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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관계의 최전선에서 “불편해져도 기꺼이”

2026.05.13 05:02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18_‘필요한 사람’ 송영경

한국 사회에서 갑을관계의 최전선은 아파트였다. 출근하면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근심하는 노동자들도 퇴근 뒤엔 고용관계 없는 노동자의 삶을 손에 쥔 아파트 입주민이 됐다. 한 사람의 일자리와 생계가 ‘사적 감정’으로 멸실되는 흔하고도 위태로운 이야기는 고양이로부터 시작됐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제가 내려갈게요.”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한마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화를 받자마자 아파트 5층에서 경비초소로 달려 내려갔다.

그 순간이었다. 한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거주하면서도 이웃들과 특별한 교류 없이 살아온 영경(가명·55)씨는 그 순간 아파트가 3년이나 들썩일 사건으로 스스로 뛰어들었다. 해고 위기에 놓인 경비원 앞에 서서 해고를 요구하는 이웃들과 기꺼이 불편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갑을관계의 최전선은 아파트였다. 출근하면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근심하는 노동자들도 퇴근 뒤엔 고용관계 없는 노동자의 삶을 손에 쥔 아파트 입주민이 됐다. 한 사람의 일자리와 생계가 ‘사적 감정’으로 멸실되는 흔하고도 위태로운 이야기는 고양이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아파트에 어린 길고양이가 있는데 밥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사료는 저희가 준비해드릴게요.”

하얀 얼굴에 검은 머리와 콧수염을 지닌 고양이는 ‘네로씨’. 그 이름을 지어준 두 청년 주민이 경비원 수일(가명·73)씨에게 부탁했다.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수일씨가 놓아둔 밥을 먹으며 네로씨는 경비초소 앞에 배를 깔았다. 겨울(2022년)이 오고 있었다. 수일씨가 초소 문에 망치를 받쳐 틈을 줬다. 그가 근무(24시간 2교대)하는 날이면 네로씨가 문틈으로 들어와 몸을 녹이고 잠을 잤다. 틈으로 밀려드는 냉기에 고생할 동료를 생각해서 경비반장이 작은 구멍을 냈다. 수일씨가 말렸으나 초소 문에 네로씨의 출입구가 생겼다.

“고양이를 치우든지 일을 그만두든지 하세요.”

옆 동 아파트 대표가 수일씨에게 말했다. “남편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며 선택을 요구했다. 양자택일할 사안인진 알 수 없었지만 수일씨는 요구를 따랐다. 고양이 밥을 부탁했던 주민들이 네로씨를 목욕시켜 아파트 밖으로 입양 보냈다.

옆 동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관리소장에게 수일씨를 해고하라고 했다. 초소 문에 낸 구멍이 재물손괴란 이유였다. 수일씨가 만들지 않은 구멍을 빌미로 그가 근무하지 않는 타동의 주민이 해고를 강요했다. 어느 대목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는진 수일씨도 짐작하지 못했다.

“어쨌든 간에 박씨를 내보내려고…. 고양이 일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해 가지고….”

영경씨가 동의를 구하고 녹음했다. 집요한 해고 시도의 발단이 네로씨 때문이었다는 사실과 관리소장 차원에서 무마했다는 사실은 한참 뒤 영경씨가 당시 소장을 ‘취재’해 맞춘 퍼즐이었다.

실제 해고는 10개월 뒤 실행(2023년 10월)됐다. 아파트 주민이 아닌 할머니가 영경씨네 쪽 재활용분리수거장에서 플라스틱 생수병 두개를 가져갔다. 그 장면을 본 옆 동 대표가 새로 온 관리소장에게 연락했다. 시시티브이를 확인한 소장이 경비업체에 담당 경비원을 해고하라고 했다. 경비업체가 수일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절도방조죄라고 했다. 정작 ‘절도’한 할머니는 신고하지 않았다.

“그분이 아래 윗집 사이에서 중재해준 덕분에 층간소음 다툼이 많이 줄었어요…. 현관 비밀번호 알려주며 전기선 뽑아달라고 부탁할 만큼 믿는 양반이란 말이오….”

성토가 쏟아졌다. 영경씨 동 주민들이 관리소·입주자대표회의 쪽과 설전을 벌였다. 해고 반대 탄원에도 전원 서명했다. 당사자가 수일씨기 때문이었다. 오래되고 할 일 많은 아파트에서 수일씨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받았다. 해고는 거꾸로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꼭 지켜드려야겠다.

영경씨는 그때 생각했다. 수일씨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수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손에 있던 붕어빵이나 귤 한두개를 나누는 정도였다. 누군가의 ‘기분’ 때문에 일자리를 잃도록 두진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민들의 집단 반발로 그날 밤 해고는 무산됐다.

“무슨 일 생기면 이제 저한테 전화하세요.”

4개월 뒤(2024년 2월) 영경씨가 수일씨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해고 철회 뒤에도 수일씨를 ‘자르라’는 요구는 계속됐다. 영경씨의 동대표는 발을 뺐다. 입대의와 맞서는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는 말에 영경씨가 답했다.

“그럼 뭐 제가 하죠.”

