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5·18을 폭동이라고 하는데…" 헌법 개정 불발에 시민들 허탈과 분노
2026.05.09 17:29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1주일 여 앞둔 9일 오전 국립 5·18민주묘지는 참배객들과 방문객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단체로 묘역을 찾은 학생들은 줄지어 이동하며 열사들의 투쟁기를 이야기했다. 비석 앞에 멈춰 선 이들은 발길을 잠시 멈춰 비석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비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묘비 앞에서 한참 말을 고르지 못했고 누군가는 먼저 간 가족의 이름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묻혀 있는 이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겪은 일이 전부 사실인데, 사실이 아닌 것 처럼 왜곡하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경북 구미에서 동생의 묘를 찾아왔다는 유족 김모씨(70대·여성)는 헌법 전문 수록 무산 소식을 두고 먼저 '왜곡'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그쪽 지역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우리 보고 북에서 넘어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우리가 여기서 그렇게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잘 믿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이 새겨지면 나아질거라 기대했는데 가슴 콱 막힌 듯한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이 무산된 탓인지 묘역을 찾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분노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친오빠의 묘역을 찾기 위해 광주 광산구에서 왔다는 김모씨(70대·여성)는 "다 자기네 이익 챙기는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그런 비극이 있었는데, 그런 역사를 지우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부상자 유공자 김태수씨(70대‧남성)는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46년째 진통제와 약을 먹고 있으며, 몸에는 당시 총상과 파편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김씨는 "나한테 총을 쏜 공수부대원을 만난 적도 있다. 그 사람은 위에서 시키니까 쐈다고 했다"며 "진짜 문제는 지시를 내린 사람들인데,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 전문 수록 무산을 두고 "선거철에는 도와줄 것처럼 말해놓고 막상 당선되면 나 몰라라 한다"며 "당론으로 안 되게 만들었으니 배신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끝까지 진상규명도 하고 풀어나가야 하는데 답답하다”며 "우리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묘역에서 나온 질문은 전남대와 청년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1980년 5월 학생들의 항의가 시작됐던 공간에서 만난 청년들은 헌법 수록을 다음 세대의 기억과 교육 문제로 받아들였다.
전국 각지에서 5·18 역사탐방을 위해 모였다는 단체의 청년은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수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모인 것도 정치적 이념이나 이익 때문이 아니라 광주의 시민 정신을 배우고 선배들이 일궈온 민주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며 "헌법 전문 수록은 우리가 가져가야 할 화합의 길"이라고 했다.
경상국립대 역사 동아리 소속 학생도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국민들이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헌법에 수록해야 한다"며 "아직도 일부에서는 5·18을 폭동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헌법에 명시되면 역사 왜곡을 막고 후대에도 올바른 역사가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5·18민주광장과 전일빌딩245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 거리에서 직접 시위에 참여했다는 60대 시민은 국민 67.3% 찬성이라는 조사 결과를 듣고 "80% 이상은 나와야죠"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은 무조건 80% 이상은 찬성할 것"이라며 "광주 시민들과 국민이 원하는 헌법 전문 수록을 무슨 이유에서 반대하는지 참으로 황당하고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이어 "군부독재가 얼마나 나쁜지 똑똑히 기억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헌법 개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경기도 하남에서 고등학생 자녀와 함께 전일빌딩245와 5·18 관련 전시를 둘러보기 위해 광주를 찾은 정모씨(40대·여성)는 "여기에 와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절대로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했는데 정치 이권 갈등으로 국민의 요구가 짓밟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씨는 헌법 수록 이후의 과제에 대해서 지적하기도 했다. "헌법에 넣는 것은 당연히 찬성하고 좋은 취지"라면서도 "생업에 종사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타 지역 성인들에게 얼마나 크게 와닿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함께 전시를 둘러본 고등학교 3학년 이모양은 "학교 교육에서는 너무 적게만 다뤄지는 것 같다"며 "그냥 시험 범위 안에 있는 역사 정도로만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도 헌법 수록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5·18기념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에듀테크에 의뢰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국민 5·18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7.3%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7일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포함한 개헌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투표에 불참하면서 정족수 미달로 투표를 진행하지 못했다.
국민 다수가 필요하다고 답한 개헌안이 국회에서는 표결 절차조차 밟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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