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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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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성과급 논란... 본질은 계산식이 아니라 신뢰

2026.05.11 16:31

[기고] 돈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의 붕괴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328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756.1%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4월 30일 공시했다. 매출은 133조873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69.2% 증가했다. 순이익은 47조2253억원으로 474.3% 늘었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본사 모습.
ⓒ 연합뉴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은 한 기업 내부의 임금 협상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성과급은 원칙적으로 노사 자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처럼 한국 경제의 투자, 수출, 고용, 협력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서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그 비용은 기업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생산 차질, 투자 지연, 핵심 인재 이탈, 협력망 불안, 주주 신뢰 약화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9조 원, 영업이익 57.2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만 보더라도 1분기 매출 81.7조 원, 영업이익 53.7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5년 연간 영업이익 43.6조 원을 뛰어넘는 실적입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는 "성과와 보상의 연결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구조적 불신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부 갈등은 단순한 노사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변수로 작용합니다. 협력업체만 해도 수천 곳에 이르며, 이들의 고용과 투자 계획은 원청의 안정성에 직결됩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놀라운 성과입니다. 그러나 큰 성과가 자동으로 큰 신뢰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가 커질수록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어떤 절차로 검증하며, 어떤 한계 안에서 나눌 것인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 가능성을 제기했고, 5월 21일부터 18일간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사회 의장까지 나서 갈등 장기화가 투자자, 임직원,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향한 비난이 아닙니다. 더 큰 목소리도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반복하지 않게 만드는 기준의 설계입니다.

특히 노조는 성과급 격차와 제도 불투명성을 이유로 국내는 물론 해외로의 인재 유출이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성과급 제도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유지와 직결된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비판은 과격하지만, 아프게 찌른다

첫 번째 기고문 이후 여러 비판이 있었습니다(관련기사 :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한국사회가 미뤄온 질문을 소환하다 https://omn.kr/2i3of).

"노사 자치 문제에 왜 외부가 개입하느냐."
"주주 이익은 왜 빠져 있느냐."
"결국 양비론 아니냐."
"외부 개입 입장에서 장황하게 얘기하지만 노조 편드는 것 아니냐."
"산업연대기금은 뜬구름 잡는 얘기다. 현실성 없는 이상론이다."

그리고 더 직설적인 표현도 있습니다.

"초과이익공유는 기업 돈을 뜯어가는 것이다. 그건 도둑질이다. 공산주의다. 그렇게 하면 기업 망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파괴한다."

특히 초과이익공유와 산업연대기금에 대해서는 재산권 침해나 반시장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습니다. 가볍게 볼 수 없는 비판들입니다. 그 안에는 현실의 불안이 담겨 있습니다. 기업의 투자 여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주주 환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걱정, 분배 논의가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계심은 충분히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우려에 답하지 못한다면 어떤 대안도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글은 노사 교섭의 결론을 외부에서 강제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성과급의 구체적 수준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노사 자치가 지속되려면 그 자치가 불투명성 위에 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치는 비공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공개와 검증 위에서 지속됩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산정할 것인가.
그 기준을 누가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는가.
노동 보상, 재투자, 주주 환원은 어떤 균형 안에서 조정될 것인가.
협력사와 산업 생태계에는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갈등은 매년 반복될 것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보상은 불신을 만든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쟁의 핵심에는 OPI, 즉 초과이익성과급 산정 방식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성과급 제도는 존재합니다. 문제는 제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제도가 얼마나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느냐입니다. 기업이 성과급 산정에 EVA, 즉 경제적 부가가치 지표를 활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EVA는 단순 영업이익이 아니라 자본비용까지 고려해 실제로 창출한 가치를 보려는 지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투자와 자본 효율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지표가 곧 공정한 제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EVA는 공식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가정이 중요합니다. 자본비용은 어떻게 산정되는가. 투자자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일회성 비용과 미래 투자비는 어떻게 조정되는가. 사업부별 기여도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이런 요소들이 성과급을 좌우하지만, 구성원들이 그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숫자는 객관적으로 보여도 결과는 불투명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회사는 큰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왜 성과급은 기대와 다른가."

이 질문에 회사가 답해야 합니다. 모든 영업비밀과 세부 수치를 공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성과급이 왜 늘었고 왜 줄었는지, 어떤 지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사업부별 성과가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설명되어야 합니다. 구성원이 이해할 수 없는 성과급은 보상이 아니라 통보가 됩니다. 통보는 신뢰를 만들지 못합니다. 성과급 제도의 핵심 갈등은 OPI 산정 방식에 대한 신뢰 부족입니다.

