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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극으로 끝난 日 모녀의 한국 여행... 피 웅덩이에서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Story]

2026.05.11 04:31

'드라마 촬영지' 낙산공원 가는 길, 만취 차량에 참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 낮은 처벌 수위에 절망
병원·경찰·단골 가게 등 타국서 버티게 한 한국인들
상처만 남은 한국,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찾고 싶어"

편집자주

한국일보 'Story'는 곱씹을만한 이야기를 내러티브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 삶에 대해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외과계 병동에서 마유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2025년 11월 2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던 마유미(가명·39)가 의료진이 건넨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후 11시 22분을 지나던 시간, 번역기 앱 속으로 익숙하지만 해독하기 힘든 단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인은 외상성 쇼크라고 했다.

덜그럭거리던 의료기기의 이동 소음. 그 사이를 틈없이 채우던 의료진의 발걸음을 들으며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치명적인 것만은 아니길, 아니 숨은 붙어있기를, 바라고 소원했다. 불과 한 시간 반 전까지 나란히 걷던 어머니의 죽음은 비현실적이었다. 울음이, 펑하고 터졌다.

어머니 게이코(가명·당시 58)의 몸은 아직 영혼을 떠나보내지 않은 듯 따뜻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머리카락에는 낙엽 몇 장이 매달려 있었다. 모녀의 2박 3일 여행은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영원한 이별로 끝이 났다. 단 하루 만에, 단 한순간에.

악몽으로 끝난 여섯 번째 여행



한국은 모녀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게이코는 한국 드라마와 화장품, 음식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모녀는 2023년 10월을 시작으로 한국을 다섯 번이나 찾았다. 작년에만 세 번이었다. 코스는 늘 일정했다. 서울 명동이나 동대문 근처에 숙소를 잡고,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고, 미용클리닉 등을 찾았다. 몇몇 가게에서는 일본인 단골 손님에게 먼저 알은체하기도 했다. 11월은 그런 모녀에게 여섯 번째 한국 여행이었다.

이번엔 일정에 약간의 변주를 줬다. 게이코가 좋아하던 한국 드라마 촬영지를 직접 가보기로 했다. 마유미는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드라마 제목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낙산공원이 촬영지였다고 꼭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무척 즐거워하시며 기대하셨어요"라고 당시를 전했다. 낙산공원 성곽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주요 배경지 중 한 곳이다. 그렇게 둘은 종로구 낙산공원을 여행 첫날의 마지막 코스로 예정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낙산공원으로 향하던 게이코-마유미 모녀에게 음주운전 차량이 질주하고 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쇼핑을 마친 두 사람은 날이 어둑해지자 낙산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종로구 흥인지문공원을 시작으로, 낙산성곽길을 쭉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은 걷기에 안성맞춤. 서울 야경을 즐길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조금 걷자 성곽이 보였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됐다. 신호가 바뀌자 마유미는 1m 정도 앞서 걸으며 뒤따라오는 게이코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갑자기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다. 몸이 튕겨나가 아스팔트에 엎어졌다. 얼굴 주위로 피웅덩이가 고였다. "몸에 부딪히던 충격도, 얼굴이 바닥에 부딪히며 났던 둔탁한 소리도, 쓰러진 뒤 느꼈던 통증도 모두 선명합니다."

지나던 한국인 여성이 달려와 손을 붙잡고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엄마…" 겨우 입을 떼 게이코를 찾았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전신을 짓누르는 통증에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구급차에 올라선 뒤에야 손끝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번역기 앱을 켜고 말을 넣어갔다. "어머니랑 같은 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어머니 앗아간 음주운전

가해자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첫 경찰 조사가 다음 날 병실에서 진행됐다. 일본어에 능숙한 서울 혜화경찰서 교통수사팀 이승빈(41) 경사가 어렵게 입술을 떼고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마유미는 이미 대략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밤새 병상에 누워 관련 뉴스를 찾아봤다. '음주운전.' 언론에서 지목한 사고 원인이었다.

화가 났고, 또 억울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212%, 소주를 한 병 반 이상 마셔야 나오는 수치라고 했다. 왜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는지, 왜 무고한 자신들이 피해를 당해야 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 경사는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수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주로 물으셨다"고 밝혔다.

법률대리인인 채준병(45) 변호사(법무법인 랜드마크)에게 들은 한국의 처벌 기준은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지만, 대법원 양형기준은 기본 징역 2~5년, 가중 4~8년이라고 했다. 채 변호사는 "'한국은 그렇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한 남성의 음주운전 때문에 사람이 목숨을 잃고 가족 모두의 인생이 바뀌었는데, 한국의 음주운전 처벌은 너무 가볍더라고요."

곁에서 지탱해준 사람들

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최모 간호사가 병동을 바라보고 있다. 허유정 기자


당장이라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지만 회복이 우선이었다. 갈비뼈 6개와 흉골, 코뼈가 골절됐다. 치료하고 상처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눈을 감을 때마다 밝게 웃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외과계 병동 최모(31) 간호사는 "처음 3일 정도는 계속 눈물을 흘리시며 힘들어했다"며 "의료진들이 30분마다 병실에 들러 정서적 간호를 위해 힘썼다"고 했다.

비슷한 나이대 딸을 둔 손수연(56) 간호조무사는 더 각별했다. 마유미가 울고 있으면 손을 잡아주고 등을 살며시 토닥였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됐다. 마유미는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곁을 지켜주셨다"며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불안했지만, 그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병원 밖 인연도 하나둘 생겼다. 자주 들르던 가게 직원은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챙겨다줬고 통역도 도왔다. 미용클리닉 원장과 식당 사장도 병문안을 왔다. "슬픈 상황 속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듬직한 버팀목은 이 경사였다. 그는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챙겼다. 게이코의 운구차가 공항으로 향할 때는 길을 직접 선도하는 것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켰다.

20일 정도 흘러 마침내 귀국할 날이 찾아왔다. 손 조무사는 번역기 앱으로 "아픔을 딛고 잘 이겨내달라. 한국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말한 뒤 마유미를 꼭 안았다. 이 경사는 "'안 좋은 기억은 가슴에 묻어두고 행복하게 살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배웅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경사와는 공항에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8일 서울 종로구 혜화경찰서에서 이승빈 경사가 교통수사팀 사무실 앞에 서 있다. 허유정 기자


"한국 사회가 음주운전 비정상 깨닫길"



올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사고 가해자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징역 7년의 형량을 재판부에 구했다. 검찰은 "유족이 입은 피해는 어떤 금전적 보상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며 "피해자들이 일본 국적이어서 일본 언론에서도 사건이 주목받았고 한국의 낮은 형량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잇따랐다"고 했다.

가해자는 최후 진술에서 "제 잘못으로 효도 여행이 비극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앞으로 술을 완전히 끊고 운전을 포함해 모든 행동에 누구보다 큰 책임감을 갖고 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선고는 12일 이뤄질 예정이다.

마유미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좋아했던 여행지가 이제는 끔찍한 기억의 현장으로 변했다. 한국 땅을 밟는 것조차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다시 한국을 찾고 싶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고 현장을 다시 마주할 용기를 가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지금도 늘 어머니를 생각해요. 거리에서 어머니와 딸이 함께 웃으며 걷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한국 분들께 어머니를 기억해달라고 바라지 않아요. 다만 이번 일을 통해 음주운전이 일상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한국 사회가 비정상이라고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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