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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의 중국萬窓] ‘기정화벽’(旗亭畵壁)… 술집에서 詩 겨룬 唐 왕지환·왕창령·고적

2026.05.15 06:00



왕지환(王之渙)과 왕창령 (王昌齡), 그리고 고적 (高適)은 중국 당(唐)나라의 전성기인 성당(盛唐) 시기를 대표하는 세 시인으로 꼽힌다. 이들은 특히 변방의 풍경과 군인들의 삶을 노래한 ‘변새시’(邊塞詩)로 유명하다.

왕지환 (王之渙, 688~742)은 작품 수는 적지만 남긴 시들이 하나같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천재형’ 시인으로, 호방하고 시원시원한 기상이 특징이다. 대표작 ‘등작관루’( 登鸛雀樓·관작루에 올라)의 “더 멀리 보고자 한계단을 더 오르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라는 구절은 지금도 회자된다. 이 두 구절은 선가(禪家)의 화두로도 활용된다.

변방의 황량함을 노래한 ‘양주사’(凉州詞)의 “봄바람은 옥문관을 넘지 못하네”(春風不度玉門關·춘풍불도옥문관) 또한 명구다. 옥문관(玉門關)은 당시 당나라 서쪽 변방의 관문으로, 그 너머는 풀 한 포기 나기 힘든 황량한 사막 지대였다.

왕창령 (王昌齡, 698~757)은 ‘칠절성수’(七絶聖手)로 불릴 만큼 짧은 시의 대가다. ‘칠언절구의 성인’이라는 뜻이다. 변방의 풍경을 다룬 변새시뿐만 아니라 여인의 한을 노래한 시(궁원시)에도 능했다. “진나라 때 밝은 달과 한나라 때 변방의 성문”(秦時明月漢時關·진시명월한시관)으로 시작하는 대표작 ‘출새’(出塞)는 전쟁의 비애를 담고 있다.

고적 (高適, 706?~765)은 젊은 시절 매우 가난했고, 꽤 늦은 나이까지 변변한 직업 없이 천하를 유랑하며 지내다 인생 후반기 운이 틔여 절도사 등을 지냈다. 당대 최고의 시인인 이백, 두보와 절친해 함께 여행도 한 그의 시는 사실적이고 힘이 넘치며, 변방 군사들의 고난을 깊이 있게 통찰했다.

대표작 ‘연가행’(燕歌行)은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변새시의 걸작이다. “가는 앞길에 나를 알아주는 이 없을까 걱정 말게, 천하에 그대를 모르는 이 누 있으랴”(莫愁前路無知己, 天下誰人不識君·막수전로무지기, 천하수인부지군)라는 구절로 유명한 ‘별동대’(別董大)도 잘 알려져 있다. 친구 동대(董大)와 헤어지며 남긴 시다.

이들 세 사람은 매우 친한 사이였는데 ‘기정화벽’(旗亭畵壁)이라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온다. ‘술집인 기정 벽에 가로세로 줄을 그어 표시한다’는 뜻으로, 세 시인이 술집에서 벌인 유명한 시 시합 일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화집인 ‘당재자전’(唐才子傳)에 기록돼 있다.

중국 산시성(山西省)에 있는 관작루(鸛雀樓)는 고대 누각중 하나다. 황학루,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사대 누각으로 불린다. [위키피디아]


세 시인은 어느 추운 겨울날, 낙양의 술집 기정(旗亭)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곳에선 여러 가희들이 악공의 연주에 맞춰 당시 유행하던 시들을 노래로 불렀다. 이를 본 세 사람은 재미삼아 “가희들이 우리 셋 중 누구의 시를 가장 많이 노래하는지 내기하자”며 술집 벽에 가로세로 줄을 그어, 자신의 시가 노래될 때마다 그 칸에 표시를 하기로 했다.

첫 가희가 친구 신점을 보내며 자신의 결백하고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왕창령의 시 ‘부용루송신점’(芙蓉樓送辛漸)을 부르자 왕창령은 기뻐하며 벽에 한 줄을 그었다. 두 번째 가희가 먼저 세상을 떠난 절친한 친구(단부현의 주부였던 인물)를 애도하며 지은 고적의 시 ‘곡단부양구소부’(哭單父梁九少府)를 노래하자 이번엔 고적이 벽에 한 줄을 그으며 웃었다. 세 번째 가희는 다시 한나라 때 총애를 잃고 장신궁에 갇혀 지내던 첩의 슬픔을 노래한 왕창령의 시 ‘장신추원’(長信秋怨)를 부르자 왕창령은 두 줄이 됐다.

왕지환은 자신의 시가 불리지 않자 여유로운 표정으로 “지금 노래하는 가희들은 평범한 실력자들이라 내 격조 높은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이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가장 아름답고 실력이 뛰어난 가희를 가리키며, “저 여자가 내 시를 부르지 않는다면 평생 자네들에게 고개를 들지 않겠네”라고 호언장담했다. 드디어 그 가희가 노래를 시작했는데, 그 곡이 바로 “황하는 멀리 흰 구름 사이로 흐르고, 외로운 성 하나 만 길 높은 산에 솟아 있네”(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黵山·황하원상백운간, 일편고성만인산)라는 왕지환의 명시 ‘양주사’(凉州詞)였다.

이를 들은 세 시인은 크게 웃으며 술을 마셨고, 내기 사실을 알게 된 가희와 악공들은 이들이 당대 최고의 시인들임을 알고 정중히 대접했다고 전해진다. 세 사람의 시가 당시 대중들에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시((詩)의 시대’로 불리는 당(唐)대에는 시인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적지 않다. 가도(賈島)의 ‘퇴고’(推敲) 이야기도 유명하다. ‘퇴’(推)는 밀다, ‘고’(敲)는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퇴고는 글을 쓸 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여러 번 다듬는 과정을 말한다.

가도가 어느 날 나귀를 타고 가며 시를 짓고 있었다. 그때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라는 싯구가 떠올랐다. 가도는 고민에 빠진다. 문을 ‘민다’(推, 퇴)고 할지, 아니면 ‘두드린다’(敲, 고)가 더 좋을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나귀 위에서 손으로 문을 미는 시늉과 두드리는 시늉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는 생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당시 고위 관료였던 시인 한유(韓愈)의 행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유는 “두드리는 쪽(敲)이 운치가 있네”라고 조언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신분을 초월한 친구가 됐다. ‘퇴고’라는 단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이백(李白)과 하지장(賀知章)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하늘에서 유배 온 신선’으로 불린 이백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 당시 원로였던 하지장을 찾아가 ‘촉도난’(蜀道難·촉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이라는 시를 보여줬다. 시를 읽은 하지장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백을 보며 “그대는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유배 온 신선(謫仙人·적선인)이구려!”라고 감탄했다. 흥분한 하지장은 술을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돈이 없자, 자신이 차고 있던 금거북 장식을 풀어 술과 바꿨다. 금거북이를 풀어 술을 샀다는 ‘해금귀환주’(解金龜換酒)의 유래다.

시인 장적(張籍)의 엉뚱한 행동도 일화로 남아 있다. 장적은 두보(杜甫)의 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두보의 시집을 불태워 그 재를 기름과 섞어 매일 아침 먹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묻자, 장적은 “이렇게 하면 내 창자 속에 두보의 시 기운이 남아 나도 그런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네”라고 답했다. 진정한 ‘팬심’이 부른 기행(奇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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