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중동발 에너지 위기 속 전기요금 동결…미래세대에 더 큰 청구서”
2026.05.11 06:02
요금 동결 땐 한전부채 급증 재연
가격신호 상실로 에너지 절감 실패
전력망 투자 못해…재생에너지 차질
물가·선거 의식한 ‘정치논리’ 한계
요금 정상화·규제기관 독립성 시급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조현경)이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청암홀에서 ‘에너지 위기와 전기요금 및 시장 개선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제9회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에너지정의포럼’에서 학계·경제계·시민사회·공기업 등 참석자들은 중동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맞아 발전원가가 급등하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물가·선거를 의식한 정치논리로 전기요금을 동결해 원가 이하 판매를 지속하면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지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100조원대에서 200조원대로 늘어난 한전 부채가 이번 중동전쟁에서는 300~400조원으로 급증하면서, 한전이 시급한 전력망 투자 등을 제대로 못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전환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고, 합리적 에너지 소비를 유인하는 데도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정책대안으로 원가 이하로 팔고 있는 주택용·농사용 등의 전기요금 정상화, 전기요금이 정치논리로 결정되는 것을 막기 위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전력규제기관 신설,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꼽았다.
이날 포럼에서는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전기위원회 위원)과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토론에는 전영환 홍익대 교수를 좌장으로 백철우 덕성여대 교수,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천현민 한전 요금전략처장, 김양지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시장과장이 함께했다. 또 김창섭 전기위원회 위원장의 축사와 박찬수 한겨레신문 대표의 환영사가 있었다. 에너지정의포럼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려면 여야·이념·진영 중심의 정치적 접근에서 벗어나 미래와 후손들을 생각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로 2022년 출범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동전쟁 이후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석유 공급 충격은 하루 1100만 배럴 규모로 1970년대 두차례 오일쇼크 때의 충격을 합친 것과 동일하고,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충격은 8700만톤 규모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유럽이 받은 충격(4000만톤)의 2배 수준”이라며 “전쟁이 끝나도 생산설비 손상 및 복구 지연으로 공급 지장 영향은 수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LNG 공급 차질은 국제 현물시장 가격을 밀어 올린다. 석 전문위원은 “동북아 LNG 현물가격 지표인 JKM은 전쟁 직전 10~11달러에서, 최근 최고 20달러 가까이 두배로 상승했다”며 “겨울철용 수입이 늘어나는 6월말~7월초부터 더욱 본격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LNG 현물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한전의 전력구매 원가인 전력 도매가격(SMP) 상승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에서 27.4%(2025년 기준)를 차지하는 LNG 발전의 단가가 SMP를 좌우하는 구조 때문이다. 2022년 러-우 전쟁 때도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하면서 SMP가 3배로 치솟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원가 이하로 전기판매를 계속하면서 한전부채가 급증했다.
정연제 교수는 “러-우 전쟁을 거치며 한전 부채(연결기준)가 100조원대 중반에서 206조원(2025년 말 기준)으로 급증하며 연간 이자비용만 4조원(하루 119억원)을 넘는다”며 “이자가 원금에 더해지고, 이자에 또 이자가 붙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영국·프랑스·일본은 각각 전기요금 억제·동결·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행했으나, 결국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미래로 이연시켜, 미래세대에 요금과 세금인상 등 더 큰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반면 독일은 기본 전력 수요는 보호하면서 초과 수요는 억제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빈곤층 보호와 자발적인 에너지 절감 효과를 동시에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이재명 정부도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중동전쟁의 충격이 2022년보다 커서 한전 부채가 2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어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향후 한전 부채가 300~400조원대로 급증할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정연제 교수는 “선거·물가를 의식한 정치논리로 주택용 전기요금은 평상시에도 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유지되어 가격신호가 차단됐다”며 “요금이 오르지 않으면 전기를 아낄 이유가 없어, 정부의 차량운행 제한, 절전 호소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 부채 증가는 단순한 재무 문제가 아니라 송배전망 유지 보수, 재생에너지 전력계통 연계, 전력계통 안정화 등 한전이 수행해야 할 핵심 투자를 불가능하게 한다”며 “지금 전기요금을 묶어 미래세대에게 더 낡고 취약한 전력망을 물려주는 것은 에너지 안보와 세대 간 형평성 훼손 문제를 낳는다”고 말했다.
