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으로 작업도..." 일흔의 조각가가 나무에 새긴 반세기
2026.05.10 11:11
녹음이 짙어지는 5월 첫째 주말, 목조각 부문 국가유산기능인 조승우(71)씨를 만났다. 말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 ▲ 망치와 끌을 들고 조심스럽게 작품을 다듬는 조승우의 손길에서 집중과 섬세함이 묻어난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나무의 형태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 |
| ⓒ 진재중 |
손의 온기가 머무는 작업실
강릉 솟대마을로 알려진 강문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여섯 마리의 오리가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조형물들은 이곳이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라, 손의 온기가 깃든 공간임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자그마한 건물 앞에는 나뭇잎에 무당벌레가 세겨진 간판이 걸려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겹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그 표현은 그의 성품을 닮은 듯하다. '조각 작업장'이라는 말보다 '공예'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법한 이 공간은, 이미 바깥에서부터 그 분위기를 드러낸다.
| ▲ 강문마을을 상징하는 솟대가 작업실 앞에 세워져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모습은 마을의 안녕과 염원을 담아내며 공간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
| ⓒ 진재중 |
| ▲ 나뭇잎과 무당벌레가 어우러진 입간판이 작업실 앞을 지키고 있다. 자연의 이미지를 담은 간판은 나무와 함께 살아온 공간의 따뜻한 분위기를 전한다. |
| ⓒ 진재중 |
겸손으로 새긴 장인의 시간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 그는 손을 내저으며 "저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며 취재를 극구 사양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한 발 물러서는 태도에는 오랜 시간 다져온 장인의 겸손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화려한 말 대신 묵묵한 손끝으로 삶을 증명해온 사람의 인사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업실은 나무의 결마다 시간이 스며든 듯한 깊이를 품고 있었다. 벽에는 조각 도구들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고, 작업대 위에는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와 완성된 작품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래된 연장과 손수 만든 도구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바닥에는 나무를 다듬은 흔적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고, 공기에는 고운 톱밥이 잔잔히 떠돌았다. 은은한 나무 향이 공간을 감싸며, 이곳이 오랜 시간 손작업이 이어져 온 자리임을 전하고 있었다.
| ▲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작품을 완성해 가는 조승우 조각가의 손길에서 깊은 집중과 장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
| ⓒ 진재중 |
생존에서 시작된 장인의 길
시간의 흐름마저 잊힌 듯한 작업실. 그곳에 켜켜이 쌓인 세월과 기술, 장인의 숨결은 나무 위에서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덧 한 사람의 삶이 되었다. 열일곱 소년의 손에 들렸던 조각칼은 반세기를 지나며 한 장인의 시간을 새겨왔고, 그 흔적은 나무 위에 남아 있다.
"그때는 누구나 어려웠지요. 어린 나이에 배가 고파 시작한 게 직업이 되었어요."
작업을 멈추지 않은 채 건넨 그의 말처럼, 목각은 선택이 아닌 생존에서 출발했다. 다른 길은 없었고, 그렇게 시작된 일은 평생을 이어온 그의 업이 되었다.
| ▲ 나무 향과 생활의 흔적이 함께 배어 있는 작업실 겸 사무실.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켜온 공간에는 장인의 일상과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
| ⓒ 진재중 |
다시 돌아온 나무의 자리
결혼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운전을, 밤에는 배달 일을 병행하며 나무를 떠나야 했다. 생활고를 버텨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손에서 나무를 놓고 지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곳은 이 작업실이었다.
"나무를 놓고는 살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그는 사찰 현판과 생활 속에서 쓰이는 다양한 조각, 그리고 일상에 유용한 도구들까지 직접 만들며 작업의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무 위에 남는 것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그가 지나온 시간과 삶의 흔적이다.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각칼만 해도 오십여 개에 이른다. 모두 나무의 결에 맞춰 손수 만든 도구들이다. 그 칼끝이 남긴 섬세한 흔적들은 시간이 쌓이며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 ▲ 작업대 위에 놓인 다양한 조각 도구들이 오랜 세월 이어온 목공 작업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손때 묻은 도구들에는 장인의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
| ⓒ 진재중 |
이력보다 앞선 손끝의 철학
오랜 시간 묵묵히 작업을 이어온 그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장인이다. 낙산사와 수타사의 현판 복원에 참여하며 전통 목조각의 맥을 이어왔고, 대한민국 전통문화재 목조각 기능자로서 깊은 경력을 쌓아왔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무대에서 인정받아 한국 문화재 기능인 작품전 문화재청상,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특선, 강릉시 관광상품 공모전 대상, 강원도 공예대전 금상 등 주요 수상으로 이어지며 그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름보다 일이 앞서고, 업적보다 지금 손에 쥔 나무 한 점에 더 마음을 두는 것. 그것이 오랜 시간 그를 지탱해온 방식이자, 변함없는 그의 삶의 자세다.
