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붐 타고 '우주경제'로 눈 돌리는 실리콘밸리 [찐밸리 이야기]
2026.05.11 09:00
편집자주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이 태동한 '혁신의 상징' 실리콘밸리.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지만 거주민 중 흑인 비율은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화려한 이름에 가려진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얼굴을 '찐밸리 이야기'에서 만나 보세요.“우리는 4억5,000만 달러(약 6,600억 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첨단 고궤도 우주선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우주업계 거물 스페이스X의 발표가 아니다. 한 우주 스타트업이 ‘시리즈 E’ 투자를 받은 뒤 밝힌 포부다. 시리즈 E는 스타트업이 사업 모델을 완성하고 기업공개(IPO)나 대규모 확장을 앞둔 ‘성숙기’에 받는 대규모 투자 라운드다. 6일(현지시간) 신규 자본 조달 소식을 알린 이 회사는 이번 투자를 통해 총 누적 투자 유치액 12억 달러(약 1조7,500억 원)를 돌파한 아스트라니스(Astranis)다.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엔지니어들의 시선이 우주 궤도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반세기 만에 유인 달 탐사에 나선 미 항공우주국(나사·NASA)의 우주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가 하늘로 향한 뒤 더욱 두드러진다. 아르테미스 2호는 단순한 로켓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위성 대중화 시대’를 알리는 축포가 됐다.
이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술력뿐만이 아니다. 위성통신 등을 다루는 우주기업들의 성장은 통신 인프라가 국가와 기업의 ‘생존 자산’으로 급부상한 최근 국제 정세와도 맞물렸다. 회사는 최근 미국 국방부(전쟁부)의 보호 전술 위성 통신(PTS-G), 회복력 있는 GPS(Resilient GPS), 안드로메다(Andromeda) 사업 등 주요 안보 프로젝트의 초기 사업자로 선정됐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주권적이고 안전한 통신망'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까닭이다. 2016년 설립 이래 기존의 거대하고 값비싼 통신 위성 대신, 특정 국가나 기업만을 위한 소형 전용 위성을 제작·운영해온 게 기회가 됐다.
존 게드마크 아스트라니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며, 주권적이고 안전한 통신 인프라는 전략적 자산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투자를 통해 대만 청화텔레콤, 오만 MB그룹 등 전 세계 상업 고객과 정부의 수요를 동시에 충족할 역량을 갖추게 할 것”이라며 해외 기업고객 수요도 드러냈다.
20대 엔지니어들이 주도하는 ‘우주 클라우드’
그동안 정부와 거대 방산기업의 전유물이었던 우주 산업은 민간과 젊은 엔지니어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스트라니스 외에도 실리콘밸리에선 여러 우주 관련 스타트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로어 노브 힐’ 등지에서는 20대 엔지니어들이 이른바 ‘해커 하우스’라 불리는 아파트형 작업실에서 위성을 조립하고 있다. 23세 CEO 맥스 바티를 필두로 한 엔지니어들은 하루 22시간씩 작업하며 첫 위성을 완성했다. 결과물은 지난달 5일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어 하늘로 향했다.
이들 엔지니어는 이른바 ‘996(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까지 주 6일간 근무)’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 문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에 비하면 996은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에 말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모델은 이른바 ‘우주 클라우드’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데이터센터 서버를 빌려주듯,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소규모 위성군(Constellation)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바티는 “스타링크 같은 거대 플랫폼이 데이터를 차단할까 봐 걱정할 필요 없는 ‘고객 전용 우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다른 스타트업들의 성과도 눈부시다. 조나 스페이스 시스템즈(Xona Space Systems)는 기존 GPS보다 정확도가 높고 보안이 강화된 내비게이션 시스템 ‘펄서(Pulsar)’를 만드는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가동하고, 어스트랙(Earthtraq)은 스티커 크기의 초소형 칩으로 물건이나 동물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뮤온 스페이스(Muon Space)는 수조 원이 들던 산불 감시 위성을 수백만 달러 수준으로 제작하는 데 성공하며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우주 유니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스타트업들의 ‘우주 붐’ 배경에는 ①기술혁신과 ②비용 하락이 있다. 위성 제조사들이 고가의 전용 부품 대신 지상의 서버에 쓰이는 저렴한 상용 부품을 선택해 우주 환경에 맞게 보강해 사용하게 된 덕분이다. 여기에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이 로켓 재사용 기술을 통해 발사 비용을 약 58%나 절감하면서, 민간 스타트업이 소규모 위성군을 운영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 자본의 투자 방향도 명확해지고 있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발사체보다 그 위에서 작동할 서비스와 인프라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우주가 과학의 영역에서 혁신가와 투자자들의 전장으로 바뀐 것이다. 매체는 위성 데이터 분석, 우주 인터넷, 소형 발사체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나사와 협력하거나 파생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나사가 직접 하드웨어를 소유하기보다 민간의 서비스를 구매하는 상업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커머셜 크루)을 확대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우주 인프라 선점 노리는 빅테크
빅테크 기업들은 우주 인프라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한 전력난을 우주에서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는 최근 우주 태양광 기술을 통해 밤에도 전력을 공급받는 ‘야간 태양광’ 사업을 위해 오버뷰에너지와 손을 잡았다. 2024년에만 1만8,000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을 소비한 메타는 최대 1기가와트(GW)의 전력을 예약한 상태다. 우주에서 태양광을 수집해 적외선 빔 형태로 지구에 쏘아 보내는 이 기술로 소비 전력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상장을 추진 중인 스페이스X 역시 기업가치 1조5,000억 달러(약 2,207조 원)를 인정받으며 단순 발사를 넘어 ‘우주 데이터센터’ 등 우주 기반 인프라 독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저궤도 위성망을 통해 지구 전역을 초고속 통신망으로 묶는 스타링크는 이미 우주 경제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910조 원 규모 '우주 경제'… 경제성 논란 딛고 비상
과거 우주 산업을 괴롭혔던 ‘경제성 논란’은 이제 옛말이 됐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우주 경제 규모는 6,130억 달러(약 910조 원)에 달하며 이 중 민간 상업 부문의 비중이 78%를 차지했다.
브루킹스연구소 거버넌스연구 프로그램 산하 기술혁신센터의 선임연구원 대럴 M 웨스트는 지난달 8일 ‘아르테미스2와 급속도로 성장하는 글로벌 우주 경제’를 다룬 논평에 “궤도 데이터센터, 달 영구 거주지, 희귀 자원 채굴 등 과거에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사업들이 점차 경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우주 산업은 매년 8%씩 성장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를 담당하고 있으며, 관련 종사자만 40만 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유럽우주국(ESA)과 위성 통계 전문 서비스인 새트플리트 라이브에 따르면, 현재 지구 상공에는 약 1만5,000기의 위성이 떠 있으며 2030년에는 5만~7만 기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성장을 넘어 국가 안보와 윤리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당장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위성으로 인한 우주 쓰레기 문제와 천문 관측을 방해하는 빛 공해와 함께 민간 위성의 정밀 감시로 인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데이터 주권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최근 중동 분쟁 당시 플래닛랩스 등 위성 이미지 제공업체들이 보안을 이유로 데이터 공급을 제한하면서, 우주 인프라를 스스로 갖추지 못한 국가는 위기 순간에 정보와 연결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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