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K-브랜드⑦] “Korea는 몰라도 초코파이는 안다”…오리온, 러시아·베트남 ‘국민 간식’ 등극
2026.05.13 11:10
러시아·베트남 현지화 적중…‘1조 브랜드’ 눈앞
한류는 지금 K-팝·드라마에서 성큼 전진해 K-푸드, K-뷰티, K-패션으로 글로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각 기업을 대표하는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탄생 배경부터 성장 전략, 글로벌 확장 과정까지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반세기 전 한국에서 시작된 ‘정(情) 한 조각’.
1974년 서울의 한 제과 공장에서 탄생한 이 초콜릿 과자가 이제 중국 편의점 진열대에, 베트남 제사상에, 러시아 찻잔 옆에 놓여 있다.
초코파이는 더 이상 한국만의 ‘국민 과자’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좋은 친구(好麗友)’, 베트남에서는 ‘정(情)’, 러시아에서는 ‘대통령이 먹는 간식’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글로벌 K-스낵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난해 초코파이 매출은 6740억원. 이 가운데 해외 매출은 5860억원으로 전체의 86.9%를 차지했다. 팔린 곳도 한국을 넘어 중국·베트남·러시아·인도 등 60여개국에 달한다.
식품업계에서는 비비고 만두, 불닭볶음면, 신라면에 이어 내수시장 단일 브랜드 매출 1조원 클럽에 들어갈 제품으로 초코파이를 꼽는다.
◇ 곰팡이 위기에서 찾은 ‘13% 수분 과학’
초코파이 출발은 우연이었다. 1970년대 초 미국과 유럽 시장을 둘러보던 오리온 연구진이 한 카페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본 것이 출발점이 됐다.
귀국 후 2년간 연구 끝에 1974년 4월, 비스킷과 마시멜로, 초콜릿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과자가 세상에 나왔다. 출시 가격은 50원.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15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결코 싼 제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초코파이는 첫 해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달콤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간식’이라는 점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짜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왔다. 오리온 내부에서는 이를 ‘13%의 비밀’이라고 부른다.
1995년 중국 진출 초기, 장마철 유통 과정에서 일부 제품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오리온은 10만개 제품을 전량 회수·폐기했고, 연구진은 1년 동안 문제를 파고들었다. 수분 함량이 문제였다.
연구진은 마시멜로 속 수분이 비스킷으로 이동하며 특유의 식감을 만드는 구조에서, 최적의 수분 함량 13%를 찾아냈다. 이는 초코파이가 동남아의 고온다습한 기후부터 러시아의 혹한, 중동의 사막 기후까지 견디며 6개월 이상 품질을 유지하는 핵심 기술이 됐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과자를 브랜드로 만든 ‘정(情)’
기술이 제품을 살렸다면, ‘정(情)’은 브랜드를 키웠다.
1980~1990년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광고 캠페인은 초코파이를 단순한 과자가 아닌 ‘마음을 전하는 매개체’로 바꿔놨다.
군 입대하는 삼촌에게 건네는 초코파이, 이사 가는 아이가 경비원에게 전하는 초코파이, 선생님께 편지와 함께 건네는 초코파이. 제품보다 이야기를 판 첫 감성 마케팅 전략이었다.
2024년 출시 50주년에는 소비자의 사연을 패키지에 담은 리미티드 에디션까지 선보이며 세대를 잇는 브랜드로 진화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정서”라며 “빅모델을 쓰지 않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러시아는 잼·인도는 비건…러시아선 없어서 못 팔
놀라운 건 이 ‘정’ 문화가 해외에서도 통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초코파이 상품명은 ‘하오리요우(好麗友)’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 문화에 맞춰 포장지에는 ‘인(仁)’ 자를 새겼다. 지난해 중국 매출은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해 1조원을 넘어섰다.
베트남에서는 현지어로 정을 뜻하는 ‘띤(Tinh)’ 캠페인이 적중했다. 지금 베트남 파이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 중이다. 제사상에 오르고, 명절 선물로 오가며, 결혼 답례품으로도 쓰일 만큼 현지인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더 극적이다. “한국은 몰라도 초코파이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초콜릿과 차를 즐기는 식문화, 마시멜로에 익숙한 입맛이 맞아 떨어졌다. 2011년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차와 함께 초코파이를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선 현지 입맛에 맞춰 수박·체리·블랙커런트·망고 등 잼을 넣은 초코파이 14종을 생산·판매 중이다.
지난해 러시아 매출은 3394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809억원에서 2022년 2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3년 새 4배 가까이 상승했다. 현지 공장은 가동률이 120%를 웃돌 정도로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오리온은 2400억원을 들여 트베리 제2공장 증설에 들어갔다. 공장이 완공되면 생산라인은 기존 15개에서 31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완공 목표 시점은 내년 9월이다.
인도는 2021년 라자스탄에 공장을 세우고 북동부를 중심으로 영업을 넓히고 있다. 채식 인구가 많은 시장 특성에 맞춰 해조류 추출 식물성 젤라틴을 적용한 ‘비건 초코파이’를 선보였다. 지난해 매출액은 275억원으로 낮지만, 성장률은 30%가 넘었다.
◇ 해외 매출 87%…초코파이가 바꾼 오리온의 체급
세계적인 K-컬처 열풍 속에 오리온 위상도 달라졌다.
오리온은 지난해 매출 3조3324억원, 영업이익 5582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영업이익률은 16% 중반으로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1분기 해외 매출은 6605억원으로 국내 매출(2834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전체 매출의 70%가 해외에서 나왔다. 중국 4097억원, 베트남 1513억원, 러시아 905억원. 국내 제과회사가 아니라 사실상 글로벌 식품기업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오리온을 처음 대기업집단에 포함시킨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오리온 자산총액은 5조1426억원.
다만 국내 시장 성장 정체는 여전히 과제다. 1분기 국내 매출은 28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동 리스크에 따른 에너지 비용 상승과 포장재 원가 부담도 변수다.
오리온은 충북 진천에 4600억원을 투자해 생산·물류 통합센터를 짓고 있다. 2027년 완공 이후 북미와 유럽, 중동, 아프리카까지 공략 범위를 넓혀 ‘1조 브랜드’ 도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아울러 ‘제2의 초코파이’ 육성에도 집중한다. 국내에서 품절대란까지 일어났던 꼬북칩과 참붕어빵, 쌀 스낵 안(An) 등이 대표 주자다. 오리온은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글로벌 브랜드만 9개로, 국내 식품 제조사 중 가장 많다.
오리온 관계자는 “2027년 진천 공장이 가동되면 생산 캐파 확대와 수출 증가가 맞물리며 실적 모멘텀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북미,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을 다음 목표로 두고 신시장을 개척하며 새로운 라인업으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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