| ▲ 작업실 한편에 놓인 각종 상패와 자격증이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과 장인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
| ⓒ 진재중 |
가족의 우려 속에서도 이어온 손길
불규칙한 작업 시간과 밤샘 작업, 잦은 외부 활동은 자연스레 가정에 부담이 됐다. 무엇보다 목조각가의 불안정한 생활과 많지 않은 수입은 가족들의 걱정을 키웠다.
"가정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많이들 말렸죠."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조각을 이어가는 일은 생계를 넘어,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곧 그의 삶이었다.
| ▲ 벽면 가득 걸린 작품들이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해 온 장인의 손길과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각기 다른 작품들에는 세월 속에서 다져진 정성과 철학이 담겨 있다. |
| ⓒ 진재중 |
| ▲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나무 조각 작품들이 작업실 한편에 놓여 있다. 실용성과 손맛이 어우러진 작품들에는 장인의 정성과 생활의 온기가 담겨 있다. |
| ⓒ 진재중 |
손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결
작업 환경은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손작업의 가치를 강조한다.
"지금은 전기톱이나 엔진톱이 있어서 훨씬 편해졌죠. 하지만 기계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거친 형태를 잡는 데에는 기계가 도움을 주지만, 세밀한 작업은 결국 손의 몫이다. 그는 지금도 직접 만든 도구로 나무의 결을 따라 조각을 이어간다.
"처음엔 도구가 없어 손톱으로 작업까지 했어요. 손톱이 늘 상처투성이였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보였다. 오랜 시간 쌓인 상처의 흔적은, 그가 지나온 시간과 노력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 ▲ 조승우 조각가 주인공이 조각 작업에 몰두한 채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을 다듬고 있다.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는 집중 속에서 장인의 깊은 몰입과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 ⓒ 진재중 |
사라지는 조각나무, 흔들리는 숲과 작업의 미래
"산은 경관을 고려해 침엽수 위주로 복원하지만, 실제 조각 작업에는 활엽수가 더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목각에 적합한 목재는 점점 귀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필요한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수입 목재에 대한 의존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일본과 독일이 침엽수와 활엽수를 균형 있게 조성해 다양한 수종이 고르게 분포하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는 소나무 중심의 편중된 구조가 이어지고 있으며, 한옥 건축 수요 증가로 가격까지 상승해 목재 수급이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은 목조각 작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줄어드는 동시에, 부족한 물량을 수입에 의존하면서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 침엽수 중심의 산림 구조가 산불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우려 지점이다.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온 장인의 말에는 단순한 어려움의 호소를 넘어, 숲과 재료, 그리고 작업의 미래를 향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 ▲ 부처의 탄생에서 출가,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8장면으로 환조/부조/투조 전통조각 |
| ⓒ 진재중 |
끊어지는 전통, 이어지지 않는 손길
"젊은 사람들은 배우려 하지 않아요. 이런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는 목각이 점점 외면받으며 미래가 불투명한 분야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가끔 작업실을 찾아와 배우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년 이후이거나 50대를 넘긴 사람들이라고 조용히 전했다.
"목각은 단기간에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나무의 결과 특성을 이해하고, 도구를 다루는 감각을 손에 익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목각의 본질이 숙련된 시간의 축적에 있다고 강조했다.
장인의 말에는 전통 기술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이 담겨 있었다.
| ▲ 망치와 끌을 이용해 나무에 조각을 새기는 명인의 손길이 정교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움직임 속에서 오랜 경험과 장인의 혼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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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새겨지는 삶, 장인의 마지막 바람
"먼 훗날,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겸손한 말투 속에는 분명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 목각 기술이 제도적으로라도 보존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장인의 손끝에서 축적된 기술이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명예를 넘어, 사라져가는 목각의 맥을 지켜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무당벌레가 그려진 간판 아래, 나무와 도구, 그리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작업실.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묵묵히 나무를 깎는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삶이 되었고, 그 삶은 다시 나무 위에 새겨진다. 톱밥먼지가 가득한 작업실 안에서 한 사람의 인생은 지금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 ▲ 조승우 조각가가 나무의 결을 따라 섬세하게 작품을 다듬고 있다. 집중된 시선과 조심스러운 손길에서 한 작품을 완성해 가는 장인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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