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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경쟁 아닌 ‘쩐의 각축장’ 된 교육감 선거

2026.05.12 05:02

학원·교통·의료비 등 현금성 공약만
인권조례·혁신학교 같은 비전은 실종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서 열린 본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안민석 경기교육감 예비후보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6·3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 추진 등 교육 철학이 담긴 공약들은 사라지고 ‘현금성 공약’이 정책 공약의 빈자리를 파고들고 있다. 보편 복지 확대, 고교 서열화 완화, 학생 인권 증진 등 시대정신을 담은 교육 공약이 사라지면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무관심도 함께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교육감 후보들은 학원비 일부 부담, 교육펀드 자금 지급, 교통비 전액 지원 등 당장 손에 잡히고 유권자에게 쉽게 전달되는 현금성 지원 공약을 잇달아 내놓았다.

보수 단일 후보로 선출된 윤호상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는 ‘공립형 학원’을 선정해 학원비의 약 40%를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선출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는 만 3~5살 유아교육 완전 무상화와 초중고 학생의 등하교 교통비, 수학여행·현장체험학습 비용 전액 지원을 약속했다. 재선에 나서는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해 고3 학생 약 12만명에게 1인당 30만원씩 운전면허 취득비를 지원한 데 이어, 중3~고3 학생의 독감 예방접종비 지원도 추진한다. 경기도교육감 진보 진영 단일 후보인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학교 1학년 학생에게 100만원의 펀드 자금을 지급해 6년간 위탁 운용한 뒤 졸업할 때 수익금과 함께 돌려주는 ‘씨앗 교육펀드’를 공약했다.

현금성 공약이 대두되는 흐름은 전국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북에서는 이용기 예비후보가 고3 학생에게 100만원의 사회진출지원금 지급을 공약했고, 충북에서도 △초중고 입학지원금 30만원 지원(김성근 예비후보) △초등학생에게 10만원, 중고생에게 100만원 규모의 ‘마중물 교육펀드’ 운영(신문규 예비후보) △‘인공지능(AI) 100만원 부트캠프 펀드’ 조성(김진균 예비후보) 등의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현금성 지원 공약이 교육감 선거 전면에 놓이면서 학교의 변화와 교육 방향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7년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초기 교육감 선거의 정책 논쟁은 기존 교육 방향에 대한 토론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2009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전 교육감이 내건 혁신학교 설립과 무상급식 공약은 입시 위주의 공교육을 바꾸고 보편 복지 제도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체벌 금지와 두발·복장 규제 폐지 등을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 공약으로 확산되며 학생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만들었다.

2014년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한 진보 교육감들이 내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공약은 고교 서열화 해소와 학교 선택권 보장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했다. 2018년에는 서울·세종·강원·충남 등 각 지역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학원 휴일 휴무제’를 통해 청소년의 과도한 학습을 막고 건강을 보호하자는 취지의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이덕난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장은 “학생인권조례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심각했던 학생 체벌 금지의 필요성을 정책화했고, 무상 시리즈 공약도 ‘보편복지’에 대한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공약이었다”며 “지금은 ‘무상 교육’이 아닌 교사-학부모 간 대립으로 인해 무너진 교육공동체의 신뢰 문제 등을 해소할 공약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정말 필요한 공약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금성 공약이 힘을 얻는 데엔 교육의 목적이 ‘생존 경쟁’으로 좁아진 현실이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태중 중앙대 명예교수(교육학)는 “지금은 교육도 생존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한테 직업을 뺏기지 않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배우라고 하는 시대”라며 “교육감 선거에서 현금성 공약이 나오는 것은 우리의 교육관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도 “사회적으로 교육 담론이 상실되고 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도자가 없다 보니 의미 있는 교육 공약을 낼 수 있는 역량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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