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정치화’ 안보 불안 키운다[시평]
2026.05.14 11:53
미국과 러시아 주도한 두 전쟁
국제규범보다 각자도생 요구
한국 안보 환경도 급속히 악화
유엔사 18국 협의체 중요한데
DMZ 출입권 및 전작권 불협화
사관학교 통합 등도 졸속 위험현재 유럽과 중동, 두 지역에서 진행 중인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국제질서를 유지해 오던 유엔이라는 국제규범이 더는 초강대국을 제어하고 통제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명분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적대적 집단방위체제와 국경이 맞닿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이란을 공격한 미국의 전쟁 이유는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저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초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었기에 단시간 내에 종료될 것으로 봤지만 러·우 전쟁은 5년째 계속되고 있고, 미·이란 전쟁도 두 달을 넘기며 간헐적인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전쟁에서도 국제 레짐이나 유엔의 기능이 작동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군대를 개편하며 숨 가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급변하는 세계 안보 환경은 우리나라에도 엄중한 도전으로 다가와 냉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책 마련을 요구한다.
한반도 안보 환경에 상수인 북한은 러·우 전쟁 참여를 통해 최신 전쟁 기술을 습득하고 데이터를 축적했다. 아울러, 러시아로부터 원자력추진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로봇, 드론 등 첨단무기 관련 기술을 전수해 나날이 신기술이 가미된 무기를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종전에 재래식 전투력 면에서는 국군이 우위라고 하던 평가가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핵탄두 소형화를 추진하며 최근에는 헌법까지 개정해 언제든지 지도자의 명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야흐로 동북아에 또 하나의 핵무기를 가진 군사 강국이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비확산 체제 붕괴를 우려하는 국제사회를 향해 기필코 자신들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공포한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오던 평화를 앞세운 대북정책은 신기루가 되고 어렵게 현상 유지해 오던 동북아 세력 균형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사방에서 안보 태세 정비를 더 미뤄선 안 된다는 경종이 울리고 있는데도 우리의 국방은 변화와 요구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매우 유감스럽다.
먼저, 북한의 막무가내식 행보를 중지시키고 변화를 추동할 수 있도록 미국·일본과 보조를 맞추고 세계 18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사 회원국 협의체와의 유대를 강화함은 물론, 당사국으로서 적극적인 역할 수행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권 행사, 전시 작전통제권의 조기 회복 등 현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을 했다. 또한, 풀어야 할 군 내 난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이를 뒤로한 채 여전히 ‘내란 청산’이란 어수선한 틀 속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수년 전부터 시작된 하사와 소위 등 초급 간부 부족 현상은 이제 더는 야전부대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예산 증액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합동성을 키운다며 각군 사관학교를 통합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드론이 현대 전장의 필수품으로 등장해 국방 연구·개발(R&D)에 집중하고 조기에 전력화를 완성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내란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드론작전사령부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분산함으로써 첨단무기 확보와 전력 증강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했다. 그뿐만 아니라, 느닷없이 최전방 경계 병력을 현재의 4분의 1 규모인 6000명 선으로 줄인다고 밝혔는데, 전방 상황을 잘 아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아해할 이상한 구상이다.
해병대를 별도로 독립시켜 4군제로 개편한다거나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해 국방사관대학교를 만드는 것 등의 사업은 최소한 군의 상부구조 개편과 통합군 체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결단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충분한 고민도 하지 않고 목표부터 제시한 것은 전형적인 정치 행위로서, 군을 대변해야 할 국방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
북한의 계속되는 핵 무력 위협과 국제정세의 변화가 엄중하기만 한데, 국민의 안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든든한 국방의 모습은 과연 언제쯤이나 볼 수 있게 될까.
| 권태오 전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 대표, 예비역 육군 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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