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유동성이 끌어올린 증시…이젠 ‘경계의 5월’
2026.05.11 11:35
전쟁 충격에도 유동성 힘입어 사상 최고치
반도체·AI 투자 기대, 시장 상승 동력 부상
유가급등·공급차질, 실물경제 충격 본격화
인플레로 금리 인하 어려워…유동성 변화
5월 리스크 관리·현금 비중 조절 고려해야
반도체·AI 투자 기대, 시장 상승 동력 부상
유가급등·공급차질, 실물경제 충격 본격화
인플레로 금리 인하 어려워…유동성 변화
5월 리스크 관리·현금 비중 조절 고려해야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두 달이 지났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충격을 흡수했고, 동시에 놀라울 만큼 빠르게 반등했다.
2월 말 6200선이었던 코스피 지수는 3월 말 5000선까지 약 20% 가까이 급락했지만, 4월 들어 낙폭을 대부분 회복했고, 마침내 5월 초에는 70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반등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자리한다. 하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에 해소될 것이라는 ‘희망’이며, 다른 하나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유동성’이다. 실제로 투자자 예탁금은 연초 대비 28조원이 증가하며 127조원을 넘어섰다. 풍부한 유동성과 투자심리 회복이 결합하면서 시장은 전쟁의 충격을 빠르게 상쇄해 버렸다.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프라이빗뱅커(PB) 입장에서 느끼는 시장 분위기는 분명 낙관적이다. 투자자들은 다시 상승장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일부는 조정 자체를 일시적 이벤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낙관에 기울어질수록, 오히려 냉정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다. 특히 5월 시장은 4월과는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미국-이란 전쟁의 경제적 여파가 본격적으로 실물지표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중국 무역 협상과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청문회 등 주요 이벤트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여전히 시장의 중심축=4월 시장 반등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 업황 개선이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잠정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크게 웃도는 ‘슈퍼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시장 컨센서스가 37조5000억원 수준, 일부 기관이 40조원 중후반을 예상했던 가운데 실제 영업이익은 57조원에 달했다. 이 같은 성과는 단순한 실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반도체 업황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 덕분에 눈높이가 높아졌던 SK하이닉스는 시장의 기대치(39조5000억원)보다 약간 낮은 37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런데도 시장의 투자심리가 개선된 덕분에 추가적인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도 시장 기대를 뒷받침했다. 구글(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시장에 제공했다.
특히 구글과 아마존은 설비투자(CAPEX)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투자 확대 의지를 명확히 했고, 이는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더욱 강화했다.
AI 산업은 구조적으로 ‘승자독식’ 성격이 강하다. 과거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확인했듯,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대한다.
현재 AI 시장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학습 중심의 스케일업(Scale-up) 구조에서 추론 중심의 스케일아웃(Scale-out) 구조로 전환되면서, 다수의 칩을 병렬로 연결하는 구조가 확산하고 있다. 이는 곧 메모리 수요 급증으로 이어지며, 메모리 부족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기판 등 관련 산업으로 온기가 확산했고, 삼성전기와 같은 새로운 주도주의 부상도 관찰되고 있다. 반도체는 여전히 시장의 중심축이며, AI 투자 사이클이 꺾이기 전까지 업황의 강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진짜 영향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문제는 시장이 반영하지 않고 있는 변수들이다. 현재 주식시장은 기업 실적과 가이던스에 집중하며 상승을 이어가고 있지만, 전쟁의 실질적 경제 충격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시장은 점차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원유 공급 측면에서 보면 상황은 절대 가볍지 않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하루 약 1000만배럴의 공급 차질이 발생했으며, 두 달 누적으로는 약 6억배럴 규모에 달한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방출을 약속한 비축유 4억배럴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대체 공급원 확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러시아산 원유는 제재 리스크로 인해 활용이 제한되며, 미국산 원유는 경질유 중심으로 국내 정유 설비와의 적합성이 낮다. 한국처럼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구조적 제약이 곧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정유·화학 업종은 마진 압박에 가장 크게 노출된 상황이다.
설령 호르무즈 해협이 즉각 개방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빠르게 정상화하기는 어렵다. 파괴된 정유시설 복구, 시추 재개, 품질 안정화까지 고려하면 최소 수개월이 소요된다.
이미 국제유가는 배럴당 126달러를 돌파하며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역시 갤런당 4.3달러 수준까지 상승하며 소비자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특히 5월 이후 드라이빙 시즌 진입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급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정유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항공유 생산을 확대하고 휘발유 생산을 줄이는 흐름까지 더해지면서, 소비 위축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소비 둔화 → 기업 매출 감소 → 투자 축소라는 연쇄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통화정책 환경 역시 시장에 우호적이지 않다.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 의장은 상당히 매파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일부 위원들은 금리 동결에도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199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3.5% 수준으로 다시 상승했고, 이에 따라 채권금리는 급등했다. 특히 2년물 금리는 3월 시장 공포 국면 당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채권시장이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통제되지 않았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신호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환경을 전제로 한 상승 논리가 존재하지만, 현실은 이미 ‘3고(고금리·고유가·고달러)’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유동성 기반 상승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요소다.
▶지금은 ‘공격’보다 ‘방어’ 고려할 때=3월의 급락은 오히려 매수 기회였다. 시장 정상화를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포지션을 확대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그러나 5월의 시장은 성격이 다르다. 빠른 반등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고, 반영되지 않은 리스크 요인들이 점차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공격적 확장보다는 포지션 점검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차익실현과 현금 비중 확대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주식시장은 바다와 같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듯 상승과 조정이 공존한다. 중요한 것은 파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상승 파도를 준비하는 것이다. 조정 국면에서도 탄탄한 흐름을 보이는 새로운 주도주를 발굴하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자금 이동을 통해 새로운 투자 로직이 형성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낙관과 경계 사이에서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변동성 속에서도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지금 시장은 희망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이 현실과 괴리될 때, 변동성은 다시 한번 우리를 시험할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안정적으로 개방되고, 에너지 시장이 정상화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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