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나 몰게 된 빵택시 '대박'… "여러분,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人터뷰]
2026.05.12 04:31
안성우씨, 연말까지 예약 마감 분주
창업 실패, 시한부 고비 넘긴 '오뚝이'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 볼 때 가장 행복
"죽는 날까지 승객과 함께하고 싶어"
편집자주
한국일보 '人터뷰'는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사연이 깊은 인사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잔잔한 휴먼 스토리를 전달합니다.휴대폰에서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택시는 연말까지 예약이 다 찼고요. 버스는 여행 사이트에서 예약하면 돼요." 택시 운전대를 잡은 채 능숙한 솜씨로 예약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안성우(64)씨. 그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빵택시' 열풍의 주인공으로, 대전에선 성심당 못지않게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지난 6일 대전역에서 만난 안씨는 대전 시내 빵집을 도는 '빵티칸 순례'(빵집 투어)를 마친 승객들에게 수료증을 건네며 기념사진 촬영에 한창이었다. 수료증을 받아 든 사람들은 만면에 웃음꽃을 그렸다. 안씨는 몰려드는 예약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달부터 '빵버스'까지 대절해 운영에 나섰다.
그는 승객들이 떠난 뒤에도 몇 분 간격마다 울리는 예약 문자와 전화에 쉴 틈이 없었다. 빵택시를 시작한 이후의 생활이 어떤지 묻자 "요즘이 제일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안씨는 사업 실패로 고개를 떨궜고 건강 악화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이어왔다.
호기심 왕성했던 청년기… 컴퓨터에 빠지다
안씨는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여학생이 많다'는 친구 말을 듣고 교양과목인 '전자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 수업을 듣다가 컴퓨터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군 제대 후 현대건설에 입사한 안씨는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현장설계변경 업무 등을 맡았다. "당시 미국 베텔사와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설계와 감리 전반을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 웨스팅하우스 사람들은 일을 정말 빠르게 처리하더라고요. 2, 3일 걸릴 계산도 반나절 만에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컴퓨터를 가져와서 작업하고 있었죠."
안씨는 컴퓨터를 업무에 활용하고 프로그램도 짜면서 더 빠져들었다. 자신감이 생긴 안씨는 30대 중반 컴퓨터 동호회원들과 의기투합해 3차원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가 쓴맛을 봤다. 하지만 안씨는 실패도 학습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았다.
우연히 쓴 여행 후기... 전환점이 되다
안씨의 빵택시는 2000년대 이후 그가 몸담았던 여행업계에서 비롯됐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닌 안씨는 우연히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린 '여행 후기 글'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여행업체 러브콜을 받았다. 그렇게 상품 기획 업무를 맡게 된 안씨는 일본과 중국, 홍콩 등을 오가며 콘텐츠를 만드는 남다른 시각을 키웠다.
특히 2005년 일본 시코쿠 출장 중 접한 '우동택시'는 그의 머릿속에 오래 각인됐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맛집을 택시와 결합해 문화 콘텐츠로 승화시킨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도 도시형 테마 관광택시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상품을 기획하다 보니 자연스레 도시별 음식점과 빵집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됐다. 회사에서 명예퇴직한 안씨는 여행업계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빵택시를 구상했다.
"빵택시를 시작하기 전에 두 가지 기준을 세웠어요. 사람들이 잊지 못할 정말 좋아할 아이템을 고민해보자. 그리고 고객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거였죠. 그러니까 답이 보였어요."
