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담금 부담 줄여드립니다"…재건축 수주전이 달라졌다
2026.05.10 16:00
대출 규제에 브랜드보다 이주비·분담금…판 흔드는 '쩐의 전쟁'
조합원 혜택 커졌지만 과도한 출혈 경쟁엔 부실 리스크 어려도
이주비 담보인정비율(LTV) 150% 보장부터 마이너스 금리 조달, 분담금 납부 유예까지. 최근 서울 주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들이 내건 파격적인 제안들이다. 과거 1군 브랜드나 특화 설계를 앞세우던 것과 달리, 이제는 조합원의 실질적인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치솟는 공사비와 팍팍한 대출 규제에 지친 조합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건설사들이 설계도면 대신 파격적인 금융 지원서를 들고 등판하는 양상이다.
설계도 대신 들이민 금융 지원 약속
정비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주요 정비사업 수주전에서는 건설사들이 공사비 절감과 금융 조건을 앞세워 조합원 부담을 낮추는 전략을 강화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압구정5구역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한 DL이앤씨는 이주비 지원과 분담금 유예 등 금융 조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조합원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춘 사업안을 제시했다. DL이앤씨는 조합이 제시한 예정 공사비보다 평당 100만원 이상 낮은 1139만원을 확정 제안했다. 공사비 상승 흐름 속에서 가격 경쟁력을 강조한 조건이다. 필수사업비 금리는 재건축 사업지 가운데 최저 수준인 '가산금리 제로(0)'를 제시했고 분담금 납부도 입주 후 최대 7년까지 유예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주비 대출을 집값의 150%까지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이례적 조건을 내걸어 최근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부담으로 이주비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 대응했다. 조합원의 이주비와 사업비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공사 기간도 압구정2구역보다 4개월 단축한 57개월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압구정 내 최우선 이주 개시 보장과 책임준공 확약서 제출 등을 통해 사업 지연 리스크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반포 19·25차 재건축 수주 경쟁에 뛰어든 포스코이앤씨 역시 조합원의 분담금을 최소화하는 '분담금 제로'를 목표로 한 사업계획을 제시했다. 앞서 신반포21차 재건축 '오티에르 반포'에서 후분양 방식을 적용해 일반분양 수입을 극대화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신반포 19·25차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후분양 △사업비 전액 양도성예금증서(CD)-1% 금리 조달 △준공 시까지 정상적인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배제 등의 조건을 제안서에 담았다. 이를 통해 조합원 분담금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 구조를 구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포스코이앤씨는 신반포 19·25차 재건축 조합원에게 금융 지원금 명목으로 세대당 2억원씩, 총 892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시공사 계약 직후 1억원, 사업시행계획인가 후 1억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대우건설은 성수전략정비구역 4구역(성수4지구) 입찰에 참여하며 사업비 조달금리를 CD 금리에서 0.5% 차감한 CD-0.5%로 제안했다. 건설사가 제시하는 마이너스 금리는 시장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자금을 조달해 조합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조합원 분담금을 낮출 수 있는 핵심 조건으로 평가된다.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 부담도 대폭 낮췄다. 통상 정비사업에서는 입찰 마감일을 기준으로 물가 상승 지수를 반영하지만 대우건설은 '조합과의 도급계약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계약 이후 12개월 동안 발생하는 물가 상승분은 대우건설이 부담하는 조건까지 제시했다.
대출 한파가 불러온 나비효과
서울 핵심지 정비사업 수주전에 뛰어든 건설사들이 앞다퉈 파격적인 금융 지원 조건을 제시하는 배경에는 공사비 상승과 금리 부담이 맞물리며 조합원들의 비용 민감도가 높아진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담금과 금융비용이 조합원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실질적인 체감 부담을 낮출 수 있는 요소가 핵심 판단 기준으로 부각되는 흐름이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브랜드나 설계 차별성이 수주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조합원 부담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며 "특히 금융 조건과 분담금 구조에 따라 체감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금융 지원 방안이 조합원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해 연이은 부동산 대책으로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강화된 점도 건설사들의 금융 지원 조건이 부각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출 규제로 이주비 조달 여건이 악화되면서 조합원들의 체감 부담이 커졌고, 이에 따라 금리 수준이나 분담금 납부 조건 등 실질적인 금융 조건이 시공사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추세다.
특히 동일한 사업이라도 금융 구조에 따라 최종 분담금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이러한 조건들이 조합원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사들 역시 이를 의식해 금융 지원 조건 제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 규제로 조합원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면서 건설사들 역시 이 같은 수요를 겨냥해 금융 지원을 강조한 사업안을 내놓는 분위기"라며 "이주비 지원이나 사업비 조달금리 등에 따라 조합원이 부담하는 최종 부담 규모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금융 지원 요건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의 금융 지원 경쟁이 과도해질 경우 사업 전반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단기적으로는 조합원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무리한 금융 조건 제시는 향후 공사비 조정이나 사업 지연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질 경우 건설사 재무 부담으로 전이되거나 사업 구조 전반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어 적정 수준의 조건 경쟁이 필요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금융 지원 조건이 과도해질 경우 단기적인 수주 경쟁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업 수익성과 안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결국 사업 진행 과정에서 비용 조정이나 일정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적정 수준에서의 경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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