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살인자의 추억을 들었다, 세상을 읽었다[책과 삶]
2026.05.15 06:00
사건 14년 뒤 직접 만나 인터뷰
‘보험금 노린 악녀’ 프레임이 놓친
도박·성폭력 등 사회 문제 압축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
후무칭 지음 |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436쪽 | 2만5000원
나, 린위루는 1981년 타이완 타이난에서 태어났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농촌이었죠. 위로는 오빠와 두 언니가 있어요. 부모님이 모두 외지에서 일해 나는 조부모와 살았습니다. 인자하던 할아버지가 류허차이(복권 추첨 결과에 돈을 거는 불법 도박)에 빠지면서 집안이 흔들렸습니다. 오빠의 성폭력은 내 삶에 오래도록 드리울 그림자가 됐어요. 나는 중학교 육상부 에이스였고, 고등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했어요. 아버지가 공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떠나신 뒤 나는 다시 방황했습니다.
졸업 후 큰언니와 함께 유흥주점에서 일했어요. 끈질기게 구애한 손님 류위항이 청혼해 받아들였습니다. 두부 가게 자손인 남편은 끈기가 없고 놀기만 좋아했어요. 리니지, 류허차이, 프로야구 베팅, 온라인 마작에 빠져 있었죠. 나는 임신중지와 자살시도를 거듭하다가 가족의 설득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자애롭지만 알코올 의존증이 있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온 가족 명의로 보험을 들었습니다.
내가 친정엄마를 찾아갔을 때 일이 생겼어요. 남편이 내게 돌아가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를 우발적으로 계단에서 밀었거든요. 겁이 난 우리는 그대로 도망쳤고, 이후 엄마는 추락사로 처리됐습니다. 난 보험금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정정하시던 시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더니 입원 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슬퍼하기는커녕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타내라고 종용했습니다. 남편이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독극물을 수액에 주입해 시어머니를 살해한 것이었어요. 남편은 내게 경찰에 신고한다면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나는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한 것처럼 남편에게 했어요. 그래요, 내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졸업 후 큰언니와 함께 유흥주점에서 일했어요. 끈질기게 구애한 손님 류위항이 청혼해 받아들였습니다. 두부 가게 자손인 남편은 끈기가 없고 놀기만 좋아했어요. 리니지, 류허차이, 프로야구 베팅, 온라인 마작에 빠져 있었죠. 나는 임신중지와 자살시도를 거듭하다가 가족의 설득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자애롭지만 알코올 의존증이 있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온 가족 명의로 보험을 들었습니다.
내가 친정엄마를 찾아갔을 때 일이 생겼어요. 남편이 내게 돌아가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엄마를 우발적으로 계단에서 밀었거든요. 겁이 난 우리는 그대로 도망쳤고, 이후 엄마는 추락사로 처리됐습니다. 난 보험금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정정하시던 시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더니 입원 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슬퍼하기는커녕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보험금을 타내라고 종용했습니다. 남편이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독극물을 수액에 주입해 시어머니를 살해한 것이었어요. 남편은 내게 경찰에 신고한다면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나는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한 것처럼 남편에게 했어요. 그래요, 내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간추린 ‘자서전’의 화자는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사형 판결을 확정받은 린위루다. 지금까지 타이완에서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성은 4명이며, 아직 형이 집행되지 않은 이는 린위루가 유일하다. 당시 타이완 언론에선 이 사건을 ‘패륜며느리’ ‘검은과부거미’ ‘보험금을 노린 살인’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기자 후무칭은 사건 14년 뒤인 2022년 여전히 수감 중인 린위루를 처음 만나 말했다. “저는 여전히 알고 싶습니다. 당신은 왜 남편을 살해하는 길을 선택한 건가요?”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온 린위루는 후무칭의 열의에 감화됐는지 면회와 편지 등으로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은 3년여에 걸친 후무칭의 린위루 취재기, 린위루의 자서전, 취재 과정에 대한 성찰 등으로 구성된 논픽션이다.
사건 발생 당시 대부분 미디어의 반응처럼 린위루를 ‘보험금을 노리고 친족을 독살한 악녀’로 파악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반대로 가정폭력을 행사한 남편에게 저항한 가련한 피해자로 보는 것도 간단한 일이다.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은 저자의 ‘망설임’ 흔적이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면서도 그의 진술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검경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허점을 검증한다. 린위루의 범죄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당시의 남아선호사상, 가정폭력, 성폭력, 도박, 빈곤, 산업재해 등 온갖 사회적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밝혀낸다.
린위루가 한참 뒤 후무칭에게 보내온 자서전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자서전에서 린위루는 큰언니에게 오빠의 성폭력을 알렸다고 했지만, 정작 후무칭이 어렵게 만난 큰언니는 이를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린위루가 가장 끔찍한 기억이라고 했던 일의 진위가 모호해진 것이다. 자서전에서 린위루는 자신이 조폭 수십 명을 동원해 억울한 일을 해결했다고 했지만, 당시 린위루가 이 정도의 권력을 갖고 있었을 리 없다. 두부 가게 주변 상인은 린위루가 ‘포악한 악처’라고 했고, 보험설계사는 린위루가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고 호의적으로 말했다.
린위루 자서전에서 가정폭력범이자 도박중독자로 묘사되는 남편 류위항 역시 단선적인 악당은 아니다. 주변 인물들은 그가 학창 시절 성실한 배드민턴 선수였다고 증언했다. 운동 실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가정이 붕괴하면서 류위항은 도박에 빠졌다. 1980년대 고도성장기 타이완 시중에는 유휴자금이 넘쳐났다. 사회에 불확실성과 불안심리가 퍼지자 류위항처럼 직업적 안정성이 적은 노동자, 소상공인은 돈벌이 혹은 도박에 집착했다.
순백의 진실은 없을지도 모른다. 거짓이 섞여 있다 해도 일부는 진실이다. 린위루의 자서전도 그렇다. 후무칭은 “린위루의 이야기에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가정이 주는 중압감, 반복된 낙태, 가정폭력, 그리고 부부간의 성폭행 등 타이완 여성 다수가 공통적으로 겪어온 현상이 압축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후무칭은 취재 윤리에 대한 고민도 드러낸다. 린위루가 수시로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안정적인 면회시간 확보를 위해 동성결혼을 제안하자 크게 당황하기도 한다. 그는 완전히 객관적인 관찰자를 자청하는 대신,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한 자신의 외할아버지, 그를 피해 어린 나이에 가출한 어머니 이야기도 썼다. 후무칭은 린위루의 진실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무엇을 보았는지 독자에게 알리되 판단은 유보한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범인인가 아닌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라고 캐묻는 사람들에게 후무칭은 “애초에 이해란 불가능한 일”이며 “이해라는 것은 사실 끊임없이 다가서려는 과정일 뿐”이라고 답한다. 후무칭이 인용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처럼 “이야기나 주제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그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책 말미에는 후무칭이 사형수 이야기를 취재해온 작가 장쥐안펀과 대담한 내용이 실렸다. 사형제 폐지론과 존치론이 맞서고 있는 타이완에서 린위루 사건 역시 확정 판결의 정당성을 다툴 법적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중학교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