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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한화 김승연 회장의 '록히드마틴 꿈'

2026.05.12 06:00

KAI 지분 확대 '인수 카드' 아닌 '옵션 카드'
완전 인수보다는 '전략적 동맹'이 더 현실적
자금조달·정부의지·공정위…퍼즐완성의 '장벽'
'단일 챔피언'보다 '다극·컨소시엄 모델' 갈듯
12년 전인 2014년 11월27일 아침이었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주요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놓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날 한화가 발표한 삼성과의 2조원 규모 빅딜, 그중에서도 삼성테크윈 인수과 관련해 그가 던진 한마디는 짧지만 묵직했습니다.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키웁시다."

이는 단순한 인수 소감이 아니었습니다. 화약으로 그룹을 일으킨 선친 김종희 선대회장의 유지를 이어 화약·탄약 회사를 넘어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세계적 방산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한화의 뿌리는 화약이었지만 김 회장의 눈은 포탄을 넘어 자주포와 전투기, 미사일과 레이더, 함정과 잠수함, 위성과 발사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삼성테크윈은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져 있었고, 방산업 전반의 이미지는 각종 비리 논란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한화 내부에서조차 반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대기업들이 모두 포기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라는 판단으로 그는 밀어붙였습니다. 6개월을 장고하고 결심이 서자, 3개월 만에 계약을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김승연식 승부수가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습니다. 결과는 김 회장 자신도 놀랄 만합니다. 삼성테크윈은 한화테크윈을 거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됐습니다. 삼성탈레스는 한화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화는 K9 자주포와 천무, 항공엔진, 레이더, 방산전자, 탄약, 유도무기, 우주발사체로 전선을 넓혔습니다. K9 자주포는 세계 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천무는 폴란드와 노르웨이에서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호주에서는 레드백 장갑차로 대형 계약을 따냈습니다.

12년 전 '승부수'가 가져다준 결실
2023년에는 대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며 잠수함과 군함이라는 해양 전력마저 손에 쥐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순위에서 한화는 2026년 자산총액 기준 149조원을 기록하며 삼성·SK·현대자동차·LG에 이어 5위에 올랐고, 세계 방산기업 순위에서도 20위권 초반에 진입한 국가대표 방산기업이 됐습니다. 2014년 삼성 빅딜이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한민국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기업이자 핵심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관계사 포함 5.09%로 끌어올리고,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바꿨습니다. 연말까지 총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을 8% 안팎까지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시장은 즉각 들썩였습니다. 김 회장이 12년 전에 그렸던 '한국형 록히드마틴'의 마지막 퍼즐, 즉 항공기 체계종합(완제기) 플랫폼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화는 이미 K9과 천무로 지상 전력을, 한화오션으로 해양 전력을, 누리호 고도화와 차세대발사체 사업으로 우주 영역을 노리고 있습니다. 정작 하늘만 비어 있습니다. KF-21 보라매에 들어가는 엔진과 핵심 부품, 레이더와 항전 장비에서는 한화 계열의 역할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제기 플랫폼은 KAI의 영역입니다. 한화가 엔진과 레이더를 담당해도 그 위에 얹을 기체가 없다는 모순이 남아 있었습니다. KAI를 확보하면 이 마지막 공백이 메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이루는 게 정말 가능할까요. 우선 자금조달부터 만만찮습니다. KAI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의 지분은 26.41%입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으면 인수금액은 5조~6조원대로 추정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3조6000억원의 유상증자에 나섰지만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와 시장의 반발로 규모를 줄였습니다. 한화솔루션도 대규모 증자를 추진했다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미 한화의 자본조달 방식에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록히드마틴의 꿈'은 진짜 이뤄질까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증과 승계 이슈를 겨냥해 "자본시장을 현금인출기로 여긴다는 주주들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런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6조원짜리 KAI 인수에 베팅하기 위해 또다시 조 단위의 증자 카드를 꺼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본시장의 문턱도, 정치적 허들도 높습니다. 방산기업은 겉으로 드러난 수주나 실적과 달리 현금흐름이 좋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입니다.

더 본질적인 벽은 정부의 의지입니다. 이 대통령은 방위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동시에 방산 생태계가 소수 대기업 중심이라는 지적을 언급하며, 많은 기업이 규모와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방산을 키우되 독과점은 경계하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정부 자산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진행·검토 중인 자산 매각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도 내렸습니다. KAI 같은 국가안보 핵심 자산을 특정 대기업에 통째로 넘기는 그림은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 맞지 않습니다.