"돈보다는 고객 만족"… '빵택시'에 올인
안씨는 2022년 무렵 택시기사 면허를 땄다. '택시'와 '빵집 투어'를 결합한 '빵택시' 사업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택시회사에 3년 동안 다니면서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인 빵택시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입소문을 탔다. SNS 영상이 퍼졌고 방송까지 탔다. 하지만 인기가 커질수록 문제가 생겼다. 대전시가 여객운수사업법 위반을 이유로 운행 중지를 통보한 것이다. 안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억울한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화만 낸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불평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택했다. 예약 손님들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어 3개월 동안 아내의 차를 빌려 무상으로 빵택시 투어를 진행했다. 기름값과 운영비는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 승객들에게는 생수와 음료, 간식 꾸러미까지 챙겨줬다. 그 과정에서 안씨는 '고객 만족'의 가치를 깨달았다.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니까 그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내와 두 딸은 안씨의 건강을 우려해 택시 운행을 말렸다. 주변에서도 "대전시에서 막는데 왜 계속하느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무상 빵택시를 운영할 때 시민들이 너무 좋아해줬어요. 차가 긁히면 먼저 도와주러 오고 응원해주고. 그런 반응을 보면서 버틴 거죠." 성심당에서도 안씨에게 힘을 보탰다. 안씨는 "회장님이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기에 빵집 투어용 요리사 모자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300개를 지원해줬다"고 했다.
안씨는 3월부터 고급형 택시 제도를 통해 유료로 빵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대전시는 2024년부터 다양한 관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고급형 택시는 사업자가 요금을 자율적으로 신고해 운행할 수 있는 대신 배기량 2,800cc 이상 차량만 운행이 가능했다. 안씨는 차량 구입 등을 위해 갖고 있던 자금을 끌어모았다. 예약은 연말까지 꽉 찬 상태다.
'빵택시 영광' 있기까지 버텨 냈던 나날들
안씨 인생에 큰 고비도 적지 않았다. 여행업체 지점장으로 근무할 당시 두 번의 죽을 위기가 찾아왔다. 2016년 과로로 쓰러졌던 안씨는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간신히 살아났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가슴 통증이 이어졌다. 심각한 관상동맥질환이었다. "병원에서 '어떻게 이 몸으로 살아 있느냐'면서 '앞으로 4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안씨는 첫 수술을 받고 2년 뒤 과다 출혈로 다시 입원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심장약과 혈관약을 복용한다. 예전보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만, 가족들 걱정은 여전하다. "아내가 처음엔 빵택시를 반대했지만 지금은 회사까지 그만두고 도와주고 있어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남편을 챙겨주려고 함께하는 거죠."
일 욕심은 많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 안씨에겐 가장 힘들었다. "사업 실패는 젊어서도 해봤고 나이 들어서도 해봤지만, 그거야 준비가 덜 됐거나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다시 일해서 복구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몸이 아프니까 마음을 다잡기 쉽지 않았어요. 일어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오른팔 마비에 졸도 증상까지 자주 있었으니까요. 가족이나 지인들은 지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던 터라 안씨에게 삶의 의미가 남달랐다. 그는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죽지 않았으니 더 배우고 더 일하고 더 잘하자는 마음뿐"이라며 "남은 삶까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이롭고 행복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을 세계인의 버킷리스트로 만들고 싶어"
안씨가 빵택시를 통해 남은 일생 동안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언젠가는 '한국 가면 대전에서 빵은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게 전 세계 사람들의 버킷리스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대전뿐만 아니라 광주, 목포, 부산, 서울 등 대한민국 모든 지역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면 더욱 좋겠죠."
그는 청년들을 향해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고난은 걸을 때 마주치는 작은 언덕길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실패는 내 부족함을 확인하는 성과표일 뿐이고요. 제 삶을 돌아보니 무엇을 하든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꼭 얘기하고 싶어요."
안씨는 내일도, 다음 날도 승객들과 함께 빵집 골목을 누빌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그가 보물처럼 품고 있던 '빵명록'에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라는 승객들의 손글씨로 빼곡했다. 빵명록은 빵택시에 탑승하는 승객들이 안씨에게 남긴 방명록이다. "가끔 힘들 때면 남겨진 기록을 빠짐없이 읽으면서 힘을 얻어요. 승객들이 항공기 일등석 타는 느낌을 받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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