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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타고 ‘K-가성비’에 눈뜨다…외국인 ‘쇼핑 관광’ [스페셜리포트]

2026.05.13 21:01

# 이마트24 K-푸드랩 명동점은 지난 3월 개점 이후 한 달간(3월 18일~4월 17일) 일평균 매출이 이마트24 전체 점포 대비 약 2.9배, 일평균 객수는 3.2배 이상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170여종의 라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라면 아카이브’ 등이 입소문을 타며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장민정 이마트24 K-푸드랩 명동점장은 “전체 고객의 70% 이상이 외국인이다. 하루 일정을 마친 뒤 한국식 라면을 체험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늦은 밤 시간대에는 외국인 비중이 90%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476만명.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올 1분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다. 지난해 1분기보다 23% 증가했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 외국인 관광객은 사상 처음으로 2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의 전망치는 약 2130만명. 지난해(1894만명)보다 12% 성장을 기대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K팝, K드라마, K푸드 등 다양하지만, 최근 결정적인 가속 페달이 생겼다. ‘환율’이다. 최근 5년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에서 1400원대로 30%가량 급등했다.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의 체감 소비 물가가 그만큼 감소, ‘가성비 쇼핑 천국’으로 만들어주는 효과를 낸다. 명품 가방을 살 때, 면세 혜택까지 더하면 본국 대비 최대 반값에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이란 새로운 수요층을 두고 격전을 벌이는 유통 업계 현황과 전망을 살펴봤다.

외국인 관광객이 새로운 수요층으로 떠오르며 유통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윤관식 기자)
방한 외국인 사상 첫 2천만명 눈앞

백화점, 외국인 매출 1조 돌파 기대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엔데믹’이었던 2023년 245%로 급증한 데 이어, 2024년 48.4%, 지난해 15.7%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내수 침체로 고전하던 유통가에는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다. 백화점, 편의점, 숙박 업계를 중심으로 ‘인바운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외국인이 주로 수익성이 높은 ‘명품’ 분야에 소비를 집중하며 외국인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백화점 외국인 소비 가운데 명품 카테고리 비중은 50~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국인의 명품 구매 비중(30~40%)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효과로 ‘에루샤’ 등 주요 명품 브랜드들이 본국 혹은 다른 아시아 시장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 가능해졌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은 명품 구매를 여행의 주목적으로 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덕분에 유통 3사의 외국인 매출은 지난해 8000억원 안팎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는 1조원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지난 1분기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0% 급증했다. 전체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더 극적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이 무려 100% 늘었고, 외국인 매출 비중은 22% 수준으로 올라섰다. 불과 2~3년 전 한 자릿수 혹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던 외국인 비중이 불과 1~2년 사이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현대백화점도 더현대 서울의 1분기 외국인 매출이 지난해보다 121% 급증하면서 전체 성장을 견인했다.

편의점도 호황이다.

CU에서 해외 결제 수단으로 결제한 건수는 매해 세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년 대비 2023년 151.9%, 2024년 177.1%, 2025년 101.2% 증가해 외국인 관광객 증가 속도보다 훨씬 가파르다. 외국인 1인당 편의점 이용 횟수가 그만큼 더 늘었다는 얘기다. 올 1월에는 업계 최초로 ‘외국인 고객 분석 보고서’를 발간, 전국 점포에 배포하는 등 외국인 관광객 타깃팅에 힘을 싣고 있다.

GS25도 같은 기간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114%, 126.7%, 74.2% 급증하는 추세다. 올 1분기 외국인 간편결제 서비스(알리페이 등)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73% 급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높은 종로구 인사동길 내 ‘뉴안녕인사동점’을 운영 중이다. 퍼스널컬러 진단이 가능한 AI 뷰티 디바이스부터 포토 프린팅 기계, 이찌방쿠지(뽑기 키오스크) 등 체험형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CJ올리브영, 다이소도 잘나간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동 상권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CJ올리브영은 올 1분기 전국 매장의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했다. 명동 상권 내 올리브영 매장의 외국인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94%에 달한다. 객단가가 같다고 가정할 경우 10명 중 9명 이상은 외국인 고객이었던 셈이다.

