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00km 밟아보니, 고속도로 운전도 할 만하네
2026.05.14 20:06
2023년부터 생긴 불안장애로 일상의 영역이 좁아진 사람이 도전하지 못했거나 도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는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첫 번째 공황장애를 겪은 공간은 2022년의 어느 저녁, 달리는 택시 안이었다. 새벽의 텅 빈 도로 위를 택시는 시속 100km를 훌쩍 넘겼고, 그 순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그 기억이 몸에 새겨진 탓인지, 그 후로 나는 속도가 나는 것들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속도로였다.
나는 서른 중반을 넘긴 2023년 운전면허를 땄다. 혹시라도 장롱면허가 될까 봐 면허를 따자마자 서울 시내는 꽤 부지런히 운전하고 다녔다. 그런데도 면허 경력 3년 차가 되도록 고속도로는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엄마의 한 마디
| ▲ 고속도로 운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 samuele_piccarini on Unsplash |
사실 애초에 면허를 딸 생각조차 없었다. 당시의 나는 불안 증세가 심해 지하철조차 혼자 제대로 타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에게 자동차 운전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엄마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매주 병원에 모시고 다니려면 차가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신기하게도 운전은 처음엔 무서웠지만, 지하철보다는 훨씬 덜 불안했다.
면허를 딴 뒤 나는 항암치료를 받는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오가며 매주 왕복 두세 시간씩 운전했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같은 서울의 자동차전용도로는 익숙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고속도로만큼은 끝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속 100km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미루면 미룰수록 그 두려움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이 정도 운전하는데 고속도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지만 나는 끝내 운전이 두려운 진짜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운전하다가 공황이 올까 봐 무섭다는 말. 엄마는 내가 그런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올해 내 목표는 '컴포트존 넓히기'였다. 충분히 해볼 만하지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는 것. 그 리스트의 첫 번째가 바로 '고속도로 운전'이었다. 두려움이 더 커지기 전에, 가까운 곳부터 시도하기로 했다.
그렇게 목적지로 잡은 곳은 용인의 호암미술관이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고속도로를 지나야 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포기했던 장소였다. 이번에도 다른 핑계를 대고 물러날까 봐 전시 예매부터 먼저 해버렸다.
고속도로 로망
| ▲ 만남의 광장에서 남긴 나의 첫 고속도로 운전 기념샷. |
| ⓒ 이슬 |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 내비게이션에 찍힌 예상 소요 시간은 1시간 20분. 매주 다니던 병원보다 오히려 거리가 가까웠다. 연휴라 그런지 서울 근교 고속도로는 놀랄 만큼 한산했다. 정체가 없다는 뜻의 초록색 표시가 된 내비게이션 경로를 보고 남편은 "오늘이야말로 고속도로 느낌을 제대로 내며 달릴 수 있겠다"고 했다. 차라리 정체를 바랐는데, 그제야 덜컥 고속도로 운전이 실감났다. '고속도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엄마의 말을 되뇌며 운전석에 앉았다.
남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고속도로를 밟으면 꼭 하고 싶은 로망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들러 식사하기, 다른 하나는 진작 장착된 내 하이패스 카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톨게이트 하이패스 구역을 여유롭게 지나기.
서울을 벗어나 IC에 진입하는 것까지는 아무렇지 않았다. 덕분에 이 두 가지 위시리스트는 순조롭게 완료할 수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만남의 광장 앞에서 나의 고양이 두 마리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를 들고 기념 샷도 남겼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본격적인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됐다. 경부고속도로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길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통영 본가를 갈 때마다 버스를 타고 지났던 도로였기 때문이다. 이 도로를 내가 직접 운전해서 지나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날에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느리게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계기판은 시속 80km를 넘기고 있었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려봤다. 내 한계는 110km 정도였다. 대체로 시속 90~100km 사이를 유지하며 달렸다. 평소라면 시도조차 안 했을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생각보다 안정된 상태였다.
물론 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속도를 버텨내느라 운전석을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깨와 손목이 뻐근했다. 내 옆을 시속 130km 이상으로 보이는 속도로 지나가는 차에 움찔하기도 하고, 가까이 붙는 큰 버스나 화물차에는 아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들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오히려 신호 하나 없이 길게 이어지는 도로가 속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 ▲ 목적지까지의 내비게이션 경로. |
| ⓒ 이슬 |
그렇게 경부고속도로를 20분 남짓 지난 후, 영동고속도로를 아주 짧게 거쳐 호암미술관에 도착했다. 호암미술관 초입에는 초록빛 가로수 터널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운전해 들어가는 순간,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긴장이 풀렸다. 초록의 나무 틈새로 햇살이 눈 부셨다. 직접 오지 않았으면 겪지 못했을, 일 년에 몇 없을 좋은 날씨였다.
미술관에서는 35년생 여성 작가인 김윤신 조각가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좋은 조각 재료를 찾아 무작정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거대한 나무를 직접 톱질하며 작업해 온 그녀의 삶을 마주했다. 어떤 사람은 일찍이 자신의 컴포트존을 발로 걷어차고 살아가고 있었다.
안락함과 모험심은 결국 습관에 가까운 것 아닐까. 나 역시 안락함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싶어졌다. 직접 부딪치면서 조금씩 내 세계를 넓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해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 가지 않으면 끝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익숙한 것만 반복하는 어른으로 살기보다,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계속 살고 싶어졌다.
그렇게 초록의 호암호를 눈에 담으며 다시 서울행 운전대를 잡았다. 돌아가는 길은, 어느새 내 두 번째 고속도로 여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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