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빠르게 늘어나는 근시 인구…“수십 년 뒤 실명 환자 증가 국가적 큰 부담” [건강한겨레]
2026.05.14 05:04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근시 국가
고1 시력 이상 74.8%…성인도 빠른 증가
근시 되면 안구 길어지고 약해지면서
망막박리 등 증가로 실명 위험 높아져
“발병 땐 진행 빠르면서 20살까지 계속 악화
초등 입학 전, 증상 없어도 진단받아야”
근시는 안경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방치하면 망막박리·녹내장·황반변성 등 실명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건강한겨레는 대한안과학회와 함께 ‘근시 공화국’ 기획을 통해 근시의 실태와 위험성을 진단하고, 정부와 사회의 실질적 대응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25년 3월 현재 전국 보건소에 등록된 안경원은 총 1만893곳이다. 골목 곳곳에 깔린 편의점이 5만3천여 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밀도다. 안경을 맞추는 일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일상적인 행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제7기 국민건강영양조사(2016~2017년) 결과를 보면 13~18살의 근시 유병률은 85.2%, 이 가운데 고도근시는 14.7%를 기록했다. 안경 맞추기는 성장기의 통과의례가 됐고, 너무 흔한 나머지 심각한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바로 이 ‘익숙함’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근시는 단순히 시력이 나쁜 상태가 아니라, 방치하면 수십 년 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성 안과 질환이기 때문이다.
근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 개념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시력과 디옵터다. 시력은 ‘얼마나 잘 보는가’에 대한 능력치다. 안과에서 시력검사표의 글자를 읽을 때 얼마나 작은 글자까지 알아볼 수 있는지를 0.1에서 2.0 사이의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반면 디옵터(D)는 눈의 굴절 이상, 즉 빛이 망막에 제대로 맺히지 못하는 상태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렌즈의 도수를 뜻한다. 근시는 음(-)의 부호로, 원시는 양(+)의 부호로 표시한다. 보통 -1 디옵터 이내면 0.8~0.9 수준의 시력이 나오기도 하지만, 도수가 높을수록(마이너스가 클수록) 시력은 낮아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5.0 디옵터부터를 고도근시로 본다.
근시는 여러 원인으로 안구가 정상보다 앞뒤로 길어지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건강한 눈은 빛이 들어와 망막 위에 정확히 초점을 맺지만, 안구가 길어진 근시 눈에서는 초점이 망막보다 앞쪽에 맺힌다. 그래서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만 먼 것은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다. 고도근시는 교정 없이는 바로 앞의 물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력이 악화할 수 있다. 기본 치료는 오목렌즈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착용이다. 라식·라섹, 인공수정체 삽입술 같은 수술도 있지만, 이는 눈이 다 자란 성인 이후에야 선택할 수 있다.
근시는 일단 시작되면 빠르게 진행되며 18~20살까지 계속 나빠진다. 6살에 근시가 생기면 14년이나 더 악화될 시간이 남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만 3~4살 무렵이나 초등학교 입학 전에 증상이 없더라도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빠르게 늘어나는 근시 인구…수십 년 뒤 실명 환자 대거 늘 수도
한국의 근시 실태는 숫자로 보면 더욱 선명하다. 교육부 2024년 학교건강검진 결과, 시력 이상으로 판정받은 학생 비율은 초등학교 1학년 30.8%, 4학년 52.6%, 중학교 1학년 64.8%, 고등학교 1학년 74.8%였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세 명 중 두 명이 이미 시력 이상 상태다.
학교 밖 통계도 만만치 않다. 40대 이상 성인의 근시 유병률도 2020년 기준 53%에 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부터 국내 근시 환자 수는 연간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 매년 120만 명 안팎의 환자가 근시 때문에 의료기관을 찾고 있다. 대한안과학회는 현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 한국의 근시 유병률은 90.9%, 고도근시 유병률은 31.3%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근시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그 자체보다 뒤따라오는 합병증에 있다.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질수록 눈 안쪽 구조가 약해지면서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안과학회에 따르면 근시 환자는 망막박리 위험이 일반인보다 약 8배 높다. 고도근시는 녹내장 발생 위험이 4.6배, 초고도근시는 백내장 발병률이 최대 5.5배 높아진다. 황반변성도 빠르게 나타난다. 지금처럼 근시 환자가 빠르게 늘어날 경우, 수십 년 뒤 실명질환 환자 수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망막박리는 눈 안쪽 벽에 붙어 있어야 할 망막이 떨어지는 응급 상태로, 수 시간 내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 실명으로 이어진다. 녹내장은 눈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시신경이 서서히 손상되는 질환인데, 초기에는 본인이 느끼지 못할 만큼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어지기 쉽다. 황반변성은 눈 중심부에서 선명한 시력을 담당하는 황반이 망가지면서 글자나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질환이다. 이 질환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치료가 늦으면 잃은 시력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야에 검은 점이나 실이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비문증’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심해진다면 망막박리의 초기 신호일 수 있으니 즉시 안과를 찾아야 한다.
“수학 점수 높은 나라가 근시도 많다”…교육열과 스크린이 부른 재앙
그렇다면 근시 인구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유전적 요인이 바탕에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핵심 원인은 ‘교육'이다.
영국 브리스틀대학·카디프대학 연구팀이 6만7798명을 분석한 결과, 교육 기간이 1년 늘어날수록 근시가 평균 0.27 디옵터씩 나빠졌다. 17년을 공부한 대학 졸업생은 12년 교육을 받은 학생보다 평균 1 디옵터 더 시력이 나빴다. 학술지 ‘안경학 및 시과학’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35개 지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점수와 근시 유병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PISA 수학 점수가 높을수록 근시 유병률도 높다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상위권은 예상대로 중국·싱가포르·대만·홍콩·한국이었다. 연구팀은 “특히 한국은 전체 학생의 3분의 2가 정규 교육 외 추가 수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짚었다. 반면 핀란드는 일본(근시 유병률이 68∼71%)과 비슷한 학업 성취도를 기록하면서도 근시 유병률은 26~32%에 그쳤다. 정규 교육 시작 시기가 늦고, 학교 밖 추가 학습 부담이 적은 덕분이다.
물론 공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의대 안과학교실 김영국 교수팀이 33만5524명을 분석해 미국의학협회 저널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태블릿·컴퓨터·텔레비전 등 디지털 화면을 하루 1시간 더 볼 때마다 근시 발병 위험이 21%씩 높아졌다. 연구팀은 하루 스크린 사용의 안전한 기준은 1시간 미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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