EVA(경제적 부가가치) 기반 접근은 이론적으로 합리성이 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변수 설정이 불투명하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자본비용 산정 방식, 투자자본 범위, 사업부 기여도 반영, 일회성 비용 처리 방식이 모두 결과를 결정하지만 구성원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과는 있는데 보상은 설명되지 않는 구조"가 됩니다. 노조는 이에 대해 보다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현재 구조는 "총보상 우위 원칙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이며, 과거 삼성전자가 유지해온 업계 최고 보상 원칙이 SK하이닉스 등 경쟁사 대비 약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HBM 성과 이후 팀 해체와 호두과자 지급" 같은 사례는 구성원에게 상징적으로 강한 불신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 문제가 아니라 보상 체계의 정당성 문제입니다. 노조의 핵심 요구는 단순한 인상률 확대가 아닙니다.

▲ OPI 상한 폐지 ▲ 산정 기준 투명화 ▲ 성과급의 구조적 재설계입니다. 특히 경쟁사 SK하이닉스가 이미 영업이익 10%를 기준으로 성과급 재원을 설정하고 상한을 폐지한 사례는, 산업 내 기준 이동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현재의 갈등은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성과 배분 기준의 산업적 재편 과정"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삼성전자 성과급 제도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의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첫째, 산정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합니다. 영업이익, EVA, 사업부별 성과, 장기 투자 요소가 어떤 비중으로 반영되는지 원칙을 공개해야 합니다.
둘째, 노사 공동 검증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성과급 산정 방식은 경영진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사 공동 검증위원회와 외부 회계·재무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최소한의 신뢰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상한 구조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성과급 상한은 재무 안정성을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해도 더 받을 수 없고, 못하면 크게 줄어든다"는 인식이 커지면 제도는 동기부여 기능을 잃습니다. 상한을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면, 초과 성과에 따라 보상이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문제는 EVA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닙니다. 문제는 EVA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입니다. 성과급의 본질은 계산식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주주를 빼면 자본이 떠난다

 4월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성과는 노동과 경영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본의 투자와 위험 부담도 성과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성과 배분 논의에서 주주를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삼성전자에는 수많은 개인 주주와 기관투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기업의 미래에 자본을 맡긴 이해관계자입니다.

그렇다고 주주가 노사 교섭의 직접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과급의 구체적 협의는 노사가 맡아야 합니다. 다만 성과급 제도가 재투자 여력, 배당, 자사주 정책, 장기 기업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이사회와 공시를 통해 설명되어야 합니다. 주주 관점은 교섭장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이사회 책임과 시장에 대한 설명 책임을 통해 반영되어야 합니다. 성과 배분은 세 가지 축의 균형 위에서 설계되어야 합니다.

노동 보상, 미래 재투자, 주주 환원. 이 세 축 중 어느 하나만 절대화하면 갈등은 커집니다. 노동 보상을 무시하면 조직 신뢰가 무너집니다. 재투자를 소홀히 하면 경쟁력이 약해집니다. 주주 환원을 배제하면 자본시장의 신뢰가 훼손됩니다. 주주와 노동은 대립 구조가 아닙니다. 노조는 주주 이익 침해 논리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배당과 주주환원은 기업 정책 영역이며, 성과급과 직접 충돌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조위원장은 "성과급 요구 때문에 배당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배당 정책 자체는 기업 결정"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OPI 구조를 개선하면 일부 성과급을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해져 노동자와 주주의 이해가 일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분배의 충돌이 아니라 분배 기준의 부재입니다.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세 축이 충돌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전 기준이 필요합니다. 초과 성과가 발생했을 때 '노동 보상, 재투자, 주주 환원'에 어떤 원칙으로 배분할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분배는 싸움이 됩니다. 기준이 있으면 분배는 질서가 됩니다. 배제된 이해관계자는 갈등을 만들고, 참여한 이해관계자는 기준을 만듭니다.

기준없는 분배는 약탈이고, 기준있는 배분은 계약이다

초과이익공유를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그것을 "기업이 번 돈을 외부에서 빼앗아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서 생깁니다. 그렇게 설계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기업의 재산권과 투자 여력을 침해하고, 주주 이익을 훼손하며, 장기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설계된 초과이익공유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초과이익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남는 돈"이 아닙니다. 초과이익은 노사와 이해관계자가 사전에 합의한 산식에 따라 정의되는 성과 배분 재원입니다. 투자비, 연구개발비, 감가상각, 자본비용, 세금, 주주 배당, 미래 투자 재원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그 이후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성과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기준 없이 나누면 약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과 한계, 검증 절차가 있으면 그것은 계약이 됩니다. 초과이익공유의 핵심은 "무조건 나누자"가 아닙니다. "무엇을 초과이익으로 볼 것인지 먼저 정하자"입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성과를 구성원과 공유하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합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PS(이익공유) 재원으로 삼고 기존 상한을 폐지하는 방식에 합의했습니다. TSMC도 2025년 직원 사업성과 보너스와 이익공유 보너스로 총 NT$ 2061억(뉴타이완달러, 한화 약 8-9조원 수준) 규모를 승인했습니다. 다만 이런 사례를 단순히 삼성전자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마다 사업 구조, 투자 주기, 자본비용, 주주 정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비율의 모방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구조입니다.