천현민 한전 처장은 토론에서 “러-우 전쟁 때 해외 주요국은 발전원가 증가 요인을 전기요금에 즉시 반영했으나 우리는 물가상승 등을 고려해서 요금 반영이 지연되고, 대용량 산업용 요금 중심으로 일부 조정이 이뤄지면서, 한전은 부채 급증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2024년 7차례에 걸쳐 총 72.6원/kWh 인상되었으나, 주택용은 절반 수준인 40.4원/kWh 올랐다. 천 처장은 “산업용은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와 맞물려 2022년 이후 전력소비량이 감소한 반면 주택용 등 다른 전력소비량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요금의 가격신호가 작동하지 않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희성 의장은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단기적인 가격 억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부충격에도 시스템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과 미래 인프라에 자본이 선순환할 수 있는 투자유인을 확립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인위적인 요금 통제는 시장의 가격신호를 왜곡하여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종국에는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리스크를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많은 외국인, 국민연금, 민간 투자자가 주주인 상장기업 한전의 이사회가 원가에 현저히 미달하는 요금체계를 지속해서 수용하는 것은 주주가치 보호 측면에서 중대한 우려를 야기한다”며 “에너지 산업의 혁신은 기술적 성취를 넘어 자본시장에서 가치가 증명될 때 비로소 완성되며, 이를 위해 전기요금을 통제 대상이 아닌 시스템 유지와 고도화를 위한 핵심적인 가격신호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금 정상화·탈정치화·취약층 지원 3대 과제
석광훈 전문위원은 200조원이 넘는 한전 부채의 조속한 청산을 위해 정부의 한전 송배전부문 인수와 전기요금 정상화 병행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한전은 송배전부문 매각대금으로 부채를 부분적으로 해소하고, 민간 전기판매사업자로 재편하면 된다”며 “동시에 원가 이하로 팔고 있는 주택·교육·농사용 전기요금을 50% 정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소수 공무원과 정치권의 관리체제로 감당하기에 전력시장의 복잡성과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커졌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전문 규제기관에 요금결정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연제 교수는 정책 대안으로 전기요금 정상화, 전기요금 결정의 탈정치화, 취약계층 보호 등 세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요금 정상화는 에너지 위기 대응의 핵심수단”이라며 “총괄원가보상주의를 원칙으로 단계적인 요금 정상화의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선거와 물가를 의식한 정치논리가 원가보상 원칙을 반복적으로 무력화해 온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문제는 반복된다”며 “연료비 등 원가 변동이 요금에 자동 반영되는 구조를 도입하고, 요금결정 권한을 정치로부터 독립된 기관에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약계층 보호는 바우처나 보조금 지급을 통해 재정에서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우 교수는 “가격신호 정상화의 첫걸음은 연료비연동제의 정상화”라며 “(전기요금 구성요소 가운데) ‘연료비 조정단가’의 경우 분기 변동한도가 ±3원/kWh, 연간 누적 ±5원/kWh로 협소하게 설계되어 있어, 연료비 급변동기에 가격신호 전달 기능이 크게 제약된다”며 “연료비 조정단가의 변동 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산업용은 요금 인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반면 주택·교육·농사용은 원가회수율이 여전히 낮다”며 “식량안보, 공교육 같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현재는 교차보조 방식으로 산업용 등 다른 계약종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전이 요금 종류별 원가회수 공식을 공개하고, 재정에서 직접 보조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백 교수는 또 “독립 규제기관 설립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며 현재 추진 중인 전력감독원 신설도 시의적절하다”며 “원가연동 자동조정 메커니즘의 법제화(연료비 변동의 자동 반영), 전기위원회에 의결권한 부여, 재정경제부와의 물가협의 폐지 또는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전의 송배전분리와 판매시장 개방 방안 관련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에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한전 기업가치 급감, 외국인·기관·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 6개 발전자회사의 부채(88조원) 처리 등 여러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현민 한전 처장은 “전기요금은 원가주의에 입각해 전력생산에 소요되는 원가를 적기에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기구에 독립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현재 제한적 범위 안에서 작동하는 연료비연동제를 개선해서 변동하는 국제 연료가가 적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 확대로 증가가 예상되는 에너지 전환비용도 기후환경요금 항목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용 이외의 주택용 등 다른 종별에 대한 단계적 요금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최근 중동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망 위기 여파는 아직 요금 원가에 본격 반영되지 않았으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리스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성 의장은 “주요 선진국은 에너지 위기 대응에 있어 규제의 독립성과 시장원리의 존중을 원칙으로 삼는다”며 “요금 결정 거버넌스의 독립성 강화, 전력계통 데이터의 투명한 공유, 다양한 가치 창출이 가능한 시장 설계 및 가격체계 도입, 취약계층을 위해 재정을 통한 직접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영준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에 따라 주요 산업의 생산비 대비 전력비 비중이 계속 확대되어 기업들이 전력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으나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망 요금이 어떤 기준으로 산정되는지, 부가정산금은 어떤 비용항목으로 구성되는지 공개되지 않아 기업의 비용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며 “전기요금과 시장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철강의 수소환원제철 등 기업들의 제조설비 전기화 관련 “독일의 전력 다소비업종에 대한 특별요금제, 중국의 대형제조업체 고정요금제 사례를 참고해 기업의 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김양지 기후부 과장은 “전기요금 책정은 원가주의가 원칙이고, 여기에 요금의 안정성, 형평성,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운영하고 있다”며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요금 감면뿐만 아니라 바우처 제도 등 재정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전기위원회의 독립성 강화와 함께 전력감독원 설립을 위한 전기사업법 개정안 발의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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