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회 칸영화제 '라 시네프' 초청
최원정 감독 3D 애니 '새의 랩소디'
미디어아트 작가가 정통 영화 학교 제쳤다…
145대 1 경쟁 뚫고 최종 후보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최원정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사진)가 제 79회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라 시네프'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최원정 올해 제79회 칸국제영화제의 학생 단편 경쟁 ‘라 시네프’ 부문에선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최원정(24)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가 진출했다. 전세계 2750편에 달하는 출품작 중 최종 후보 19편(실사영화 14편, 애니메이션 5편)에 발탁됐다.
칸영화제에서 라 시네프 부문은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라 페미스’, 미국 뉴욕대 영화과, 영국 국립영화텔레비전학교 등 세계적 영화학교들이 실력을 겨루는 신진 재능의 등용문으로 꼽힌다. 그간 한국은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비롯해 영화과로 유명한 대학들이 주로 호명됐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 이 부문 1등상을 받은 ‘첫 여름’의 허가영 감독도 KAFA 출신이었다. 최 감독은 이런 정통파 영화학교들을 제치고 홍익대 출신 최초로 이 부문에 선정됐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라 시네프' 부문에 선정된 최원정 감독을 지난 7일 모교인 홍익대 서울 캠퍼스에서 만났다. 이번 초청작인 3D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는 전세계 2750편의 출품작 중 최종 19편에 선정됐다. 사진 최원정 나홍진(‘호프’)‧연상호(‘군체’)‧정주리(‘도라’) 감독 등과 나란히 칸 초청장을 받아든 최 감독을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학생회관에서 만났다. 올 초 칸영화제 측도 “학교 이름이 홍익대 맞느냐”고 e메일로 재차 물었다고 한다. “맞다고 답장하니 갑자기 칸에서 선정됐다는 전화가 왔어요. 진짜 맞나, 반신반의했죠. 한 달쯤 지나 3월에 A4 용지에 인쇄된 실물 초청장을 우편으로 받고서야 실감이 났어요.”
‘새의 랩소디’는 그가 2024년 구상‧제작한 6분 길이의 3D 애니메이션. 기하학적 문양에 갇힌 인간들의 핏빛 악다구니가 돌연, 새의 비상을 담은 흑백 영상으로 바뀐다. 푸른빛이 가득한 결말부에 이르러선 스크린 전체가 뒤집힌다. 뜻밖의 발상 전환이 탁 트인 풍경과 함께 반전 같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한눈에 대형 화면을 경험해본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미디어아트 작업을 주로 해온 최 감독의 경우 극장의 대형 스크린뿐 아니라 세로로 긴 화면에도 익숙하다. 지난 2023년 서울 삼성역 앞 싸이의 ‘강남스타일’ 손 조각상과 나란히 선 초대형 세로 LED 화면(10.7x29.6m) 속에 청량한 녹음을 채워내기도 했다. 그의 첫 미디어아트 작업인 3D 단편 애니메이션 ‘Epilogue(에필로그)’(2023) 이야기다. ‘코로나 학번’(21학번)인 그가 엔데믹 선언 후 찾아온 자유로움을 표현한 2분여 작품으로, ‘한국의 타임스퀘어’로 통하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및 무역센터 일대의 초대형 전광판을 장식했다.
이듬해 그가 섬광같이 반짝이다 소멸하는 것들을 그린 3D 애니메이션 ‘0.2s’(2024)도 같은 장소에서 전시됐다. 모두 서울 미디어아트위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다.
최원정 감독의 2023년 미디어아트 작품 '에필로그'는 한국판 타임스퀘어로 꼽히는 서울 삼성역 초대형 전광판에도 전시됐다. 사진 최원정 감독 인스타그램 캡처 유치원 때부터 만화를 즐겨 그렸다는 그는 픽사의 3D CG 애니메이션, ‘아바타’의 3D 영상 혁신을 일상처럼 보고 자란 세대다. 서울예고 미술과를 졸업해, 홍익대에 입학했을 땐 팬데믹 탓에 대부분의 대학생활이 비대면이었다. 1학년 때 가입한 3D 동아리 활동이 상상의 날개를 선사했다. 예산이나 촬영에 구애받지 않고 가상환경에서 혼자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는 3D 애니메이션에 자연히 빠져들었다.
최 감독은 “철학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새의 랩소디’는 “인간이 왜 사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2024년 2개월간 구상 끝에 자유와 욕망이란 주제에 다다랐다. “자유로워지려는 욕망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가려고 했던 건데, 결국 그 욕망 탓에 자유롭지 못한 역설을 다루고 싶었다”고 그는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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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디즈니에 영감…디지털에 붓터치 살렸죠
평소 그는 월트 디즈니 초기작 ‘판타지아’(1940), 디즈니와 살바도르 달리가 협업한 ‘데스티노’(2003) 등 추상적이고 영상미가 강한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 ‘새의 랩소디’를 가로로 확장된 극장용 화면비 ‘시네마스코프’(2.39:1)로 작업한 이유는 좋아하는 고전 회화의 영향이었다. 고갱의 작품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에서 긴 화폭에 스토리텔링을 풀어낸 방식에 착안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최원정 감독의 3D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사진)가 제 79회 칸국제영화제 학생 단편 경쟁 '라 시네프'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최원정 3D 작업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리얼타임 엔진’ 프로그램을 이용해 3개월간 오직 혼자서 ‘새의 랩소디’를 완성했다. 수채화, 연필 소묘 기법도 화면에 새겨넣었다. “회화에서 ‘마티에르(matière‧소재)’라고, 물감의 질감이 느껴져서 좋다고 하잖아요. 디지털은 납작(flat)하지만, 다양한 질감이 느껴지길 바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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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라 시네프' 심사위원도 한국계 배우
결말은 제작 과정에서 선명해졌다. 최 감독은 “내가 어디에 있건, 진정한 내면의 자유는 그 위치와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이 작업을 하면서 제가 느낀 자유로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칸영화제 출품 계기를 밝혔다.
최 감독은 이번 칸 초청의 가장 큰 선물을 “용기”라 요약했다. “앞으로도 계속 너의 이야기를 해나가라. 그런 응원을 받은 것 같았다”면서다. “제 작품이 어떤 캔버스에 걸려있는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처럼 전통적인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도 다시 해보고 싶고요. 다양한 형태의 영상을 실험해보고 싶습니다.”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는 미국 컬럼비아대에 재학 중인 한국계 나딘 미송 진이 뉴욕의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생존을 그린 단편 ‘사일런트 보이시스’도 선정됐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 박지민이 올해 이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칸영화제는 오는 12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 칸 일대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