초과이익공유가 경쟁력을 해친다는 주장도 신중히 봐야 합니다. 경쟁력은 단순히 비용을 줄인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인재를 유지하고, 조직의 신뢰를 높이고, 장기 투자를 지속할 수 있을 때 경쟁력이 생깁니다. 실제로 노조는 최근 수개월간 수백 명 단위의 이탈과 SK하이닉스 및 해외 기업으로의 이동 증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 이직이 아니라 기술 경쟁력 이동입니다. 이와 관련 TSMC는 직원 성과 보상과 동시에 장기 생산능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자본 지출을 승인하고 있습니다. Intel 역시 미국 내 제조 역량 확대에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글로벌 경쟁은 보상과 투자를 대립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둘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초과이익공유에는 세 가지 규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충분한 이익이 발생한 해에만 작동해야 합니다.둘째, 투자와 연구개발, 주주 환원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작동해야 합니다.셋째, 사전에 정한 상한과 검증 절차 안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규칙이 지켜질 때 초과이익공유는 경쟁력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신뢰의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규칙 없이 나누면 도둑질이지만, 규칙에 따라 배분되면 그것은 계약입니다.

이건 이상론이 아니라, 붕괴를 막는 최소 장치다

첫 번째 기고문에서 산업연대기금을 제안했을 때, 현실성이 부족한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비판입니다. 그러나 산업연대기금은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 다른 누군가에게 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도체 생태계 안에서 벌어지는 격차를 줄이고, 갈등이 반복되는 구조를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분배의 구호가 아니라, 산업을 지키기 위한 보험입니다.

왜 이런 보험이 필요합니까. 지금의 반도체 산업은 너무도 불균형합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초대형 기업의 정규직은 높은 보상을 받지만, 같은 산업에서 일하는 협력사 노동자, 하청업체 직원,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연봉 차이는 수배에 이르고, 원청의 호황이 곧바로 하청과 지역사회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격차를 너무나도 오래 당연하게 여겨 왔습니다. 산업연대기금은 성과급의 대체물이 아닙니다. 임금이나 납품단가를 대신하는 장치도 아닙니다. 산업연대기금은 반도체 생태계의 갈등 비용을 줄이기 위한 보험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한 기업의 성과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청의 기술과 투자, 협력사의 납품과 연구개발, 설비와 물류, 안전과 청소, 급식과 경비, 지역 인프라와 국가의 산업정책이 함께 작동합니다. 그런데 성과는 상층에 집중되고 위험은 하층으로 내려가는 구조가 반복되면 산업 전체의 신뢰가 약해집니다. 원청의 호황이 협력사와 하청 노동자, 지역사회로 이어지지 않고 위기의 비용만 아래로 전가된다면 생태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산업연대기금이란 바로 이 지점을 묻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큰 성과가 삼성전자 노사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세제 지원과 R&D 투자도 있었고, 협력사의 기술과 납품도 있었고, 물류와 설비와 시설을 떠받친 수많은 노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과의 일부를 산업 전체의 안전망과 재투자에 돌리는 것이 왜 문제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책임 있는 대기업의 모습 아닙니까.

산업연대기금은 이 불균형을 줄이기 위한 제안입니다. 다만 강제 징수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법정 기금을 만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자율 참여형 파일럿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참여 기업에는 세제 인센티브, ESG 평가, 공시 상 우대, 정책금융 연계 같은 유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강제가 아니라 설계로, 압박이 아니라 유인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산업연대기금이 현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첫째, 초과이익이 사전에 정한 기준을 넘는 해에만 작동해야 합니다.
둘째, 투자와 연구개발, 감가상각, 자본비용, 주주 환원에 필요한 기준 재원을 먼저 확보한 뒤 일부를 출연해야 합니다.
셋째, 출연 규모에는 명확한 상한을 두어야 합니다. 예컨대 초과이익의 일정 비율 이내에서만 자율 출연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넷째, 사용처는 협력사 안전 설비, 기술 교육, 공동 R&D, 고용 안정, 지역 산업 기반 확충으로 한정해야 합니다.
다섯째, 운영은 독립기구가 맡아야 합니다. 노사, 협력사, 외부 전문가, 공익위원, 주주 추천 전문가가 참여하되, 특정 집단의 이해로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섯째, 회계감사와 연례 공시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돈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기금은 또 다른 불신을 낳습니다.
일곱째, 산업연대기금은 임금이나 납품단가를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협력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기금으로 상생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산업연대기금은 이상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을 줄이고, 갈등이 반복되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 장치가 됩니다. 예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초과이익의 일부를 가칭 '반도체 산업연대기금'에 넣는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 돈은 협력사 연구개발, 안전 설비, 기술 교육,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 지역 상권과 연계된 상생 프로그램에 쓰일 수 있습니다. 평택 같은 지역에서는 공장 가동이 멈추면 물류, 식당, 숙박업이 바로 타격을 받습니다. 그러니 산업연대기금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입니다.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도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합니다. 삼성전자의 책임은 단지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협력사와 지역사회,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 하청 업체의 기술 인력과 노동조건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반도체 생태계는 원청의 성과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 설비를 운영하는 기업, 청소와 물류와 급식과 경비를 맡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있어야 돌아갑니다.