다만 정부의 태도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독과점을 경계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한화를 'K방산 첨병'으로 적극 활용합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노르웨이를 찾아 한화의 천무 수주전에 힘을 보탰고,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의 상징도 한화필리조선소입니다. 미국과의 관세·무역협상 카드로는 한화를 적극 활용하면서, 정작 KAI 매각에는 독과점과 특혜 논란을 의식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화 입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이중성이 답답하겠지만 우회로도 마땅치 않습니다.

공정위 변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때 공정위는 함정 부품 견적가 차별 금지, 경쟁사의 기술정보 요청에 대한 부당 거절 금지, 경쟁사 영업비밀의 한화 계열사 제공 금지 등 시정조치를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 이행기간을 2029년까지 3년 더 연장했습니다. KAI까지 묶이면 논란은 훨씬 커집니다. 항공기 기체, 항공엔진, 레이더, 항전장비, 미사일, 위성, 발사체, 군함, 잠수함, 자주포가 한 그룹에 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정책 관점에서는 국가대표 방산기업이지만, 공정위 관점에서는 거대한 수직결합입니다.

한화 방산을 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이중성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답은 어느 정도 분명해집니다. 한화의 KAI 경영참여 선언은 '인수 카드'가 아닌 '옵션 카드'로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5000억원으로 8% 안팎의 지분을 사두면 한화는 세 가지를 얻습니다. 첫째, 주주권을 행사해 KAI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둘째, 훗날 정부 정책이 바뀌어 KAI 지분 매각 논의가 이뤄질 때 1순위 전략적 후보 지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항공엔진·무인기·항공무장·우주사업 협력에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6조원짜리 인수에 비하면 보험을 드는 비용 수준입니다.

한화 입장에서는 굳이 KAI를 통째로 사지 않아도 사업 시너지의 상당 부분을 협력으로 챙길 수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와 KF-21 최초 양산 부품 계약을 맺었고, 방위사업청과는 KF-21 엔진 공급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KAI와 무인기, 항공엔진, 우주시장 공동진출을 위한 협력도 강화했습니다. 폴란드 FA-50 수출에서 보듯이 '팀 코리아'로 나가는 모델로도 글로벌 수출은 가능합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KAI 완전인수보다 사업협력 심화와 제한적 경영 영향력 확보가 가장 현실적인 그림입니다. 다음 정부나 정치지형에 변화가 있을 때 수출입은행 지분 일부를 전략적투자자에 넘기는 절충안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김 회장이 12년 전에 꿈꾼 '록히드마틴식 단일 종합 방산기업'은, 솔직히 말하면 단기간에 이루기 어렵습니다. 이 과제는 김동관 부회장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한국에서 과연 록히드마틴식 모델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남습니다. 록히드마틴이 글로벌 1위가 된 것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국 군수 수요, 정부의 압도적 구매력, 동맹국에 대한 무기공급권, 그리고 오랜 방산 인수합병(M&A)의 역사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한국은 이 조건들을 미국만큼 갖추지 못했습니다. 확보하려 해도 공정거래 규제, 정권교체, 정부 조달의 경직성, 공기업적 통제, 재벌 특혜 논란이라는 국내 정치 지형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종합 방산기업' 완성은 김동관의 과제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록히드마틴식 '단일 챔피언'보다 유럽형에 가까운 '다극·컨소시엄 모델'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화, KAI, LIG넥스원, 현대로템,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주력 분야를 갖고 경쟁하고 협력하는 구조입니다. BAE시스템스(영국), 레오나르도(이탈리아), 탈레스(프랑스), 라인메탈(독일), 에어버스(유럽 합작), MBDA(유럽 합작)가 국별 대표기업과 다국적 컨소시엄을 오가며 역할을 나누듯이 한국도 단일 절대강자보다는 여러 대표선수가 프로젝트별로 연합하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한화로서는 아쉽겠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입니다. 12년 전 꿈의 록히드마틴을 향한 김 회장의 결단은 위대했고, 그 결과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을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의 마지막 장, 즉 KAI까지 품는 '단일 종합 방산기업 완성'은 우리의 정치·경제구조가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KAI는 한화의 마지막 퍼즐일 수 있지만, 국가가 쉽게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 회장의 꿈은 한화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이 KAI 인수와 단일 방산제국 완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습니다. 한화가 가야 할 길은 '록히드마틴 복제'가 아니라 '한국 방산 대표팀의 주장'입니다. 록히드마틴이 되겠다는 희망은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서는 완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화가 한국 방산 대표팀의 주장으로 서는 것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에 더 맞는 현실적 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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