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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 AI가 못넘는 숙련공의 직관

2026.05.12 17:30

반도체등 첨단산업 성패
숙련공 '암묵지'에 달려
AI로 베테랑 기술 기록해
K제조업 노하우 전승을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2024년 가동 예정이던 미국 애리조나 TSMC 1공장은 2025년 4분기에야 4나노 양산에 들어갔다. 2공장의 3나노 양산도 2027년 하반기로 밀렸다. 자재 조달, 규제, 비용 상승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더 깊은 병목은 숙련 기술자의 부재였다. 결국 대만에서 베테랑 기술자 500여 명을 불러와야 했다.

미국 항공우주 산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세계 최강 전투기로 불린 F-22 랩터는 2009년 187대를 끝으로 생산이 종료됐고 이후 라인 재가동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다. 부품과 도구, 도면은 남았지만 숙련공이 떠나면서 그것을 실물로 구현할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이클 폴라니가 말한 '암묵지'의 문제다. 인간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숙련된 용접공은 불꽃 색으로 온도를 읽고, 베테랑 설비공은 진동과 소음만으로 이상을 감지한다. 합금 빛깔로 열처리 상태를 가늠하는 눈, 설비가 멈추기 전 공기 흐름을 읽는 직관은 매뉴얼로 옮겨지지 않는다. 이런 암묵지는 사람의 몸, 작업장의 리듬, 동료와의 관계 등 오랜 현장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다. 숙련의 전승이 끊기면 그 지식도 함께 사라진다.

인공지능(AI)은 이 공백을 일부 메울 수 있다. 수십만 시간의 작업 영상에서 반복 동작을 찾고, 센서 신호로 이상을 예측하며, 흩어진 기록을 체계화할 수 있다. 그러나 AI가 학습하는 것은 결국 기록된 신호다. 숙련자의 판단 상당 부분은 애초에 기록되지 않고, 베테랑 자신도 무엇을 근거로 이상을 감지했는지 말로 옮기지 못한다. 표현되지 않은 지식은 데이터셋에 들어가지 않고, 모델이 배울 수도 없다.

더 깊은 한계는 책임에 있다. 라인을 멈출지, 출하를 강행할지 선택은 결과를 떠안는 일이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판단하는 영역이 늘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책임은 사람에게 돌아온다. 현장의 마지막 판단이 사람의 몫인 이유는 더 정확해서라기보다 책임질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시대 성공의 관건은 암묵지의 대체 여부보다 그것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숙련자의 작업 과정, 판단 기준, 실패 경험을 영상·음성·센서·작업일지로 축적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후배에게 전달한다면, 암묵지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조직의 학습 자산이 될 수 있다.

제조 강국 한국이야말로 이 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조선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빠르게 늘고, 한국 청년은 더 이상 쉽게 용접봉을 잡지 않는다. 반도체 역시 멈출 수 없는 양산라인 속에서 베테랑 엔지니어의 셋업·정비 노하우가 핵심 경쟁력이다. 이 지식이 전수되지 않은 채 숙련자가 떠난다면 한국의 제조 강국 신화는 붕괴될 수 있다.

해법은 두 갈래다. 하나는 AI를 기록과 전수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베테랑이 떠나기 전 작업과 판단, 실패담을 데이터로 포착하고 후배가 반복 훈련할 수 있는 디지털 도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AI에만 맡기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손을 길러내는 교육, 함께 실패하고 배우는 문화, 숙련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함께 가야 한다. 대우받지 못하는 숙련은 전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 숙련은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AI는 암묵지를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의 맥락을 읽고, 예외 상황에서 판단하며, 책임까지 감당하는 암묵지는 인간의 영역이다. 미래 경쟁력은 암묵지를 AI로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의 암묵지를 AI와 결합해 조직 전체의 지능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산업의 진짜 자산은 건물·설비·도면만이 아니다. 사람의 몸에 새겨진 시간이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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