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독립 OK, 고립 NO…1.5가구가 뜬다

2026.01.17 00:02

‘느슨한 연대’ 1.5가구 시대
“섬을 보려면 섬을 떠나야 한다.”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단편소설 『미지의 섬』에서 인간을 섬에 비유했다. 인간은 섬처럼 분리된 존재지만 삶을 온전히 이해하며 살아가려면 그 고립에서 한발 멀어져야 한다는 역설이다. 이런 인식은 오늘날 1인 가구의 현실과도 겹쳐진다. 독립은 일상이 됐지만 고립은 여전히 낯설다. 1인 가구 800만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 속 개인은 고립과 연결 사이에서 날마다 저마다의 생존법을 찾고 있다.

혼자 살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는 ‘1.5가구’의 등장도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1.5가구는 전통적인 가족도, 철저히 고립된 1인 가구도 아닌 중간 지대에 가깝다. 각자의 삶은 독립돼 있지만 필요할 때 기대고 연결될 수 있는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1.5가구는 가족의 해체가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라며 “초개인화 사회에서 고립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생활 전략”이라고 진단했다.

1인 가구는 이미 특정 세대나 계층의 단위를 넘어섰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국내 1인 가구는 804만5000가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가구 중 비율도 36.1%에 달한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한국 사회의 대세로 자리 잡은 ‘나홀로족’들이 1인 가구의 단점과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0.5가구’를 더하며 변신을 꾀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혼자가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따로 또 같이’ 0.5의 연결을 찾다
정유진(36)씨는 4년 전 이직과 동시에 독립했다. 직장 생활에 적응하면 본가로 다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1인 가구를 유지하고 있다. 정씨는 평일엔 서울 도심 원룸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엔 부모가 사는 경기도 용인에서 주로 지낸다. 병원·세탁소 등 본가 주변 편의시설을 이용한 뒤 일요일 저녁에 어머니가 챙겨준 반찬을 들고 혼자 사는 오피스텔로 되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이 같은 정씨의 생활은 전형적인 1인 가구도, 과거의 가족 동거 방식과도 다르다. 그는 “아프거나 필요할 때는 가족에게 기대고, 그렇지 않을 때는 혼자만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지금 방식이 훨씬 편하다”며 “부모님과의 관계도 오히려 더 돈독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씨의 생활 패턴처럼 1.5가구는 관계의 밀도는 낮추되 완전히 끊지는 않는 방식으로 종종 나타난다. 가족 중심의 동거에서는 벗어나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고립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 선택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형태를 1.5가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이와 관련,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 연구팀은 ‘2026년 주목할 만한 10가지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중 하나로 1.5가구를 들며 “독립적인 거주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정서적·경제적·사회적 연결망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가구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도 “1.5가구는 자주성은 지키되 완전한 고립(1)이나 결합(2)도 아닌, 느슨한 연대감(0.5)을 더하려는 욕구를 담은 키워드”라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이와 비슷한 개념이 등장했다. 비혼과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개인 공간을 유지한 채 최소한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생활 방식인 ‘준공동체’와 ‘느슨한 가족’이 확산되면서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도 이와 유사한 흐름 속에서 1.5가구라는 새로운 형식의 거주 방식이 주목받고 있는 모습이다.

