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공양간서 흐르는 트로트, '굿즈'까지 만드는 이 스님이 사는 법
2026.05.13 21:36
| ▲ 공주 신원사 성관주지스님 |
| ⓒ 서준석 |
11일, 계룡산의 남서쪽 기슭, 화사한 늦봄 기운이 완연한 공주 신원사(공주시 계룡면)를 찾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분주할 법도 하건만, 주지 성관스님의 집무실에는 은은한 야생 목련차 향기와 함께 정갈한 평온함이 감돌았다.
신원사는 651년 보덕이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마곡사의 말사이다. 계룡산 3대 사찰 중 남사에 해당하며, 도선·무학대사 등이 중창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보 제299호 '노사나불괘불탱'과 보물 제1293호 '중악단' 등 5종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성관 주지스님은 마곡사 총무국장을 거쳐 이곳 신원사에 부임한 지 2년 6개월째다. 그는 고등학생 때 삶과 죽음, 어떻게 살아야 진실로 행복한 삶인가 등을 고민하다 19세 때 출가하여 줄곧 수행의 삶을 살아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운'과 '마음', 그리고 '전통의 복원'을 강조했다.
"중악단 산신대제, 국가적 제례로서의 가치 되찾아야"
신원사는 단순한 사찰을 넘어 역사적·문화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중악단(中嶽壇)'은 조선 시대 국가 주도의 산신제가 치러지던 곳이다.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이기도 하다. 성관스님은 최근 사단법인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산신대제 보존회' 출범에 열정을 쏟고 있다.
"사실 계룡산 산신대제는 근래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국제(國祭)의 대상이었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때 국가 주도로 지냈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잠시 맥이 끊겼던 것을 명성황후가 중악단을 재건하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중악단은 궁궐을 축소한 듯한 소슬대문과 다른 법당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궁궐 지붕에만 있는 잡상(雜像)이 있는 아주 특이한 건물입니다."
| ▲ 보물 제1293호 ‘중악단’. 신원사에는 국보 제299호 ‘노사나불괘불탱’ 등 5종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
| ⓒ 신원사 |
성관스님은 중악단이 가진 종교적 의미를 넘어선 '복합 문화'에 주목했다.
"그동안은 불교식으로만 산신제를 지내왔지만, 지난해부터 이준 황손 등 황실 가족들이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악단의 본래 가치를 드러내기로 했지요. 종교적 틀을 넘어 국가적 규모의 '궁중 제례'를 복원하자는 겁니다. 유교식, 불교식, 무속식(민속신앙)이 혼합된 형태로 산신제를 올리는 매우 보기 드문 유무형 복합유산이니까요. 학자들과 함께 학술 대회를 열고 체계적인 고증을 통해 내년부터는 독자적인 보존회 행사로 격을 높일 계획입니다."
중악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명성황후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크게 갈린다. 그의 정치적 선택과 외교적 실패로 조선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평가와 일본에 의해 암살당한 비운의 국모로 기억되고 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성관스님은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공과를 떠나, 그가 이곳에서 보인 '간절함'의 본질에 집중했다.
"역사적 평가는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싶습니다. 저는 명성황후보다, 험난한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한 여인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기도해 순종을 낳지 않았습니까? 남편을 위하고 자식을 위했던 그 간절한 엄마의 마음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 기운을 지금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 ▲ 공주 신원사 성관주지스님이 신원사 탱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착안해 '어리숙하지만 지혜로운 호랑이'라는 의미의 캐릭터 '어리범'과 계룡산 산왕대신을 형상화한 굿즈를 들어 보이고 있다. |
| ⓒ 서준석 |
스님은 계룡산이 가진 '영험함'과 '신원사'가 갖는 '기도의 도량'이라는 브랜드에도 주목하고 있다.