경비업체에서 사직서를 받으러 온다는 연락을 받고 수일씨가 전화했다. 영경씨가 뛰어 내려갔다. 그때까지 수일씨는 3개월 초단기 계약을 20여회 갱신하며 5년을 일해왔다. 영경씨가 항의해 사직서 서명 없이 돌려보냈다. 그날 영경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하겠다”라곤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밤새 뒤척였다. 이튿날부터 영경씨는 ‘사실’을 모았다. 기자가 취재하듯, 탐정이 조사하듯, 해고 배경을 알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니까 박수일씨를 자르지 않으면 내년엔 용역 계약 없다고 했다는 거죠?” “저도 들었어요. 들은 적 있어요.”

입대의가 재계약과 해고를 연계한 사실을 경비업체 쪽 취재로 확인했다. 갑을이 물고 물렸다. 경비원 박수일(을)의 계약자는 경비업체(갑)였고, 경비업체(을)의 계약자는 관리소장(갑)이며, 관리소장(을)의 계약자는 관리회사(갑)였다. 관리회사(을)의 계약자는 입대의(갑)였고, ‘그 동대표’는 입대의 감사였다.

수일씨는 결국 해고(2024년 12월31일)됐다. 계약 종료에 맞춰 수일씨만 재계약에서 뺐다.

어디 한번 해보자.

영경씨에게 이웃과의 관계는 중요했지만 부당해고를 방관할 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주민 전체에게 반대 탄원(12월27일)을 다시 받았다. 새로 선출된 입대의 회장에게 전달하고 해고 철회를 요청(12월28일)했다. 입대의는 거부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친 수일씨가 “더는 폐 끼칠 수 없다”며 아파트를 떠났다.

영경씨가 낙담하고 있을 때 한 주민이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럽다”며 나섰다. 수일씨를 찾아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2025년 1월)을 설득했다. 영경씨가 지노위 심문회의에 동석했다. 그날 사용자가 제시한 해고 사유는 “입주민들에게 베푼 과도한 친절”이었다. 지노위는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원직 복직을 주문했다. 두 사람은 아파트 주민 총회(3월)를 열었다. 입대의에 증거 녹취를 제출하고 수일씨 복귀를 요구했다. 입대의는 “반대하지 않지만 찬성할 수도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유를 밝히라며 아파트 엘리베이터마다 공개질의서(4월)를 붙였다. 화단엔 펼침막을 걸었다. 주민들에게 호소문도 배포(5월)했다.

경비업체는 수일씨를 원직 복직시키는 대신 다른 아파트로 보냈다. 그 아파트 관리소가 수일씨를 받아주지 않자 회사 사무실에 일주일간 일없이 앉아있게 했다. 영경씨가 회사로 찾아가 “우리 아저씨 잘 부탁드린다”며 음료수를 나눠 줬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입대의 회장은 “둘이 무슨 사이냐”며 의도를 담아 쏘아붙였다. 영경씨가 “다신 모욕하지 말라”며 정색하자 동대표들의 삿대질이 날아왔다. 해고 반대에 호응하던 주민들도 피로를 호소했다. 속병이 났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영경씨도 자문했다. 첫 직장 시절(1994년)이 기억났다. 사무실에서 남자 직원들이 담배 피우고 여자 직원들은 업무란 이름으로 심부름을 하던 때였다. 퇴근 뒤 야간대학을 다니며 공부하는 후배들이 있었다. 서둘러 학교로 가야 할 후배들이 갈아입은 유니폼을 다시 꺼내고 있었다. 남자 대리가 참외를 깎아오라며 시켰다고 했다. 후배들을 보낸 영경씨가 참외와 칼을 챙겼다. 대리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깎으실 줄 알죠?”

정규직 남성 대리가 계약직 영경씨를 올려다보며 얼굴이 빨개졌다. 후배들이 전했다.

“언니, 대리님이 이제 함부로 안 해요.”

맞아,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

수일씨는 끝내 영경씨의 아파트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경씨는 내려앉는 수일씨의 어깨를 봤다. 그는 억울함마저 ‘내 탓’으로 삭히며 평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 억울한 마음이라도 꺼내주고 싶었다. “누르시지만 말고 한번이라도 터뜨리시라”며 글로 써보길 권했다. 며칠 뒤 수일씨가 맞춤법 틀린 글씨로 관리실 공문 이면지에 쓴 글(☞19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내 이야기’)을 보내왔다. 영경씨가 문장마다 멈춰 울었다.

“엄마, 왜 그렇게까지 해?”

쌍둥이 첫째 딸도 물었다.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해고돼선 안 된다는 믿음으로 나섰지만 어쩌면 영경씨 자신을 위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만 살았다. 하루하루 가정에 온 힘을 쏟았다.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론 더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도 같았다.

그때 영경씨의 도움이 필요한 수일씨가 보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은 나 때문에 저분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억지로 견디고 있는 것 아닐까. 그 생각이 영경씨를 괴롭히기도 했다.

“우리 엄마, 일제 강점기였으면 독립운동했을 사람이야.”

쌍둥이 둘째가 대신 답했다. 영경씨가 웃었다. 남편과 딸들도 따라 웃었다. 그래,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상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 거야! 영경씨에게도 수일씨는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문영 | 이슈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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