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주도 성장, 이익 원청 독식은 ‘지속 가능성’에 한계···자원 재분배 논의를
2026.05.11 21:07
삼성전자 주주들, 노사 문제 개입
성과급 논쟁에 국가 위기 가능성
하이닉스도 협력사엔 차등 지급
정부, 과도한 세액 공제 손보고
경제적 위기에 완충망 마련해야
“삼성노조 여러분! 5000만을 이기려 하지 마소. 국민여론이 등돌렸다.”
지난 6일 삼성전자 노조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인근에 이 회사 주주들이 현수막을 걸었다. 현수막은 삼성전자 노조가 촉발한 초과 이익 배분 논쟁이 어디에 전선을 두고 있는지 보여준다. 주주들, 과장을 보태면 5000만명과 삼성전자 노조의 대립이다.
노조가 처한 여론지형도 좋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부 조직노동자가 자기만 살겠다고 부당하고 과도한 요구를 해서 국민들에게 지탄받게 되면, 해당 노조뿐 아니라 다른 노동자에게도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했다.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방안이 노조 요구안에 빠져 있다는 점도 노조를 비판하는 명분이 됐다. 흥미로운 건 기본적으로 노사가 전선을 형성하는 임금 협상에서, 회사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회사 대신 전면에 나선 주주, 여론 주도층의 훈수와 일침, 협력업체 상생이라는 대의가 결합돼 노조는 여론의 벼랑 끝에 몰렸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27일 교섭이 결렬된 지 45일 만인 11일 협상테이블에 노조와 마주 앉았다.
논쟁은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이 과도한가’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논쟁을 계기로 초과 이익 배분의 대상자가 회사와 임직원, 주주를 넘어 협력사의 노사까지 확장된 만큼, ‘노조 때리기’를 넘어 공급망과의 분배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삼전닉스(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이 대부분 외부 요인에 기인하듯,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외부 요인에 의해 삼전닉스의 위기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자원의 재분배, 반도체 사이클의 충격 완화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급 논쟁 너머의 분배 구조
이 논쟁을 촉발한 건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다. 기존에는 연봉의 50%까지만 받을 수 있었던 성과급의 상한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것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300조원, 노조 요구가 관철되면 45조원을 성과급 재원으로 써야 한다. 노조는 교섭이 결렬될 경우 오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을 예고했다.
그간의 노사 갈등과 구분되는 점은 주주가 노사 관계에 직접 이해당사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주주들은 주주가 회사의 위험을 최종 부담하는 만큼, 초과 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주주에게 이익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반론도 있다. 주주 배당 성향이 높은 회사일수록 연구·개발이나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협력사에 대한 단가 인하 압력이 강해지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가 회사의 이익을 우선 가져가는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과 연구 결과”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기술 경쟁 심화로 글로벌 기업들은 더욱 과감하게 인적 자본에 투자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애플, 구글 등은 직원들에게 현금 성과급 이외에 주식 지급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갈등도 경쟁사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정책 변경이 발단이 됐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기로 했고, 지난해에는 기본급의 1000%라는 성과급 상한도 없앴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삼성전자의 무노조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23일 노조 집회에 직원 4만명이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1인당 평균 급여에서 줄곧 국내 동종업계 1위를 달리던 삼성전자는 2023년 처음으로 하이닉스에 역전됐고, 지난해에는 하이닉스보다 2700만원가량 낮았다.