독서모임·동호회 등 다양한 교류 추세
친구·연인과 동거하면서도 독립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독립 지향형’ 1.5가구도 인기다. 부산이 고향인 김나영(29)씨는 친구와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 살고 있다. 각자 집은 따로 쓰지만 주 2~3회 함께 저녁을 먹거나 반찬을 나눈다. 김씨는 “혼자 살지만 늘 혼자인 느낌이 아니라는 점에서 만족스럽다”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같이 살자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혼자 지내기엔 왠지 불안했는데, 필요할 때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게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타인과 공간을 기꺼이 공유하는 ‘시설 지향형’ 선택도 늘고 있다. 코리빙(co-living)이나 셰어하우스가 대표적이다. 공유 주거서비스 업체인 ‘맹그로브’는 신촌·동대문 등 서울시내 4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업체 관계자는 “각 방은 독립된 공간으로 유지하면서도 거실·주방 등 공용 공간을 통해 원하면 언제든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공유 주거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는 박지호(32)씨는 “퇴근하고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힘들다 보니 그 대안으로 완전한 동거 대신 느슨한 공동체를 택하게 됐다”며 “내부 운동시설이나 커뮤니티도 활성화돼 있어 혼자 살 때의 단점이 많이 상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최근 확산하는 코리빙이나 느슨한 동거 형태는 ‘함께 사는 것’은 꺼리면서도 ‘완전히 혼자인 상태’는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며 “갈등을 감수하며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연결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려는 이런 흐름은 앞으로의 주거 정책과 도시 설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간 1인 가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꾸준히 변해 왔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인 가구는 ‘고시원’이나 ‘자취’로 대표되다 보니 경제적 결핍을 전제하거나 ‘독신’이란 전통적 가족 질서에서 벗어난 예외적 상태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랬던 1인 가구는 2010년을 전후로 하나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울시 1인 가구 수가 최초로 4인 가구 수를 앞지른 시점도 바로 이때였다. 이후 2013년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가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켰고 ‘낯섦’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혼밥’ ‘혼술’ ‘혼행’도 어느새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1인 가구의 증가와 1.5가구로의 변신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생애주기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생애 경로는 약화된 반면 개인의 선택과 속도를 존중하는 흐름은 한층 강해지면서다. 여기에 학업과 취업을 이유로 독립하는 청년 세대는 물론 결혼 자체를 미루거나 아예 비혼을 택하는 인구가 갈수록 늘면서 1인 가구가 전 세대로 빠르게 퍼져 나가게 됐다. 시대 변화에 따라 한때 예외적인 거주 형태였던 게 가장 비중이 큰 대세 가구로 탈바꿈한 셈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하지만 혼자 사는 라이프 스타일은 필연적으로 삶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보호’와 ‘연결’이란 다가구 형태의 장점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1.5가구가 등장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국가데이터처 조사에서도 ‘자주 또는 가끔 외롭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1인 가구는 48.9%로 전체 가구 평균(38.2%)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인간관계에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도 1인 가구(51.1%)가 전체 가구 평균(55.5%)보다 낮았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이런 간극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1인 가구 중 ‘우울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3.5%였다. 몸이 아플 때는 68.9%가, 돈이 필요할 때는 45.6%가 도움 받을 곳이 있다고 답했다. 모두 전체 가구 평균보다 5~6%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평소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질병이나 실직 같은 변수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공유거실·주방 쓰는 셰어하우스 인기
수도권의 한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장성훈(45)씨는 대학 시절 고시원에서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다. 장씨는 “그땐 온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는 날도 많았다”며 “혼자 산다는 건 곧 버티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현재도 혼자 사는 그는 몇 년 전부터 지역 독서 모임과 러닝 크루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장씨는 “20대 시절에 비해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인 외로움이나 공허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며 “혼자 살수록 지속적으로 안부도 묻고 소통도 하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주 1회 이상은 동호회 활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인 가구가 늘었다는 사실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혼자 사는 삶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특히 1인 가구의 외로움은 개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고립에서 비롯된 사회적 현상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여건을 떠나 타인과의 교류 확대는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1.5가구로의 변신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기존 제도들은 여전히 혼인과 동거 가족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보니 1.5가구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비혼 청년에 중장년 실직자와 독거노인 등 다양한 배경의 1인 가구가 늘면서 이제 혼자 사는 삶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들이 처한 현실과 요구가 각각 다른 만큼 정부나 지자체도 획일적 접근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의 다른 소식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의 운세/1월 17일]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어린이 책]정호승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책의 향기]가난한 농촌 소년이 노벨상을 타기까지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의 운세] 1월 17일 토요일 (음력 11월 29일) 띠별 운세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금주 OTT 신작] '솔로지옥',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등 공개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AI 괴물’ 막으려면, 도출된 답변보다 풀이 과정 잘 살펴야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로몬, 첫 로코는 로코요정 김혜윤과 함께 "누나와 함께해 영광"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김혜윤-로몬, '혐관' 시작 알리는 첫 만남 포착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