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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의 인 / 문학 현장]구체적 보편자, 대통령 이재명의 인권

2026.05.11 19:54

| 서영채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현실 정치의 문법은 연극과 유사하다
무대의 정치인들은 상대를 보고 행동하지만
그 행동이 정작 겨누는 건 객석의 군중들 관심이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양비론과 양시론이
그래서 쉽게 먹힌다 이런 방식의 혐오야말로
정치가 넘어서야 할 가장 큰 허들일 것이다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로서 존엄성이 지켜지는지는
이제 공동체 전체의 존엄이 걸린 문제다
그것은 현실 정치 너머의 문제가 됐다

1.

구체적 보편성이라는 헤겔의 개념이 있다. 일견 이상해 보이는 말이다. 보편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명사라서 구체성과의 접합이 모순적인 까닭이다. 보편적 인권이나 보편적 사랑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보편적 복숭아나 보편적 호랑이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복숭아나 호랑이는 구체적인 모습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성의 개념이 지니는 현실적 문제성은, 보편적 인권이나 사랑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의 영역에서 생겨난다. 어떤 보편성도 자기 안에 있는 특수성에 의해 대표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보편적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보편적 인권이 있을 수 있을까. 보편적 사랑이란 대체 어디까지 이르러야 가능한 것일까.

인권이나 평등, 사랑 같은 보편적 이념들은 그래서 자칫하면 허울만 좋은 껍데기일 수가 있다.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 보편성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이다. 보편성이라는 범주를 대표하거나 그로부터 배제된 특수한 종은, 보편성 자체를 전복시켜버리거나 그 치명적 진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인권이라는 단어와 함께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선다고?

2.

보편적 이념으로서의 인권이나 평등을 떠올려보자. 우리 헌법 10조와 11조는 불가침의 인권과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누구라도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할 까닭이 없다. 추상적 수준에서 가치와 이념을 옹호하는 일은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켜져야 할 인권과 평등이 구체적으로 누구의 것인지를 묻는 순간 문제가 생겨난다. 구체적 보편성이 문제성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큰 사람의 인권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이 지닌 지위와 권세와 재력이 자기 권리의 방탄복이 될 것이다. 문제는 지위와 권세가 없는 사람, 돈이 없어 비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의 권리이다. 바로 그 사람의 존엄성이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는 누구일까. 인권의 가장 외곽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비정규직 외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혹은 독립적 생존이 힘겨운 장애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대한민국 헌법 10조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보려면 바로 그 사람들, 외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A씨와 장애인 B씨의 삶을 들여다보면 된다. 그들의 법적 권리와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는 일이 우리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고, 우리 공동체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해당한다.

그런데 바로 그 구체적 보편자의 자리에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집어넣는다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라고? 이게 말이 되는가.

3.

어이없게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4월30일에 마감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을 지켜보면서였다. 거기에서 다뤄진 내용도 그러했지만, 국조특위 활동을 보면서 새삼 놀랍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주류 언론의 침묵이 그것이다. 대장동 사건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과 행태를 통해, 검찰의 불법 수사와 조작기소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주류 언론은 평온하고 고요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이재명에 대한 기소가 조작된 것이었음을 다들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소식 따위는 뉴스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이 침묵은 대체 무엇인가.

물론 사태의 진상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정치 활동이나 SNS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 같은 사람의 눈에도 대장동 사건 등의 진상은 자명해 보였다. 그 사태로 거액의 수익을 챙긴, 검찰과 법조기자 출신들의 존재와 인맥이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성남시장 이재명은, 돌이킬 수 없는 판을 뒤늦게 발견하고 시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능력 있고 생각이 바른 선출직 공무원이었다. 뉴미디어의 다양한 소스들이 있어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로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뒤로 펼쳐지는 어이없는 일들을 목격해야 했다. 성남시장 출신으로 경기지사가 된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의 암흑 속에 존재하는 보스, ‘그분’이 되었고,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덮어버린 검사 윤석열에게 쏟아져야 할 비난을 거꾸로 받아야 했다. 인기 있던 TV 프로그램에 따르면 이재명은 조폭과 연결되어 있는 정치인이었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 자신이 조폭의 일원이기도 했다. 게다가 검찰에 따르면 그는, 자기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민간 기업을 통해 북한에 돈을 보낸 정치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를 향한 검찰의 그물은 집요하고 촘촘했다. 검찰발 소식통을 인용하는 주류 매체들은 그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대선이 임박했던 2022년 봄,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지만, 이재명은 좀…이라며 말을 흐리던 동료의 표정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그가 이런 추문의 포화에 휩싸였던 까닭 또한 자명해 보였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기 때문이고, 집권 엘리트 조직의 입장에서는, 검정고시 출신의 비타협적인 정치가로서 이질적이고 껄끄러운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결국 0.73%포인트 차이로 대선에서 패배했고, 3년여의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현직 대통령이 되어 있다. 친위 쿠데타에 실패한 윤석열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민주주의의 성취도 다른 많은 영역처럼 부침을 거치며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현실 정치의 문법은 연극과 유사하다. 무대에 선 정치인들은 상대를 보고 행동하지만 그 행동이 정작 겨누고 있는 것은 객석에 있는 군중들의 관심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고,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양비론과 양시론이 매우 쉽게 먹힌다. 정치인들은 어차피 모두 다 거기서 거기라고 도매금으로 넘겨버린다. 이런 방식의 정치 혐오야말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정치가 넘어서야 할 가장 큰 허들일 것이다.

오늘 나는 또 한 번 바보 취급을 당했다. 출근길에 마주쳤던 현수막이다. “대통령 죄는 삭제, 국민은 세금 폭탄. 서울 시민이 심판해야 합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4.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과 법원은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지닌 기관들이다. 권한이 셀수록 조직은 느리게 변한다. 권한이 강하니 바뀌어야 할 까닭이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법원은 멀리해야 한다고, 변호사비는 아끼는 것이 아니라고. 윤석열의 말대로, 일단 검찰에 의해 기소 처분을 받게 되면 한 사람의 삶이 쑥대밭이 된다.

법정에 들어가본 사람은 안다. 개인의 억울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검사와 판사는 피고인을 양쪽에서 잡고 빨래 짜듯 쥐어짠다. 피고름을 받아먹는 사람들은 변호사들, 전직 판사 혹은 전직 검사들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원한에 찬 사람들에게 법복 귀족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를, 주여, 저들은 알지 못하나이다.

대통령 이재명이 우리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인 것은,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검찰과 사법부의 불사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제 악의 근원이 되어 있다. 대통령은 법치의 상징이지만 특별하게 법에 구속된 존재이다. 조폭 사법의 대상이 되었던 대통령 이재명은 인권의 구체적 보편자, 올바름의 살아 있는 증상이다. 법치주의의 시커먼 구멍이 그곳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 그의 존엄성이 지켜지는지는 이제 공동체 전체의 존엄이 걸린 문제가 된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권리가 아니라 권리 자체를 구현하는 구조의 문제이다. 그것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나라 국민의 70%이다. 그것은 이제 현실 정치 너머의 문제가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알기를 바란다.
서영채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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