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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무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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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나면 혼자 떠드는 사람, '이것' 때문입니다

2026.05.09 11:46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40]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동만을 진짜 힘들게 하는 것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자말>

얼마 전 길을 가다 횡단보도 앞에서 직장인들의 대화를 들었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대한 대화였다.

"그 드라마 봐? 황동만이나 박경세나 너무 지질해서 보기 힘든 것 같아. 그런데 이상하게 그걸 또 계속 봐."
"나도 그래. 아마 그 인물들 속에 다 우리가 있어서 아닐까. 동만의 불안이 마치 내 것 같기도 해."

이 대화를 엿듣다가 속으로 "나도 그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지질이' 동만의 불안에 공감하는 걸까. 그건 동만의 불안이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외로움'에 기반한 감정이라서 아닐까.

동만의 불안

 동만은 외로움을 불안으로 덮어 씌운다.
ⓒ JTBC

동만(구교환)은 영화감독을 꿈꾸던 대학 시절 만난 8인회 모임의 일원이다. 20년간 함께 한 이 모임의 멤버 7명은 제작자로 영화감독으로 혹은 PD로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다. 동만은 시나리오만 14편 썼을 뿐, 무직이다.

동만은 8인회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동료들이 만든 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음식을 주접스럽게 먹어대며, 계속해서 수다를 떤다. 동료들은 그런 동만이 밉다. 특히, 경세(오정세)는 동만을 모티프로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을 국가가 대신 죽여주는 <국가 스트레스 위원회>를 기획할 만큼 동만을 증오한다.

동만 역시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자신만 들어오면 싸해지는 분위기, 말만 하면 떠도는 침묵, 아무리 동만이라도 견디기 힘든 분위기였을 거다. 그럼에도 동만은 계속 모임에 참석해 떠드는 자신을 두고 은아(고윤정)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친구들만 만나면 감정워치에 뭐라고 뜨는 줄 알아? 불안. 나도 몰랐어. 내가 그렇게 불안한 줄. 아무도 안 반기는데 끼어 앉아 있는데 불안할 수밖에 더 있어? 그 불안을 이겨 내려고 죽어라 떠들어." (3회)

동만이 찬 감정워치는 특정 상황이 되면 반응하는 웨어러블 워치다. 화면에는 '불안', '설렘', '허기'처럼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가 나타난다. 긍정적인 상태는 초록색, 부정적인 상태는 빨간색으로 드러난다. 동만은 불안을 없애려 말을 많이 하고, 과장해서 행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불안을 줄이려는 모습에 애처로움을 느꼈다.

동만은 왜 불안할까?

 원하는 것과 실제와의 간극이 적었던 때의 8인회
ⓒ JTBC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불안하면 우선 그 원인을 피하려는 마음이 드는 게 먼저다. 불안은 위험을 감지할 때 일어나는 감정으로, 인류는 이 불안을 이용해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찾으며 지금에 이르렀다(맹수를 보고도 불안을 느끼지 않고,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인류처럼 약한 신체 조건으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동만은 참 이상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불안해진다면, 친구들과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욕먹을 일도 없고, 조금 더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테다. 도대체 동만은 왜 불안할 줄 뻔히 알면서, 매일 그 모임에 가고 또다시 욕을 먹는 걸까?

이런 동만에게서 불안보다 더 큰 외로움을 보았다. 그 힘든 불안을 감당할 만큼 더 짙은 외로움 말이다.

건강의 사회적 요인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의 학자 제러미 노벨은 저서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에서 외로움을 '맺고 싶어 하는 관계와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느낌'으로 정의했다. 노벨은 외로움을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존중받고 싶은 마음과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간극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외로움', 집단이나 사회에서 배척된다는 느낌을 받는 '사회적 외로움', 위의 두 외로움이 모두 충족된다고 해도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비롯되는 '실존적 외로움'으로 구분했다.

사실 이 세 가지 외로움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실존적 외로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껴안고 가야 하는 것이고, 모두가 저마다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간극'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심리적 외로움과 사회적 외로움도 완전히 피해 가기 힘들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외로움을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한다는 점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상을 높게 평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못나서' 혹은 '내가 무가치해서'라는 느낌 즉 수치심과 연결되고, 이는 외로움을 인식하거나 수용하기 힘들게 한다.

동만도 그랬을 것이다. 동료들에게 배척당하는 느낌(심리적 외로움), 무직자로서 사회에서 고립된다는 느낌(사회적 외로움), 혼자 있을 때 '자신의 이름이라도 불러야' 마음이 가라앉는 그 느낌(실존적 외로움)은 모두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치심으로 연결되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은 불안을 견디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래서 동만은 2회 "네가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묻는 형 진만(박해준)의 질문에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이라고 답하면서도 꾸역꾸역 8인회 모임에 나간다. 그러고는 불안으로 외로움을 덮어씌운다.

동만의 치료제

 은아와 동만은 각자의 외로움을 인정하면서 더 깊이 연결된다.
ⓒ JTBC

드라마에도 동만이 외롭지 않기 위해 불안을 선택했다는 것을 간파한 이들이 있다. 그의 형은 동만이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라고 말했을 때 "여자 만나"라고 조언한다(2회). 제작자 겸 '아지트' 사장인 혜진(강말금)도 '황동만 출입 금지'라고 써 붙이고는 동만에게 "여자 생기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동만은 은아(고윤정)를 만난다. 어릴 적 부모가 자신을 떠나 홀로 지내온 은아는 '버림받은 아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산 인물이다. 은아 역시 외로움이 삶에 퍼져 있지만 이를 들킬까 긴장하며 살아왔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점점 고립되던 은아는 감정워치를 차고 심리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동만과 은아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 듯 끌린다. 아마도 둘은 감정워치를 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결감을 느꼈을 것이다. 둘은 종종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마다 더 깊이 연결되어 간다. 또한, 감정워치 회사를 통해 나만 느끼던 독특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음도 깨닫게 된다. '나만 이런 게 아니다'라는 깨달음은 외로움에 대한 수치심을 줄여주고, 각자가 품은 외로움을 바라보게 했을 거다. 은아를 만난 동만은 점차 외로움을 감지하는 말들을 한다.

"이렇게 낱낱이 다 분리되어 있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죠?" (4회)
"형이 나 먼저 싫어했으니까" (5회, 경세가 왜 나를 싫어하냐고 묻자)
"나락도 뭐 괜찮아 다 같이면." (6회)

그리고 마침내 6회 말미 감정워치에 뜬 '알 수 없음'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걸 시도하면서 동만은 이렇게 말한다.

"도와줘."

자신의 외로움을 완전히 인정하고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 말이었다. 동만보다 더 자주 '알 수 없음'이 뜬 은아는 동만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펑펑 운다. 은아 역시 간절하게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 테다. 이렇게 외로움을 직시하면서 둘의 관계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출입 금지 해제야." (5회)

혜진은 은아와 동만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후 이렇게 말하며 동만을 8인회에 다시 받아준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이 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존적 외로움을 끌어안은 채, 곁에 있는 사람들과 소속된 사회에 받아들여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 외로움을 잊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나를 끼워 맞추거나, 동만처럼 다른 감정 속에 파묻혀 지낸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에서 기대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의 간극은 커지고 외로움은 더 자라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게 바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없이 지질한 동만의 모습을 부인하고 싶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결국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게 사람임을 인정해야만 불안에 짓눌리지 않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그럴 때 관계에서 바라는 것과 얻는 것 사이의 간극을 줄여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외로움 역시 조금은 줄어들 테다.

그토록 지질한 동만도 해 낸 '외로움 인정하기'. 동만과 함께 우리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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