이들을 배제한 채 "성과는 우리, 책임은 남"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삼성전자의 사회적 책임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협력사 상생 행사 몇 번으로 끝나는 일입니까. 기술지원 펀드 몇 개로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과를 어떻게 나누고, 위기를 어떻게 함께 막고, 불균형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까지 포함해야 진짜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논의하는 기로에서 산업연대기금이 왜 문제란 말입니까. 오히려 너무 늦은 성찰이 아닐까 합니다.

실행 경로도 분명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법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공개해야 합니다. 무엇을 초과이익으로 볼 것인지, 어떤 비용을 먼저 빼는지, 누구의 기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부터 밝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노사와 주주, 전문가가 함께 보는 검증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후에는 삼성전자와 협력사, 그리고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산업 단위 협의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협의체가 안정되면 산업연대기금과 사회적 거버넌스로 제도화하면 됩니다.

이 과정은 느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강제가 아니라 설계입니다. 삼성전자 노사만의 성과급 갈등을 넘어, 이 산업을 떠받치는 모든 사람의 몫과 책임을 다시 묻자는 뜻입니다.

자치는 비공개 권한이 아니라 공개 책임이다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공사 현장에 세워진 타워크레인.
ⓒ 권우성

노사 자치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치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폐쇄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치는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설명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입니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의 출구도 여기에 있습니다. 외부가 결론을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사가 함께 기준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회사는 성과급 산정의 원칙과 주요 변수, 사업부별 반영 방식, 상한 구조의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요구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주와 시장에 대해서는 이사회가 기업가치와 장기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먼저, 성과급 산정 기준을 사전에 공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노사 공동 검증위원회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 다음, 외부 회계·재무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산식의 신뢰성을 높여야 합니다.이후, 초과 성과가 발생했을 때 노동 보상, 재투자, 주주 환원, 산업연대기금의 원칙적 배분 구조를 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구조를 정례화해 매년 같은 갈등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방치하는 비용은 더 큽니다. 반도체는 속도의 산업입니다. 한 분기의 지연이 몇 년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립을 이기는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대립을 줄이는 제도의 마련입니다.

이 질문을 회피하는 순간, 갈등은 구조가 된다

이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성과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성과는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갈등은 반복됩니다. 회사는 "우리는 이미 보상하고 있다"고 말하고, 노동자는 "우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주주는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협력사와 하청노동자, 지역사회는 "성과의 바깥에 밀려나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 모든 목소리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문제를 다른 위치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기준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문제입니다. 기준을 함께 검증할 구조가 없다는 문제입니다.

이 글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노동의 정당한 보상을 말하면서도 주주 이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글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말하면서도 구성원의 신뢰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글입니다. 노사 자치를 존중하면서도 자치가 책임 있는 공개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하는 글입니다.

이제 선택해야 한다... 기준인가, 반복인가

이 지점에서 저는 전태일을 다시 떠올립니다. 전태일은 단순히 더 많이 나누자고 말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을 물었습니다. 노동이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누가 더 가져갈 것인가만 묻는다면 대립은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를 묻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설계가 시작됩니다. 성과급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초과이익공유는 구호가 아니라 계약이어야 합니다. 산업연대기금은 시혜가 아니라 생태계의 보험이어야 합니다. 노사 자치는 비공개가 아니라 책임 있는 공개 위에서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제 대립을 끝내야 합니다. 이 말은 싸움을 덮자는 뜻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싸움, 곧 불투명한 기준과 반복되는 불신의 구조를 바꾸자는 뜻입니다.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의 출구는 더 큰 목소리가 아닙니다. 더 정교한 기준입니다. 이제는 그 기준을 함께 설계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태일재단 이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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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식만 마이너스 이유 있었네"…올들어 코스피 종목 30%는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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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떠난 제니의 정산금은?…1인 기획사 설립 후 238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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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떠난 제니, 1인 기획사로 2년간 238억 정산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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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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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로보틱스, 상장 첫날 '따따블'…공모가 대비 300%↑[특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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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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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물가·AI 랠리 충돌…지금 금 시장은 '재편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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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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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
'칠천피' 올라탄 증권사…역대급 실적 쓸까[1분 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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