"관광객들에게 영험한 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계룡산이라고 합니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공간의 기운은 변함이 없지요. 주변인들은 자꾸 신원사 부근의 다른 지자체에 다 있는 둘레길이나 목장 등을 만들자고 해요. 하지만 계룡산과 신원사만의 특화된 기운, '명상'과 '마음 치유'라는 원천 자원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특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Z세대 사로잡은 'AI 작곡 스님'과 '디지털 포교'
신원사는 전통 사찰이지만, 포교 방식은 누구보다 현대적이다. 성관스님은 매일 새벽 5시면 밴드에 일기 형태의 '단상'을 올린다. 2년 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글을 묶어 세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기도 수행의 원리는 빨래할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옷에 묻은 때와 먼지 등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게 빨래라면, 수행은 덕지덕지 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온갖 망령과 업장의 때를 중화시켜 분해하고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방편을 통해서 업식(업장)이 소멸되도록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마음 산책 단상집, 23일 차 '기도 수행의 원리' 중에서)
스님의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의 '새벽 단상'은 '기도하는 법'으로 이어진다. 인터뷰 도중 스님은 직접 노랫말을 쓰고 AI 도움을 받아 곡을 붙인 34곡의 다양한 노래를 선보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탈종교화' 시대라 종교에 거부감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수노(Suno)'라는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어 봤어요. 가사를 직접 쓰고 곡 스타일을 정하면 노래가 튀어나와요. 트로트부터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장르까지 다양하죠. 공양간에 틀어놓으면 보살님들도, 젊은 친구들도 참 좋아합니다."
| ▲ 공주 신원사 성관주지스님 |
| ⓒ 서준석 |
사찰 곳곳에는 NFC 태그를 부착해 스마트폰을 대면 스님이 만든 노래와 부처님 말씀이 흘러나오게 했다. 신원사 탱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에 착안해 '어리숙하지만 지혜로운 호랑이'라는 의미의 캐릭터 '어리범'을 활용한 굿즈 제작과 포토존 설치도 스님의 아이디어다.
"절에 와서 건물만 보고 가면 재미없잖아요. 나무 동전을 넣으면 부처님 말씀이 나오는 기계도 설치했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는 인연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디지털 기술은 그저 방편일 뿐, 본질은 부처님의 말씀을 친숙하게 전하는 데 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반이면 곳곳에서 오는 셔틀버스 앞에 선다. 2년 반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버스에서 내리는 노보살님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처음에는 '주지가 왜 저러나' 싶어 경계하던 신도들도 이제는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어준단다.
신원사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점심 공양을 멈추지 않았다. 홀로 사는 마을 어르신들이 밥 한 끼 따뜻하게 드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종교의 재물이나 정성은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걸 '회향'이라고 하지요. 매일 11시 50분부터 누구든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신원사가 실천하는 나눔입니다."
"지방선거 앞둔 출마자들, '초발심' 잃지 말길"
| ▲ 신원사 전경 |
| ⓒ 신원사 |
인터뷰 끝자락,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정치적 갈등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성관스님은 종교적 중립을 전제하면서도 출마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정치적 갈등은 결국 '변하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옵니다. 권력도 지위도 물거품 같고 꿈 같은 것인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분들이 처음 가졌던 그 마음, '초발심(初發心)'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대중의 아픔을 보듬는 진정한 위정자가 당선되길 바라고, 유권자들이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의 눈을 가지길 바랍니다."
스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자신의 저서 '마음 산책'(총 3권)을 건넸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묻자 "어둠(무명)을 밝히는 등불처럼, 우리 마음속 본래 갖추고 있는 밝음을 깨닫는 날"이라며 미소 지었다.
"부처님 오신 날 등을 밝히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내 안의 어둠을 밝히는 행위입니다. 내 안의 어리석음과 탐진치(貪瞋癡,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를 걷어내고 본래 갖춘 내면의 밝음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변하는 권력과 욕망에 대한 집착은 꿈이나 물거품처럼 허망할 뿐입니다. 갈등의 뿌리인 집착을 내려놓고 맑은 초발심으로 돌아가, 어둠을 이기는 밝은 마음으로 평화와 나눔을 실천하는 복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스님에게 마지막으로 주지로 있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곳은 계룡산의 혈(穴)이 맺힌 도량입니다. 신원사가 '기도 도량'이자 '명상의 공간'이 되어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기운 찬 치유의 공간'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 ▲ [인터뷰] 신원사 성관 주지스님 계룡산에 위치한 신원사 성관 주지스님은 인터뷰 내내 '기운'과 '마음', 그리고 '전통의 복원'을 강조했다. ⓒ 서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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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는 계룡산 중악단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http://bit.ly/5fn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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