이는 인재 유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 출신인 박준영 산업인류학연구소장은 퇴직 후 삼성전자 등 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과 함께 대학생 취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박 소장은 “지난해 삼성전자에서 인턴으로 있었던 학생이 ‘GSAT(삼성그룹 채용 필기시험) 안 보고 싶다. SK하이닉스 가고 싶은데 붙으면 어떡하냐’고 하더라”며 “2018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기술력은 SK하이닉스보다 1년 앞섰는데 2023년이 됐을 때는 하이닉스에 6개월 뒤처졌다. 그사이에 있었던 일 중 하나가 삼성의 기술인력들이 SK하이닉스로 넘어간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는 기업이 벌어들인 돈에서 노동자에게 가는 돈이 줄어들고, 사내 유보금이 늘어나는 상황이 오히려 더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오히려 노동보다 자본에 더 많은 돈이 흘러가고 그중에서도 사내 유보금, 비영업용 부동산 투자가 늘어나는 게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원청의 호황, 협력사의 불안
삼성전자 노조는 내부적으로는 역대급 실적이 난 반도체(DS) 부문과 가전·모바일(DX) 부문의 형평성 문제로, 외부적으로는 협력사와 상생하는 방안을 담아내지 못한 문제로 빈축을 샀다. 이는 역설적으로 원청의 이익을 협력사와 나눠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주주들 주장대로 위험을 감수하는 이들에게 이익이 먼저 돌아가야 한다면, 이익의 분배 대상에는 협력사, 특히 협력사 노동자들이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내협력사 직원 A씨는 “호황이 되면 삼성전자 직원들이 5000만~8000만원씩 받을 때, 우리는 6개월에 최대 125만원씩 두 번 받을 수 있다. 업체별로 등급이 나뉘어서 많이 깎이기도 한다”며 “불황일 때는 고통분담, 원가 절감을 이야기하면서 하청부터 손본다”고 했다. 협력사 직원들이 불황 때 감당하는 위기는 인센티브나 명절 떡값이 줄어드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심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2024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진입이 늦어지면서 고전했던 삼성전자는 그해 직접채용 노동자 수가 약 4700명 늘어나는 동안, 사내협력사 등 소속 외 근로자는 1300여명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통 큰 성과급 지급에 노사가 합의한 SK하이닉스지만, 협력사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의 사내협력업체 직원 B씨는 “2024년 낸드플래시를 축소하고 HBM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였는데, 일감이 줄면서 인원이 10여명 줄었다. 그런데 6개월 뒤부터 다시 일감이 늘어나면서 사람을 뽑기 시작하더니 그때 이후로 100여명 늘었다. 지금 호황인 건 좋다. 그런데 이걸 겪은 입장에서 앞으로 몇년 후 물량 줄어들면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회사별로 차등해 협력사 직원들에게 1년에 한 번 성과급 명목의 상생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B씨의 회사에는 1인당 500만~600만원이 지급됐다. B씨는 “SK하이닉스 직원들이나 협력사 직원들이나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고, 공장 주변의 같은 지역에 산다. 동료들이랑 ‘내년에는 (성과급)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텐데 소외감 느끼면서 근무할 수 있겠냐’ ‘하이닉스 안에서 일한다고 말이나 하겠냐’라는 얘기를 한다”고 했다.
이익은 원청이 독식하고, 비용은 협력사로 전가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원청 노사가 협력사 상생을 위해 나서주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협력사의 경우 노조가 있는 곳이 드물고, 노조가 있더라도 협력사는 원청에서 내려준 도급비 안에서만 운신이 가능해 근본적인 문제를 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협력사 노조가 원청과 교섭할 길이 열렸지만, 협력사의 성과급 문제가 원청이 교섭 의무를 지는 의제로 판정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반도체 등 IT 제조업에 성장이 집중되는 K자형 경제 현상이 심화되면서, 자원의 재분배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확실한 수단은 세금이다. 그런데 정부는 세금을 덜 걷어왔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공제 혜택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2020~2025년 세액 공제 등 각종 감면 혜택으로 25조원가량의 법인세를 덜 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반도체특별법이 오는 8월 시행되면 세액 공제가 현행 15%에서 20%로 더 오른다. 세금을 더 깎아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전닉스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점, 이들의 위기가 국가적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반도체 경기에 우리 경제가 휘둘리지 않도록 완충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민 교수는 “국가가 전력공급 등 인프라는 지원하되, 세금은 원칙대로 걷거나 조금 더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국민연금 등 주주권을 통한 개입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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