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전
전남 곳곳에 5·18 사적…"고립 광주와 함께 쓴 항쟁사"
2026.05.13 14:00
연대 항쟁, 무장 지원, 유혈 진압 상흔도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46년 전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만의 외로운 항쟁이 아니었다. 특히 당시 하나의 광역 행정구역으로 함께 묶여 있던 전남 지역 곳곳으로 불의한 신군부 탄압에 맞선 의로운 저항의 불길이 번졌다.
전남은 계엄군에 고립된 오월광주와 함께 연대하며 물심양면 도왔고, 이 과정에서 국가폭력 학살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40년 만에 행정 통합을 앞둔 전남과 광주가 함께 공유하는 항쟁의 기억과 경험을 되짚어 본다.
'고립무원' 광주에 손 건넨 연대
13일 전남도에 따르면 도내 공식 지정 5·18 사적지는 9개 시군, 30곳이다. 지역 별로는 해남·영암 각 6곳, 목포·나주 각 5곳, 화순 3곳, 강진 2곳, 무안·함평·장흥 각 1곳 등이다.
1980년 당시엔 행정구역 분리 전이어서 광주는 전남도 내 중심도시이자 도청 소재지였다. 5월21일 도청 앞 등지에서 자행된 집단발포로 빚어진 참상은 인접 지역부터 시작해 전남 시군 곳곳으로 알려졌다.
전남 곳곳에서 계엄군의 봉쇄에 고립무원이 된 광주에 손을 내밀었다.
특히 목포역은 서남권 항쟁 중심지였다. 5월21일 광주에서 차량 시위대가 도착한 이후 목포시민들은 매일 모여 평화행진과 궐기대회를 열었다.
동아약국·안철 선생 가옥 옛터에서는 재야인사들이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했고, 목포역 2층에는 시민투쟁위 상황실이 꾸려졌다. 목포 중앙공설시장 옛터에서는 상인들이 시위대에게 김밥과 도시락과 음료를 건넸고, 목포중앙교회 옛터에서도 시민투쟁위 활동과 회의가 이어졌다.
해남군청 앞 광장에서는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군민들이 함께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고 신군부를 규탄했다. 영암 신북장터에서는 청년·학생들이 자체 시위대를 조직했다.
나주 남고문 광장과 금성관 앞, 나주공고 앞에서도 시민·학생 시위가 이어졌고, 영강삼거리에서는 주민들이 광주로 향하는 시위대 차량에 빵과 음료를 건네며 격려했다.
5월21일 화순군청 앞 일대에서는 광부와 군민 200여명이 모여 신군부 무력 탄압을 규탄했다.
강진읍교회와 강진농고에서는 윤기석 목사를 중심으로 종교계의 도움과 학생들의 거리 시위가 이어졌다. 교회 신도들은 시위대를 지원하고 진압 과정에서 다친 이들을 돌봤다.
함평군 버스터미널과 학교면 사거리, 무안군 버스터미널, 현 장흥읍 행정복지센터 앞에서도 시위대 합류와 군민 시위가 잇따랐다.
무기 확보·조직화…시민군 대응 지원
나주 옛 금성파출소 예비군 무기고에서는 무장에 나선 시민군이 무기를 확보했다.
영암 시종파출소 앞에서는 한 방위병이 시위대에 은닉 무기 위치를 알려줘 시민군들이 총기와 실탄을 확보했다.
영암신북터미널 입구는 시위대 집결과 항쟁 소식 전파 거점 역할을 했다. 영암읍 삼거리와 역리 삼거리는 광주·목포를 잇는 시위 차량 이동 통로였다. 청년들은 머리띠와 각목을 만들거나 성금을 모아 시위대를 지원했다.
화순군청 앞 경찰서에서는 시위대가 무기를 확보했고, 화순광업소 광부들은 대형 차량 등을 지원하며 항쟁에 참여했다.
해남중학교는 시민군 거점이자,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임시 분향소 역할을 했다. 해남읍 교회와 대흥사 여관터는 민주 재야인사의 회합·은신 장소였다.
계엄군 발포·민주인사 연행…국가폭력 상흔도
계엄군의 국가폭력의 흔적도 전남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진압에 투입된 7공수여단은 광주 외곽 봉쇄 과정에서 화순 너릿재 일대에서 차량을 총격해 다수 사상자가 나왔다.
해남 상등리 국도변에서는 5월22일 진도에 진입 중이던 시위대를 향해 군이 발포해 고등학생 등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우슬재에서도 31사단 93연대가 시민군 차량을 향해 매복 사격을 벌여 희생자가 발생했다.
화순 너릿재와 해남 우슬재 모두 당시 계엄군에 의한 사상자가 다수 나와 희생자 암매장 의혹이 제기, 발굴 조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목포 제3해역 사령부 헌병대 옛터는 항쟁 이후 시민과 학생들이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양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5·18은 광주 뿐만 아니라 전남도민들이 함께 참여한 민주항쟁이다. 항쟁의 주무대가 광주였다고 해도 전남에서의 연대와 항쟁 동참에 대해서는 분명히 재조명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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