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 앞 원도심에서 저녁마다 벌어지는 일...모두 놀랍니다
2026.05.14 07:01
1년쯤 지나 익산역 앞 옛 삼남극장 골목에 작은 책방을 냈고, 그 2층에 널찍한 복합문화공간을 열어 한 달에 두세 번씩 크고 작은 강연이며 대담을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이 도시에서 청춘을 보냈던 윤흥길·박범신·안도현 세 작가를 초대해 '2025 익산 문학의 밤'을 열기도 했다.
처음엔 '익산'이란 이름조차 낯설었다. 이곳이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이리' - 1970년대에 마산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된 바로 그 도시 - 였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합쳐져 익산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경계인의 글인 셈이다. 아직은 날마다 마주치는 많은 것들이 낯설고, 그래서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온 이들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경계인.
경계인이 바라본 도시 '익산'
지금의 익산역 주변 도심이 옛 이리시였다. 1990년대를 넘어가면서 도심의 기능이 조금씩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갔으니 지금은 원도심이란 말이 더 어울리겠다. 1912년 호남선 철길이 이곳을 지나게 되고 허허벌판이던 곳에 기차역(옛 이리역)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도시 '이리'가 탄생했다. 도시는 빠르게 번성했고, 한때는 호남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 ▲ 1980년대 익산역 앞 풍경. 멀리서 기차를 타고 익산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
| ⓒ 익산시 |
목포로 가는 호남선에 여수로 뻗어가는 전라선이 더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었고, 옛 이리는 상업과 금융 그리고 문화와 교육의 도시로 자리매김해갔다.
"강경을 지나면 함열버틈(부터) 전라도니라. 함열, 황등, 이리 그런데, 전라도루 들어서 이리가 젤 크니라. 클 뿐 아니라 전라남도루 가는 것이 아니구, 전라북도루 가서 농사할 고장을 찾는다면 누가 됐던, 이리서 내리는 게 순설 거다."
채만식은 소설 <소년은 자란다>에서 옛 이리를 부푼 꿈을 안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도시로 그리고 있다. 몸뚱이만 부지런히 놀리면 누구라도 먹고 살 만한 곳, 이곳은 정말로 그런 도시였다.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만큼 주먹 쓸 일도 많았고, 그래서 역 주변엔 늘 '어깨들'이 무리 지어 다녔다고도 한다. 지금도 옛 이리를 '어깨들의 도시'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나가 이리에서 곤조로 이름 석 자 날린 놈이여."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파인: 촌뜨기들>(2025)에서 느닷없이 '이리'가 튀어나온 건 바로 그래서다. 대놓고 자랑할 만한 기억은 아닐지라도 한때나마 이 도시가 얼마나 번성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익산 만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1990년대 들어 도심 바깥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논밭을 택지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머지않아 값싼 땅 위에 값비싼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IMF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올라간 아파트들이 앞다퉈 팔려나가면서 도시는 덩치를 키웠고 사람들의 자부심도 커졌다. 어느 도시에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그사이 원도심 인구는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밤에도 꺼질 줄 모르던 가게들의 불빛도 하나둘 꺼져갔다. 도시가 생긴 지 거의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시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던 익산시 인구도 1999년 33만 6000명까지 늘어난 뒤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익산시 인구는 26만 7000명이었다.
| ▲ 익산역 앞 골목 풍경 |
| ⓒ 윤찬영 |
원도심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번화했던 옛 거리에 '문화예술의 거리'란 이름을 붙이고 수백억 원을 들여 예술인들과 청년 창업가들을 불러들이는 도시재생 사업도 벌여봤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번 사람들이 빠져나간 원도심을 되살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익산역 앞 원도심은 저녁이면 불 켜진 가게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도 익산역이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익산역은 여전히 호남에서 가장 바쁜 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호남(고속)선과 전라선, 장항선이 만나는 익산역엔 주말이면 여객열차만 하루 234회가 지나고, 2만 2000명 넘는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인구가 익산보다 두 배 넘게 많은 이웃 도시 전주에 견줘도 세 배나 많은 수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 같은 큰 행사가 열리면 익산역도 덩달아 바빠지곤 한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내년이면 익산에 철길이 놓인 지 꼭 115년이 된다. 1950년 이리역 오폭 사고와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의 아픈 기억 탓일까, 익산역 앞 원도심에서조차 이곳이 철길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걸 보여주는 그 어떤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애써 그런 흔적을 지워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익산은 정체성이 흐릿한 도시다.
도시의 정체성이 브랜드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시대다. 도시의 실체는 엄연히 존재하며 그 실체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기차역을 통틀어 익산역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역이 또 있을까. 그래서 익산 원도심, 나아가 익산 만의 오롯한 정체성과 도시 브랜드는 철길 위에서 찾아야 한다.
| ▲ 익산역의 야경 |
| ⓒ 서태멘 |
큰돈을 들여 익산역의 덩치를 키우고 복합환승센터로 바꾸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그런다고 정말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처럼 익산역을 거쳐 전주로, 군산으로 빠져나가기만 더 쉬워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익산 만의 개성과 가치관이 담긴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먼저여야 한다. 그리고 그 브랜드에 어울리는 거점 공간을 원도심에 한두 개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원도심의 빈 건물들을 사거나 빌려 조금만 손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로컬에서 정체성 찾기는 '나를 잘 들여다보기'에서 출발한다. 브랜딩이 잘된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그 도시의 정체성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이 정체성 찾기가 도시 리브랜딩의 시작이다. 죽은 도시에 숨을 불어넣고 도시와 국가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초석이 된다." (<도시×리브랜딩>(박상희 외, 227쪽)
익산역에 내려 동쪽 광장 위에 서면 멀리까지 번듯한 4차선 도로가 뻗어있다. 이리역 폭발 사고가 일어난 뒤 새로 뚫린 '중앙로'다. 그리고 길 건너 2층에 걸린 커다란 'OO보청기'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이 도시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풍경이라고 했다.
부디 이번 선거에서 나를 잘 들여다볼 줄 아는 리더가 뽑혀 익산역 앞 원도심이 오롯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리부터 먼저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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