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의 나라 [2030 세상보기]
2026.05.12 18:00
누군가를 짜증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계속 '왜?'를 묻는 일이다. 미운 다섯 살 아기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이유를 캐내면 결국 상대방은 화내며 "그냥 해"라고 답한다. 집 앞 사거리에 지방선거 현수막이 걸렸다. 후보자 네 명의 공약이 한결같다. '주민을 위한 일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하겠다는 건지는 없다. 네 장 모두 한 장과 다름없다. 이름만 다를 뿐 약속은 판박이다. 선거 때마다 같은 풍경이다. 사거리를 건너며 궁금해졌다. 이 제도를 왜 하고 있는 걸까.
지방자치제를 30년 넘게 해왔다. 성적표는 참담하다. 2025년 재정자립도는 서울 73%, 전남 23%. 격차도 문제이며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2024년 비수도권 청년 순유출은 6만2,000여 명. 매년 기록을 경신한다. 후보자 36%가 전과자라는 지방의회는 더욱 난맥이다. 지방자치제와 지방의회가 가진 의의를 부정할 수 없으나 매년 나오는 후보자들의 수준과 줄어들지 않는 격차를 보면 그냥 중앙집권이 어떨까 하는 문제적 상상이 이어진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라는데, 동의할 시민이 얼마나 될까.
지방자치제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면, 반대로 행위의 이유를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검찰개혁이다. 기소권을 독점해 권력을 남용했으니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만든 공수처는 5년간 접수 1만988건 중 기소 6건. 연간 예산 296억 원. 기소 1건당 약 250억 원인 셈이다. 검찰청 해체로 이어진 개혁들이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검색해봤다. 지피티부터 제미나이까지 당위로만 가득찬 답을 내놓았다. 지구 대표 인공지능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2024년 마약 압수량은 1,173㎏으로 전년 대비 17.6% 늘었고, 전세사기부터 보이스피싱까지 범죄들은 여전하다.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한국 사회는 '왜'에 대한 토론이 적다. 방향과 도착지에 대한 논의보다 일단 냅다 뛰라는 문화다. 방향과 이유를 묻는 사람에겐 가차 없다. 지금의 지방자치제가 옳게 운영되는 것인지, 검찰개혁은 소수의 정치인과 지지자를 위한 것인지, 다수의 국민을 위한 범죄 예방에 기여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물음표를 붙이면 몰상식하다라는 겁박만 달린다. 결국 그럴싸한 당위가 현실을 압도한다. '시민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라는 문장에 누구 하나 똑부러진 답변을 하지 못한다.
'왜?'라는 질문이 짜증나는 이유는 내가 거기에 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살아온 나를 인정하기 싫어서다. 지방선거는 코앞이고 검찰청도 사라질 예정이다. 그래도 묻겠다. 작금의 지방자치제는 왜 유지해야 하며 검찰청은 왜 없어져야 하는가. '왜'를 묻는 일은 짜증나지만, 묻지 않는 대가는 더 크다. 당위와 기분이 아닌, 근거와 실리로 답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더 이상 존재와 행위의 무가치함과 싸우지 않기 위해서다.
구현모 뉴스레터 어거스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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