5월 초 실적은 더욱 가파른 성장이 기대된다. 일본 골든위크, 중화권 노동절 등 연휴가 맞물리며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글로벌텍스프리(GTF)에 따르면, 지난 연휴(5월 1~5일) 동안 CJ올리브영 매장을 찾은 외국인 매출은 직전 주(4월 24~28일) 대비 27%,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 나라별 매출을 보면 일본 관광객은 전주 대비 74%, 중국 관광객은 35% 증가했다. 광주, 대전, 청주의 CJ올리브영 외국인 매출도 직전 주 대비 각각 53%, 69%, 43% 늘었다.

다이소도 전체 매장의 해외카드 결제 금액이 올 1분기에 약 70%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매출 증가율 14%의 5배에 달한다. 다이소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역점의 경우 뷰티, 식품이 잘 팔린다. 특히, 뷰티 제품은 가성비가 좋아 지인 선물용으로 대량 구매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고 자랑했다.

외식 업계도 모처럼 밝은 표정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명동, 홍대 등 서울 2대 주요 상권의 올해 1분기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4.4% 증가했다. BBQ 관계자는 “성수, 강남, 잠실 등 주요 관광 상권 전반에서도 상승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지 상권을 중심으로 30~40평 이상 대형 매장을 전략적으로 확대하며 내점(홀) 고객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율 수혜 비켜간 채널도

면세점·홈쇼핑·대형마트 ‘소외’

고환율에 모두가 웃는 것은 아니다. 면세점, 홈쇼핑, 대형마트 등 달러로 가격을 매기거나 내수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고환율이 되레 역풍으로 작용해 울상이다.

면세점은 원화 약세가 가격 경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국내 면세점은 상품 가격을 달러로 매기고 결제 시점 환율을 원화로 환산한다.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소비자가 원화로 부담하는 가격이 즉시 높아지는 구조다. 반면 백화점은 분기나 반기 단위로 원화 가격을 조정한다. 환율이 급등하는 구간에서는 면세점 가격이 백화점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디올 미니 레이디백은 서울 시내 면세점 기준 5500달러에 판매돼 환율 1449원 수준을 적용하면 약 800만원 수준이다. 반면 같은 제품의 백화점 판매가는 750만원. 같은 브랜드의 스몰 레이디백도 면세점이 백화점보다 60만원가량 더 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로 인한 백화점과의 가격 차이를 극복하려면 면세점이 상시적으로 30% 할인을 해야 할 판”이라며 “출국자 수로 수수료를 매기는 공항 면세점은 임대료까지 올라 이중고”라고 울상을 지었다.

환차손 효과는 면세점의 아쉬운 성적표로 이어졌다. 올 2월 기준 국내 면세점 업계 전체 매출은 약 9624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월매출 1조원을 웃돌았다. 연간 기준으로도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4조2249억원이었던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 12조5337억원으로 약 12% 감소했다. 업계는 통상 원·달러 환율 1300~1350원 수준을 면세점 가격 경쟁력이 유지되는 마지노선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 환율은 이 기준을 100원 이상 웃돌면서 가격 역전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면세점 성장을 이끈 중국 단체관광객과 따이공(중국 보따리상) 수요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한 관광객은 단체보다 개별 자유여행객 중심이다. 이들은 정해진 쇼핑 코스를 돌며 대량 구매를 하기보다 성수동, 더현대 서울, 올리브영, 다이소, 무신사 같은 체험형 상권을 직접 찾아간다. 면세점의 강점이던 접근성과 가격 경쟁력이 동시에 약해진 것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관광객들은 성수동 같은 체험형 소비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기존 면세점은 여전히 획일적인 브랜드 중심 구성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면세 업계에선 가격 체계를 달러 기준이 아닌 원화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브랜드가 제시한 달러 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원화 기준 가격을 토대로 본사와 직접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홈쇼핑도 고환율의 그늘에 놓였다. 홈쇼핑은 내수 소비와 여행 수요에 민감하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가계는 지출을 줄이고, 해외여행 상품은 유류할증료와 항공료 부담에 직격탄을 맞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홈쇼핑 업계는 1인당 수백만~수천만원대 프리미엄 여행 상품에 공을 들였다. 스위스, 프랑스, 남미, 동유럽 등 장거리 고가 상품이 상담 건수를 끌어올렸다. 고물가 속에서도 차별화된 경험에는 돈을 쓰는 소비 양극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환율, 고유가가 겹치자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다. 중동 경유 노선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유류할증료가 오르면서 장거리 상품 편성은 줄었다. GS샵은 3월 해외여행 편성을 전년보다 약 30% 줄였다. 신세계라이브쇼핑은 3월 전체 여행 편성이 15% 감소했고, 유럽·미주·호주 등 장거리 상품은 90% 이상 급감했다. 롯데홈쇼핑의 3월 여행 상담 건수도 평년보다 10% 줄었다.

