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다] 전시·건축·창작이 공존…‘백자’ 600년 시간을 잇다
2026.05.15 05:02
조선건국 기원 품고 금강산 묻힌 사발
왕실그릇으로 이어진 백자의 시원지
2006년 개관 이후 1700여점 전시
양구 백토로 빚은 작품들 시선 압도
건축상 받은 수려한 건물 자랑거리
‘이성계 발원 사리구’ 6월에 특별전
그로부터 500여년이 지난 1932년, 이 백자는 강원도청이 산불 저지선을 구축하려 땅을 파던 중 석함(돌상자) 속에서 다른 기물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발 바닥에 새겨진 ‘방산사기장 심룡’이라는 구절은 이 백자가 양구 방산의 장인 심룡이 그곳의 흙으로 빚어 올린 그릇임을 알려주는 결정적 단서였다.
양구 백토의 가치는 ‘숙종실록’에서도 확인된다. 숙종 35년(1709년), 양구 백토 채굴이 몹시 고되 백성에게 부담이 되자 다른 고을의 흙을 옮겨 쓰도록 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임금의 수라와 식기를 맡던 사옹원이 “양구 백토가 아니면 그릇이 거칠고 흠이 생긴다”고 아뢴다. 그만큼 이 흙의 쓰임새는 특별했다. 하얀 빛깔과 빚기 좋은 성질 덕에 양구산 흙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이던 백자를 빚는 데 빠질 수 없었다.
최북단, 첩첩산중 양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여러 사료가 보여주듯 양구는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백자 생산의 핵심지였고, 그 원료인 백토의 주요 산지였다.
백미는 ‘천개의 빛이 되다’ 전시실이다. 전국 작가 1000명에게 양구 백토를 나눠주고, 그 흙으로 만든 작품 1000여점을 기증받았다. 3년에 걸쳐 모은 결과물이 켜켜이 쌓여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고개를 하늘로 젖혀 올려 바라본 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리벽 속으로 빛과 작품이 뒤섞여 황홀경을 이룬다. 이 앞에 선 관람객은 압도적인 규모와 밀도가 만들어내는 울림을 온몸으로 느낀다.
이 박물관이 흥미로운 진짜 이유는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아서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에선 지금도 창작이 이어진다. 도예가가 머물며 흙을 만지고 장작 가마에 불을 지피며 새로운 작품을 빚어낸다. 기획전시실에선 6월21일까지 ‘머무름의 결과 展(전)’이란 이름으로 입주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이는 발표전이 열린다.
해외 작가의 참여도 활발하다. 호주 도예가 스티브 해리슨은 “여러차례 한국을 찾아 양구 백토를 연구했다”며 “이번엔 양구공예창작스튜디오에 3개월간 머물며 이 흙으로 달항아리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6월27일, 양구백자박물관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한층 특별한 전시를 열겠다며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바로 1932년 금강산에서 출토한 이성계 발원 사리구 중 백자 사발 네점을 3개월간 선보이는 것이다. 이 도자는 2017년 보물 제1925호로 지정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중인데, 양구에서 만든 사기가 수백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정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과 5개월간의 협의 끝에 유물을 대여해 전시를 열 수 있게 됐다”며 “인구가 1100여명 남짓한 방산면에 백자를 보러 찾아오게 하는 매력 가득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구를 조선백자의 시원지로 각인시키고, 백자의 핵심 원료가 양구 백토라는 사실만 제대로 알려도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600여년의 시간을 건너온 백자. 조선 건국을 앞두고 창업 마음을 아로새긴 이 도자를, 그것이 빚어진 흙과 역사를 품은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올여름 양구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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