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전
싸움 끝에 떠난 구례, 다시 숨 쉬게 하다[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2026.05.14 23:01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부싸움의 해법으로 구례행을 결정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을 만큼 완벽하게 좋았다. 첫 번째 숙소는 구례 파도길에 있는 ‘파도길65’였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박성언 사진작가. 구례에 머물며 찍은 부추꽃과 맨드라미, 엉겅퀴꽃 사진을 함께 전시했던 터라 내게는 더없이 편안한 분이다. 좋은 샴페인 한 병을 챙기고 변승훈 작가의 분청도자도 정성껏 포장해 안겨 드렸다. 이심전심이라고, 작가는 바비큐를 준비해 주셨다. 어둠이 내리고, 요새 한창 다시 듣는 김조한의 히트곡 ‘사랑에 빠지고 싶다’를 틀고 와인을 꺼낸 후 숯불을 피워 차돌박이와 등심을 구웠다.
땅거미가 내리니 언덕배기에 자리한 작가의 집이 한층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원에는 불두화가 한창이고, 저 멀리 계족산 산세가 푸른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이번 여행에는 중학교 2학년 막내도 함께했는데,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은 아이에게 작가는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에이, 벌써부터 걱정 안 해도 돼. 성실하기만 하면 다 살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한데, 그건 또 한 번에 안 찾아져. 이 길 저 길 계속 가 보고 경험하는 수밖에 없어. 보물찾기랑 똑같아. 그리고 인생은 아무도 몰라. 아줌마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구례에 살잖아(웃음).”
두 번째 숙소는 우리의 오랜 단골인 ‘산에사네’였다. 첫째 아이가 어릴 때부터 왔으니 10년도 훌쩍 넘은 인연이다. 우리가 ‘지리산 팅커벨’이라 부를 만큼 사랑스럽고 환한 기운의 사장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다. 단단하고 지혜로운 분이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삶이 한결 가뿐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침 밥상. 두릅과 오가피, 다래순과 취나물을 포함해 지리산 자락에서 직접 채취한 제철 산나물과 장아찌가 풍년처럼 올라오는 밥상을 감자된장국과 함께 먹고 있으면 속이 꽉 차고 가슴도 쫙 펴진다. 아침상을 물린 후에는 사장님 일에 손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오늘의 일은 남편분이 잘라두고 간 산뽕나무 가지에서 어린 순을 톡톡 따 모으는 것. 전동가위로 제법 굵은 가지를 쓱쓱 손쉽게 잘라내던 모습도 신세계였다.
돌아오는 길, 사장님은 캐모마일과 루콜라를 한가득 싸 주셨다. 단골 숙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우리에게 찾아갈 시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싸우기 전에 미리 일정을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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