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노동 시대, 그 종말의 시작
2026.05.12 19:56
노동 시대의 종말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배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사회적 문제는 노동 시대 패러다임으론 해결할 수 없다.
삼전 파업이 ‘노동 시대, 그 종말의 시작’인 이유다.
그것은 노동의 사회적 약자성, 노조의 도덕적 정당성,
보상과 분배 원리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파업 예고를 둘러싼 논란은 모두 이미 종말을 고하고 있는 노동 시대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삼성전자 파업이 드러낸 ‘노동’ 패러다임의 균열과 붕괴를 직시하고,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어떤 것일지 상상해보아야 한다. 2026년 5월,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성과급 상한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 300조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5조원이 성과급으로 배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2025년 9월 노사 협상을 통해 성과급의 지급 상한선을 폐지했다. 그 결과 2026년 1인당 평균 성과급이 약 7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안이 수용될 경우 1인당 평균 약 6억원의 성과급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성과급 잭팟’이다.
이 사건을 단순한 노사 갈등으로 읽는 것은 시대의 표층만을 보는 것이다. 삼성전자 파업은 우리가 익히 알아온 노동운동, 즉 자본의 착취에 맞선 약자의 저항이라는 19~20세기적 서사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시가총액 수백조원의 글로벌 기업에서 1인당 수억원의 보너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쟁의는 ‘노동 시대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의 한 징후로 읽혀야 한다.
삼성전자 파업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먼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비대칭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14% 수준이다. 같은 지표가 독일은 41%, 스웨덴 44%, 영국 46%, 프랑스 47%, 미국 58%에 달한다. 다시 말해, 한국 임금노동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업은 14% 대기업과 86% 중소기업의 구조적 이중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14%의 좁은 영역 안에서 한국 사회의 부와 안정이 집중적으로 형성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월 613만원으로 처음 600만원 선을 넘어섰는데,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월 307만원에 그쳐 임금 격차가 정확히 2배로 벌어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2025년 분석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의 평균 연봉은 7396만원, 중소기업은 4538만원으로,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의 61.4%까지 낮아졌다. 더 심각한 것은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매년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전 파업, 전태일 외침 공허하게
여기서 SK하이닉스의 1인당 평균 7억원 성과급,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1인당 평균 6억원 성과급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 근로자의 연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반도체 대기업 직원이 단 1년에 받는 성과급만으로도 중소기업 노동자가 13~16년 동안 일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에 해당한다. ‘평균 연봉 10억원’이 거론되는 새로운 소득 계층이 한국 사회에 출현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임금 격차가 아니라 노동의 질적 분열이다. 같은 ‘노동자’라는 범주 안에 묶일 수 없는 두 종류의 인간이 출현한 것이다.
전통적 노조는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자본가의 착취에 맞서 단결권,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정의되었다. 노조의 도덕적 정당성은 그것이 ‘대변하는 자’와 ‘대변되는 자’가 모두 사회적 하위 계층이라는 데 있었다. 소년공 출신인 이재명 대통령이 그 이름이 자랑스럽다고 할 때의 노동자가 바로 이런 노동자이다. 산업혁명기 노동자 의식의 핵심 명제, 즉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도덕적 저항은 바로 이 약자의 위치에서 발화되는 것이었다. 1970년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자 전태일은 몸에 불이 붙은 채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삼성전자의 파업은 한국에서 크고 작은 노동쟁의의 시발점이 되었던 전태일의 외침을 공허하게 만든다.
한국의 노조 지형은 이 전통적 정의를 뿌리째 흔든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체 노조 조직률은 13%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사업장 규모별로 극단적인 양극화를 보인다. 300명 이상 대기업의 노조 조직률이 36.8%인데 중소기업의 조직률은 12% 부근에 그치고, 그 또한 다수가 유령노조 또는 어용노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조의 보호를 실질적으로 받는 노동자는 14%의 대기업에 종사하는 18%의 노조원, 즉 전체 임금노동자의 단 2~3% 수준에 불과하다. 노조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말은 자기기만의 극치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임금분포 최상위를 차지한 ‘강자들의 이익단체’로 작동한다. ‘귀족노조’라는 표현이 단순한 비방이 아닌 구조적 진단이 되는 이유다. 노조 활동이 활발한 대기업 조합원의 고용 조건은 더욱 개선되는 반면, 노조가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은 100명 미만 사업체 노동자들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노조는 더 이상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기구로 그 위상이 축소된 것이다. 강력한 이익집단 노조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파업 행위는 결국 노동 시대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다.
마지막 기회의 ‘일회적 보너스’
사실 노동 시대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AI와 자동화이다. 노동 시대의 종말은 노동을 경시해서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정의하고 절대화한 순간, 인간은 언제든지 자동화 기계, 알고리즘, AI처럼 더 효율적인 존재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파업은 바로 이 역설이 구조적으로 폭발하는 지점이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책정한 것은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폭발적 수요라는 외부 조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직원 1인당 7억원의 성과급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들의 숙련도나 노동 강도가 아니라,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라는 거시경제적 변동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는 노동자의 기여뿐 아니라 글로벌 경기, AI 수요, 장기간 투자 축적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성과 배분의 인과관계를 단순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기 몫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그들은 모든 게 자신들 덕택이란다.
노동 시대의 종말은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던 분배 원리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인정하듯이 기술 발전에 따라 기계와 AI가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이러한 AI 대전환의 시대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는 결코 노동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삼성전자 파업이 ‘노동 시대, 그 종말의 시작’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 패러다임의 모든 전제, 즉 노동의 사회적 약자성, 노조의 도덕적 정당성, 생산성에 비례하는 보상, 기여에 따른 분배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1인당 6억원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하는 노동자, 그 옆에서 평균 월 307만원을 받으며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86%의 중소기업 노동자, 그리고 둘 사이의 격차를 만든 것이 노동의 차이가 아니라 AI 슈퍼 사이클이라는 자본의 운동이라는 사실. 이 풍경은 더 이상 ‘노동의 시대’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AI 강대국을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가치라는 전통적 이념에 매달려서는 AI 시대에 더욱 심화될 사회적 불평등과 분열을 해결하지 못한다.
노동 시대는 연속적인 기술 발전의 물결이 노동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혜택을 준 시대로 정의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모든 새로운 기술은 단기적으로 일부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에게 이익을 분배해왔다. 그러나 AI는 이 약속을 깨뜨리는 첫 번째 기술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AI는 점차 노동의 가치 창출 비중 자체를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의 엄청난 성과급은 AI 시대 노동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노동이 자본의 운동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서 벌어진 일회적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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