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유령과 미래로 나아가는 ‘1인칭 여자’ [.txt]
2026.05.15 05:04
지적 대화·에로스 충만한 삶과 문학의 동반자
“오스터가 읽지 않은 첫 책” 통해 상실 탐구
“폴 오스터와 부부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질문받던 여성은 이렇게 소회를 더 풀어뒀다. “어느 배우자가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나. 폴은 나더러 이렇게 대답하라고 했다. 세상에, 그가 침실에서 얼마나 굉장한지 말해도 못 믿을걸요. 나는 눈을 굴리는 것으로 그 제안에 반응했다.”
영미권과 동시에 국내 출간된 ‘유령 이야기’ 속 대목이다. 이 장면으로부터 확장해 가는 사유의 향방이 책의 별난 속성 하나를 말해준다.
“누구누구와 부부로 산다는 건 어떤가, 하는 질문은 나와 너 간 대화로서의 친밀한 결혼 관계라는 현실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너를 3인칭의 그, 폴 오스터라는 문화상품으로 대체해 버린다.”
지은이는 더 나아간다. “3인칭의 삶에 사활을 건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는 많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 조회 수의 공개시장에서 상품이 되어버린 그 이미지가 최고로 중요하다. 어떤 유명인들은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 더욱 섬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도 그런다는 것이다.” “3인칭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과는 아무도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인용한 대목부터가 그렇다. 2024년 4월 말 폐암으로 부고를 알려 온 오스터로부터 비롯하되, 세태·세계적 인식으로까지 전개된다. 미국 문단의 아이콘처럼 유명세를 누렸으나 결코 ‘3인칭’이 되길 용납하지 않았던 오스터를 기억하고, “내 남편의 부속물처럼 취급받는 것”을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응답해 간 허스트베트가 ―부고로 남편의 명성을 새삼 더 확인할 수밖에 없던 와중에― 자신을 건사하는 일의 ‘반복’적 형상과도 같다.
‘반복’은 무엇인가. 허스트베트는 오래전 오스터에게 보낸 팩스를 되읽는다. 용건 대신 사랑의 메시지만 다시금 남기고 말았던 것인데, 이유가 이랬다. “키르케고르는 반복이 회상과는 달리 의지이자 활력이라고 말했는데, 물론 맞는 말이야. 그러니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걸 나는 반복해. 그리고 그 반복이 곧 우리 삶이지. 이게, 나의 사랑,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회상되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인 반면, 진정한 반복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회상된다”는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의 소설(‘반복’) 속 문구대로, 반복하고 반복함으로써 이제 한쪽이 사라지고도 여전히 둘이 사라지지 않는 1인칭들의 애도가 바로 ‘유령 이야기’라 하겠다.
“나는 살아있다. 내 남편 폴 오스터는 죽었다. (…)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건, 폴의 죽음 이후 시간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교란되리란 것이었다”로 책은 시작하거니와, 이후 시간이 묘연할수록 지난 43년은 선명해진다.
둘은 1981년 2월 한 시인의 시 낭송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3살짜리 아들 하나를 둔 채 리디아 데이비스(79)와 별거 중이던 34살 시인 오스터와 “저녁 내내 (먼저) 들이대”던 26살 대학원생 허스트베트. 오스터는 뒷날 고백한다. ‘당신을 안 만났다면 내게 일어났을 일은 ‘유리의 도시’와 비슷했겠다’고. 시 쓰고 번역하던 오스터가 출판사 17곳으로부터 거절당한 뒤 캘리포니아의 한 독립 출판사를 통해 1985년 펴낸 첫 소설책(‘뉴욕 3부작’의 첫번째)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채 필명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35살 다니엘 퀸이 주인공이다. ‘우연’―오스터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열쇳말이라 하겠다―에 의해 탐정 노릇을 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급기야 제 정체성의 붕괴와 함께 퀸은 말미 강박적으로 문장을 써나간다. 작중 삽화처럼 아내 ‘시리’와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작가 폴 오스터가 등장한다. 부부가 “브루클린에 함께 살림을 차린 후” 쓰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빨간색 속옷을 입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광고 출연을 일본 회사로부터 거액으로 제안받을 만큼 ―물론 거절했다― 국외 인기도 구가했던 오스터는 “우리 집에서 지식인은 내가 아니라 시리다. 예를 들어 라캉과 바흐친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건 시리한테 배운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43년간 서로의 글을 읽고 고쳐주었다”는 허스트베트의 말대로, 둘은 서로의 문학에 자신도 모르게 ‘삼투’하던 반려자인 셈. 남편이 ‘선셋 파크’(2010)에 쓰려던 문장이 아내의 ‘미국인의 슬픔’(2008)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거나, 아내의 ‘미래의 기억’(2019) 초고 문장이 남편의 ‘달의 궁전’(1989) 문장 그대로였다는 일화는 일부에 불과하다.
부부의 삶은 대화 그 자체다. 오스터도 대외적으로 침묵했던 그의 첫째 아들 다니엘과 손녀의 약물 중독사, 그것으로 ‘3인칭’처럼 언론에 오르내리던 아버지 오스터의 마음과 처지 또한 허스트베트 말곤 증언할 이가 없다. 한편으론 오스터가 허스트베트와 얻은 딸의 아들, 즉 손자에게 남긴 따뜻한 편지들로 회고록의 한 축을 구성한 함의를 가늠케 한다.
“출간 전에 폴이 읽지 않은 나의 첫번째 책”이라고 책을 소개하는 허스트베트는 이제 온전히 1인칭으로서 단 한명을 갈망하며 쓴다.
“나는 지면에 피를 쏟듯 단어 하나하나를 써내”라고 말하던,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어 보라는 아내의 간청에 유작 ‘바움가트너’ 탈고 뒤 “다 읽고 나서 기뻐 붉어진 얼굴로 걸작이라” 말하던, 트럼프를 입에 담지 않으려 “45”(45대 대통령)라고만 부르던, 유대인으로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를 “어리석고 사악하다”고 비난하던, 암 치료 중에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주 육체적 사랑”을 나눴던, 그러나 죽기 사흘 전 ‘성욕이 사라져 버렸다’며 놀라워하던 오스터를 기억하며, “과거를 원한다”고, “애도하는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고, “처음 만났을 때의 당당하고 멋진 젊은 폴”이 아니라 “항암 치료로 짓눌리기 전의 늙은 폴이 간절히 그립다”고 쓴다. 그 마음을 반복하여, 허스트베트는 홀로 그러나 유령과 함께 나아가려는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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