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들
2026.05.14 04:31
매년 실험대서 죽는 동물, 1억 마리
'최다' 실험용 설치류 적극 입양해야
강아지·고양이 공장 문제도 여전해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시스템 필요
"죽는 기분이 어때?"
영화 '미키17'의 대사다. 가진 것 없던 미키는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떠나 정착한 행성에서 위험한 일을 하며 소모품으로 산다. 위험한 노동을 하다가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어 태어나고, 또 죽고 또 태어나는 소모품. 어느 행성에 살든 삶은 비슷하다. 위험 노동을 하던 17번째 미키17이 죽자 바로 미키18이 프린트되어 나온다. 그런데 미키17이 구사일생 살아나면서 문제가 생긴다. 미키는 사람들에게 죽는 건 어떤 기분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죽었다가 태어나고, 계속 죽고 태어나니 죽음에 감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미키는 말했다. 매번 죽을 때마다 여전히 끔찍하다고.
매년 세계적으로 약 1억 마리의 동물이 실험대에서 죽는다. 그중 한국은 2024년에 동물실험으로 460만 마리를 죽였다. 2015년에 비하면 2배 많아진 수치다. 선진국은 이미 학교와 산업계의 동물실험을 줄이고 대체 실험을 늘리고 있으며, 인공지능(AI) 동물실험의 시장을 넓히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실험용 동물 중에 유독 설치류가 많다. 약 90퍼센트의 실험이 설치류를 이용한다. 이유가 뭘까? 한 번에 새끼를 많이 낳아서 생산이 쉽고, 몸집이 작아서 관리하기 수월하며, 세대 시간이 짧아서 근친교배에도 유리하다. 근친교배를 통해 연구목적에 맞는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맞춤형 생산이다.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들. 1년 동안 한국의 실험실에서 400만 마리가 넘는 설치류가 실험 후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그들에게도 죽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미키에게 그랬듯이.
나는 15년 동안 동물실험윤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그만두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가 시작되었을 때 이제야 우리나라도 실험동물의 복지에 대해 고민하겠구나, 앞으로 실험으로 죽는 동물은 확 줄겠구나, 문제가 있는 실험은 제재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15년의 시간 동안 무력감만 깊어졌다. 윤리위원이라는 게 실험동물을 무한대로 죽여도 괜찮다고 '쾅! 쾅!' 도장을 찍어 주는 것 같았다.
동물실험윤리위원 활동 중에 가장 잘한 일은 실험을 마친 실험 쥐 20마리를 우여곡절 끝에 실험실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20마리 쥐들을 다 좋은 집으로 입양을 보냈다. 쥐들은 평생 돌봐줄 반려인을 만나서 쥐처럼 행동하면서 살고, 쥐의 수명만큼 살았다. 우리나라도 가장 많은 실험을 당하는 설치류의 입양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나온 20마리의 쥐들은 '실험'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삶이 변했다. 그렇다고 반려동물의 삶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실험동물만큼이나 죽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들이 많다.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번식장)의 동물들이다. 동물 학대의 공간인 그곳은 수많은 폐해가 있음에도 변화가 느리다. 신고를 해도 지자체와 경찰의 수사 의지가 없고, 사법부의 판단도 기대하기 어렵다. 어리고 귀여운 품종 동물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회피하고, 행정 기관은 관리 의지가 없고, 입법부는 동물 문제를 소홀히 다룬다.
동물 번식에 대한 정부의 관리 시스템이 부실하니 동물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번식장을 급습해서 동물들을 구조한다. 그곳의 환경 상태는 지옥과 다름이 없다. 뜬장에서 태어나 평생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한 개, 고양이가 있고 시체처럼 누운 어미들이 새끼를 생산해 낸다. 냉장고에는 사체가 꽉 차 있고, 발정 촉진 주사와 제왕절개 수술을 위한 약품,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아지, 고양이를 팔고, 또 임신시킨다.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난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지인은 한국의 강아지 공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 안타까워했다. 뉴질랜드는 브리더(사육사)가 키우는 암컷들의 출산 횟수를 제한하거나 권유하는 등 꽤 엄격한 관리 체계를 갖고 있다. 독일 또한 강아지, 고양이 공장도 펫숍도 없다. 전문 브리더는 한 견종만 키울 수 있고, 암수를 함께 기를 수 없다. 대규모 상업 번식을 규제하는 것이다.
20년 전쯤부터 반려동물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동물복지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왜 개와 고양이가 상업적으로 태어나고 죽어갈까? 왜 대규모의 번식 산업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관련 법과 정책도 부실하지만 번식장의 문제를 알면서도 품종 개, 순종 고양이를 원하고, 펫숍에서 사는 것도 큰 문제다. 지금도 번식장에서는 인기 급상승 중인 품종 개와 순종 고양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번식장 문제는 많은 미디어가 다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려동물 산업의 메커니즘을 잘 안다. 달라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산다. 펫숍에서! 20년 넘게 동물단체가 공들인 '사지 말고 입양하자' 캠페인은 실패인가. 예전에 비해서 보호소에서 개, 고양이를 입양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것에 비한다면 아쉬운 상황이다. 여전히 너무 많은 개, 고양이가 끔찍하게 죽고, 태어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시간이다.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명서를 필수로 발부하는 규정을 만드는 건 어떨까?
"당신의 개는(고양이는) ○○ 마리의 사체를 넘어서 당신에게 왔습니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시체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