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은 곧 신용불량? 그 반대에요"···회생·파산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까?
2026.05.13 15:06
한 의뢰인이 도산 절차를 마무리한 뒤 박시형 변호사에게 보낸 손편지. 박 변호사 제공
박시형(44) 변호사는 “연체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고, 그.뒤로도 연체금을 못 갚게 되면 개인 회생을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회생 절차가 마무리돼 면책 결정이 나면 신용이 회복된다”고 했다.
“그래서 신용카드도 쓸 수 있어요. 회생·파산 기록도 삭제됩니다. 통장이 압류돼 은행도 이용 못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사실과 달라요. 법원의 금지명령을 통해 부동산이나 통장 압류는 물론 빚 독촉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박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10년간 도산(회생·파산) 업무를 전문으로 해왔다. 도산전문변호사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대한변호사협회 우수변호사상 수상자다. 장애인 가정의 회생을 도운 공로로 보건복지부 표창도 받았다. 그가 최근 <파산수업>(차선책 출판사)을 펴냈다. “회생과 파산이 필요한 분들이 제도를 오해하거나 두려워해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책을 냈다”고 했다.
회생·파산 제도는 ‘채무 초과 상태’ 즉 가진 재산을 다 털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다.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안 갚는 사람은 대상이 아니다.
‘파산’은 갚을 능력이 아예 없는 경우로, 채무자의 재산을 처분해 빚 일부를 갚고 나머지 빚은 탕감해준다. 반면 ‘회생’은 재산을 강제 처분하진 않지만 일정 기간 빚 일부를 벌어서 갚아야 한다. 즉 근로 능력 등이 있는 경우다.
영세상인이나 서민을 위해 더욱더 쉬운 ‘회생’도 있다. ‘개인회생’이다. 일반 회생은 빚을 얼마나 탕감할지에 대해 빌려준 사람(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개인회생은 채권자가 개입하지 못한다. 빚이 일정액 이하면 가능하다.
도산 변호사는 전체 변호사 중 1% 정도에 불과하다. 돈은 안되고 일은 고되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빚 갚을 돈도 없는 분들입니다. 수년간의 빚 독촉에 시달려 잔뜩 예민해져 있어요. 파산 업무를 오래 한 선배조차 (도산업무 하는 걸) 말렸어요. 그래도 고집을 부렸죠. 범죄자를 변호해주는 데서는 못 느꼈던 뭔가를 여기서는 느꼈거든요.”
‘빚을 없애준다’는 것 역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박 변호사는 “패자 부활전 없는 데스게임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오징어게임>에서도 살아남는 건 한 명뿐이었다”라고 했다.
“채무자의 모든 것을 압류하고 월급까지 생계비만 남겨놓고 다 빼앗으면 채무자는 아예 일할 의지를 잃습니다. 오히려 빚 한 푼도 못 돌려받습니다. 채무자가 회생이나 파산의 대상이 됐다는 건 어차피 빚을 다 받긴 글렀단 얘기에요. 그런데도 끝까지 말려 죽여야 할까요? 이전의 실수를 깊이 반성한다면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게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그게 ‘채무자회생법’의 입법 취지입니다.”
물론 빌려준 사람이 개인이면 “억울할 것”이라고 했다. 채권자 대부분은 사실 은행 등 금융기관이라고 했다. “대출이자를 예금이자보다 높게 책정해 ‘예대 마진’을 남기는 대신, 돈 떼일 위험(부실 채권)도 감수하는 게 금융업의 기본 원리에요. ‘예대 마진’에 부실채권에 대한 위험이 이미 포함돼 있습니다.”
박시형 변호사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도산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 역시 아버지의 빚 때문에 20대 시절 고생을 했다”며 “그 경험이 이 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용필 기자
“채무자 입장에선 사실 변제가 필요 없는 파산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아요. 다만 요건이 더 까다롭죠. 근로 능력이 없다는 점 등을 입증하려면 품이 많이 듭니다. 인건비가 많이 들죠. 그런데 단가는 낮아요. 그래서 상당수 사무실에선 회생을 권유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도산 제도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변호사 대신 사무장이 최소한의 품으로 박리다매를 하는 이른바 ‘사무장 대리’ 관행이 생긴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요. 사실관계 조사도 제대로 안 된 신청서가 법원에 무더기로 들어오는 거죠. 회생 위원에게 반박 서면조차 제출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런 상황은 “법원이 신청서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고, 요건 심사가 까다로워지는 원인”이라고 했다. “기각률이 올라가면 회생·파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그는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명의를 빌려줬다가 거액의 빚을 진 분, 보이스피싱 당한 분, 사업을 방만하게 하다 망한 분, 절제된 소비습관 없이 ‘카드 돌려막기’한 청년들…. 대부분 혼자서 끙끙 앓다가 저를 찾아오세요. 변제 기간 내내 버스비를 아끼려 걸어 다니고, 외식 한 번도 하지 않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해요. 문제는 ‘실수를 통해 달라지느냐’입니다. ‘달라질 줄 아는사람들’을 보는 맛에 이 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초심이 흔들리는 경우도 꽤 있다고 했다. “코인이나 주식으로 빚을 진 의뢰인들 상당수는 이미 회생·파산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합니다. 빚을 잔뜩 내 ‘투자’를 하고, 손실이 날 경우 도산을 통해 빚을 없애는 ‘플랜’을 짠 거죠. 위축돼 있지도 않고, 죄책감도 없습니다. 변제액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만 당당하게 묻는 그들을 상대하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하는 회의가 들어요.”
그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건 제도가 아니라,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환경, 그리고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들 때문에 회생의 문이 닫혀버리면 문밖에서 서성여야 하는 건 그 문을 통해 새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경향신문 주요뉴스
· 삼전·닉스, 언제 팔까 고민되시죠…‘피크아웃 신호’ 이익 규모보다 이익 성장률에 주목해야
· 이 대통령 “죽을 때까지 콩나물 한개 팔아서도 갚아야 한다? 이게 국민 감정에 맞나?”
· 청주 문화재 발굴 현장서 5~7세 추정 어린이 유골 발견…경찰 수사
· [속보]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항소심 재판부 기피 신청···“유죄 예단 공표”
· [단독]“지잡대 나왔냐” “어머니 공장서 일해”···‘갑질’ 일삼은 용산구의회 전문위원
· [단독]검찰, 모스 탄의 “이 대통령 살해 연루” 허위 발언 재수사 요청…앞서 경찰은 각하
· 초등학생이 훔친 차량 몰고 도심 질주···또래 공범 2명 추적 중
· 20년 과일 외길에 혜성같이 등장한 ‘멋쟁이 채소’···나오자마자 ‘판매 1위’
· 12명 정원인데 40명 태우고 술 마시고 키잡기···바다 안전 위협한 542명 적발
· 서문탁 “여성성·남성성 틀 벗어나자 다양한 아티스트 보이게 됐죠” [플랫]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파산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