대형마트는 핵심 고객이 내국인이란 점에서 고환율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식품, 축산물, 과일, 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인상되면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으로 물류비와 포장재 비용도 높아지는 추세다. 가격을 올리면 고객이 이탈하고, 가격을 동결하면 마진이 줄어드는 딜레마가 반복된다. 실제 산업통상부의 최근 5년 통계를 보면 백화점, 편의점은 연평균 5%대 중반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대형마트는 –4%대 초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 특수를 누리려 해도 대형마트가 입점한 지역이 주로 부도심 등 외곽 상권이어서 동선에 거리가 있다”며 “일부 거점 점포는 K푸드와 즉석식품, 과자, 라면 등의 외국인 소비가 늘고 있지만 전체 업황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편의점 CU는 올 1분기 해외 결제수단을 통한 외국인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65.1% 급증했다. 사진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은 CU 매장. (BGF리테일 제공)
10년 전 일본과 닮은 꼴

엔저에 백화점·외식 활성화 ‘순풍’

외국인 관광객 급증에 따른 유통가 특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아베노믹스 이후 15여년간 엔저(円低)를 경험한 일본에선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4000만명에 육박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일본 외식 시장 규모는 1997년 29조엔으로 정점을 찍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까지 14년간 내리막길을 걸었다. 반등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취임하면서다. 대규모 금융 완화, 적극적인 재정 정책, 과감한 성장 전략 등 ‘세 개의 화살’을 축으로 삼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엔달러 환율이 80엔대에서 150엔대로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엔저 효과에 같은 기간 방일 외국인 관광객은 약 1500만명에서 약 4000만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덕분에 20조엔 초반까지 하락했던 일본 외식 시장 규모는 20조엔 중반으로 반등할 수 있었다. 외국인 관광 소비 총액은 약 1조엔에서 약 5조엔으로 5배 급증했고, 관광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에서 약 2%로 두 배 증가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외국인 관광객은 액티브 시니어와 함께 2010년대 일본 외식 시장 성장을 이끈 두 개의 순풍이었다”고 평가했다.

환율 특수 이후 대비해야

관광 인프라·재구매 전략 관건

유통가의 고환율 특수는 계속될까.

전문가들은 “외국인 소비 확대는 유통 업계에 분명한 기회지만, 환율에만 기대는 성장은 오래가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의 호황을 구조적 성장으로 만들려면 외국인 고객을 일회성 구매자가 아니라 재방문 고객으로 묶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고환율 환경이 장기화하면 외국인 소비가 유통업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지만 효과는 백화점, 명품, 화장품, 관광 상권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백화점 호황을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가려면 명품 판매에만 의존하지 말고 결제, 멤버십, 고객관리(CRM) 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매출이 늘어도 고객 데이터와 재구매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환율이 꺾이는 순간 성장세도 둔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계절성 변수도 문제다. 백화점 업계는 전통적으로 연초와 명절, 봄·가을 성수기에 매출이 높고 여름 이후 성장세가 둔화하는 ‘상고하저’ 흐름을 보여왔다. 환율 효과가 약해지고 주식, 부동산 등의 상승세가 꺾이면 하반기 부진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춘한 교수는 “환율 효과가 약해지거나 자산 시장 흐름이 둔화될 경우 과거 백화점 중심의 계절적 현상인 ‘상고하저’ 패턴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물론 동전의 양면처럼, 환율이 안정되면 대형마트, 홈쇼핑, 식품 업계 등 고환율에 눌렸던 내수 업종은 수혜를 얻을 전망이다. 이종우 교수는 “원화 강세로 전환되면 매입 원가가 떨어져 유통 업체가 보다 과감한 할인 행사와 프로모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그 과정에서 유통 시장 전반의 소비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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