국토교통부 2차관은 “양질의 공공일자리 창출을 통해 청년인구 유출을 방지하고, 산업 발전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 유치를 위한 혜택도 파격적이다. 입주기업에 고용보조금과 교육훈련지원금을 지원하고, 토지 임대료 및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지방세 감면도 추진한다. 투자진흥지구 등 각종 지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인허가 절차도 대폭 줄여준다.
이번 발표는 199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30년 만에 부활했던 지방자치의 꿈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 총리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며 “바로 지금이 통합의 적기”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국무 총리 소속으로 통합특별시 지원위원회를 설치해 출범부터 성장까지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타파하고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확실히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토록 파격적인 당근을 내놓은 배경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방소멸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는 단순히 지역 격차 문제를 넘어 저출산과 성장 잠재력 하락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 정책은 지방에 서울 수준의 행정 권한과 막대한 재원을 넘겨줌으로써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체급’을 만들어주겠다는 고육책이다.
그럼에도 가장 큰 암초는 통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내 주도권 갈등'이다. 수십 년간 독립적인 행정 구역으로 존재해 온 지자체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 청사 위치 선정이나 산하기관 배치 등을 놓고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은 통합의 동력을 순식간에 갉아먹을 수 있다.
실제로 과거 통합 사례들을 보면 청사 소재지를 두고 지역 간 감정싸움이 격화돼 행정 기능이 마비되거나 통합 논의 자체가 무산된 전례가 적지 않다.
또 '지방 내 양극화'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연 5조원이라는 막대한 인센티브가 특정 통합특별시로 쏠릴 경우, 통합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소외된 인근 중소 도시들은 오히려 더 빠른 소멸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려다 지방 안에서 또 다른 '일극체제'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통합을 반대하는 이들의 지적이다.
재원 조달 문제도 현실적인 난제다. 국가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4년간 20조원이라는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존의 다른 예산을 깎거나 국회의 험난한 문턱을 넘어야 한다.
김 총리 역시 "지역 전체의 이익보다 작은 기득권을 앞세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갈등 조율의 어려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통합특별시 지원위원회를 설치해 출범부터 성장까지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당근'이 지방 소멸을 막는 마법의 열쇠가 될지, 아니면 지역 간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앞으로의 세밀한 이해관계 조정 능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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