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미술 올림픽’ 덮친 전쟁의 그늘…혼란의 비엔날레
2026.05.12 15:22
[앵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현대미술 행사, 베니스 비엔날레가 지난 주말 공식 개막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참가로 역대급 혼란이 빚어졌다는데요.
자세한 상황을 정다원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행사잖아요.
'미술 올림픽' 이라고 불릴 정도인데, 올해는 분위기가 아주 살벌하다고요.
[기자]
네.
개막 전부터 심사 위원단 전원이 사퇴하면서 혼란이 시작됐는데요.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상을 줄 수 없다고 밝혔다가, 파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베니스에 푸틴의 자리는 없다!"]
러시아관 앞에 복면을 쓴 시위대가 몰려들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예술 단체들이 합동 시위에 나선 건데요.
이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엔날레에 불참했던 러시아가 올해 복귀한 걸 규탄했습니다.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푸시 라이엇' 설립자 : "그들은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피로 흠뻑 젖은 자신들의 국가관 안에서 보드카와 샴페인을 마시고 있습니다."]
시위대는 비엔날레 개막 사흘 전부터 러시아관 입구를 막아섰습니다.
결국 러시아관은 사전 공개 기간에만 문을 열고, 개막 이후엔 외벽에 영상을 상영하는 걸로 대체했습니다.
비슷한 시위는 이스라엘관 주변에서도 열렸습니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든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는데요.
이스라엘을 향해 '집단 학살을 예술로 세탁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비엔날레 참가국들도 여기에 가세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의미로, 국가관 10여 곳이 하루 동안 문을 닫은 건데요.
여기에는 한국관도 포함됐습니다.
미술계의 거장들이 직접 나서서, 이스라엘과 손잡고 중동 사태를 일으킨 미국까지 맹비난했습니다.
[아니시 카푸어/작가 : "(비엔날레) 참가 제외 국가에 미국이 포함됐어야 했죠. 증오의 정치, 전쟁. 그 모든 게 너무 오래 지속돼 왔어요."]
[앵커]
예술 축제가 국제 정치의 축소판이 된 것 같네요.
전쟁 당사국들 사이 신경전도 대단했다고요?
[기자]
네.
우크라이나 작가들이 전쟁의 상처를 담은 조각상을 설치하는 동안 러시아 작가들은 바로 맞은편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췄습니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은 러시아관입니다.
사전 공개 기간에 건물 밖에서 시위가 잇따랐지만, 내부는 파티 분위기였습니다.
[크세니아 말리크/우크라이나관 예술감독 : "그들(러시아)이 여기 있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같은 시각, 우크라이나관에는 사슴 형태의 조각상이 도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최대 격전지인 도네츠크 지역에 있던 작품인데요.
키이우 출신의 작가인 잔나 카드류바는 2024년 여름, 불길에 휩싸인 도시에서 크레인을 동원해 이 조각상을 피난시켰습니다.
마치 돌아갈 집을 잃은 난민처럼, 유럽 여러 도시를 2년째 떠돌다가 베네치아로 들어왔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도 고스란히 드러났는데요.
이스라엘은 예술과 정치가 구별돼야 한다며 참가를 강행했고요.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비엔날레 개막 직전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AP 통신은 지정학적 긴장이 비엔날레로 번졌다면서, 역대 가장 혼란스러운 행사라고 평가했습니다.
[앵커]
출품작들도 살펴보죠.
올해는 전쟁을 규탄하는 작품들이 유독 많다고요.
[기자]
네.
이번 비엔날레엔 110개 팀이 참여했는데요.
전쟁을 비판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관람객들이 아기 인형을 안고 있습니다.
우는 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도 직접 갈아줍니다.
일본 출신 작가 아라카와 내시 에이가 선보인 프로젝트인데요.
전쟁터이든 테러 현장이든 어디서나 아이들은 태어나고 돌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아라카와 내시 에이/작가 : "전 세계적인 상황들을 고려할 때, '돌봄'의 의미를 되새기는 건 우리가 관람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굉음이 터져 나옵니다.
정체는 양탄자를 매단 드론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몰도바 출신의 작가, 파벨 브라일라는 살상무기가 돼 버린 드론을 전시장 안으로 들여 왔습니다.
드론에서 무기의 색채를 빼고, 양탄자를 매달아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앵커]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은 것 같은데요.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보적인 권위에도 상처가 남았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올해 비엔날레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는데요.
전시 준비 기간에 총감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심사위원단 전원이 사퇴했고요.
사퇴 여파에 비엔날레의 꽃인 황금사자상 시상이 불발됐고, 사상 처음으로 관객상이 신설됐습니다.
여기다 유럽연합이 러시아 참여에 항의하며, 지원금 중단을 거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비엔날레 내부에서는 현재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오는 11월 22일에 막을 내리는데요,
불안한 출발을 딛고 화해와 소통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영상편집:박혜민 변혜림/자료조사:전가영/화면출처:인스타그램 @ukrainianpavilioninv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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