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공권력
공권력
스마트워치도 전자발찌도…아무도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2026.05.09 16:00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피해자 6차례 구조 요청에도 멈추지 않은 스토킹 살인
법과 장치는 있었지만 공권력의 실행 의지는 없었다


살릴 수 있는 피해자를 또 죽게 했다. 가해자의 폭력과 스토킹에 시달리던 여성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이것은 국가가 약속한 보호의 징표다. 버튼만 누르면 경찰이 달려오고, 가해자의 접근을 막아줄 것이라 믿었던 마지막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문제는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무사안일한 공권력이었다. 피해자는 죽기 전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경찰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해자가 전자발찌를 찬 강력범이라는 사실도, 피해자가 6차례 신고했다는 긴급성도 공권력의 안일함을 깨우지 못했다. 결국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차고도 가해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사건 현장인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의 길거리(YTN 방송화면 캡처). 왼쪽은 신상 공개된 피의자 김훈 ⓒ경기북부경찰서 제공


밤샘 일하고 퇴근하던 전 여자친구 살해

3월14일 아침,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의 한 회사에서 흰색 SUV가 출근하는 차량들을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밤샘 근무를 마친 A씨(여·27)의 퇴근길이었다. 오전 8시56분쯤, 그녀의 차량이 한적한 길목에 진입할 때 갑자기 흰색 경차가 나타나더니 이내 앞을 가로막았다. 도망칠 곳 없는 외길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A씨는 차 안에서 문을 잠갔다. 유일한 생명줄은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였다. 그녀는 기기의 긴급 버튼을 연이어 눌렀다. "구해주세요" "신고해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A씨의 다급한 음성은 경찰 상황실로 전송됐다. 

곧이어 차 앞을 가로막은 흰색 경차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그의 손에는 전동드릴이 들려 있었다. A씨의 차량 운전석 앞으로 다가간 그가 스위치를 켜자 윙윙하는 기계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석 유리창을 부수기 시작했다. 

기계 앞에서 차 안의 잠금장치는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깨진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A씨의 맨 모습이 드러나자 밖으로 끌어낸 남자는 흉기를 꺼내들었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방어했으나 쏟아지는 칼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 몇몇 목격자가 있었지만 전동드릴과 흉기를 휘두르는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약 10분 후 119 구급대와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현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A씨는 의식과 호흡, 맥박이 없는 상태였다. 피곤한 몸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비명과 함께 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범인은 훔친 임시번호판을 단 렌터카를 이용해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 

경찰은 인근의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그는 성범죄 전과자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던 김훈(남·44)이었다. 경찰은 비상을 걸고 김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범행 약 1시간 후, 경기도 양평군 국도변에서 술과 약물에 취해 의식을 잃은 남성이 발견됐는데, 신원조회 결과 김훈이었다. 당시 그의 차 안에는 범행에 쓰인 흉기와 피 묻은 옷가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검찰에서 실시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에서 40점 만점에 33점을 받았는데, 진단 기준인 25점을 넘어서는 고위험군이다. 폭력범죄 재범 위험성 평가에서도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태로 분석됐다.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며, 수사 과정에서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검찰은 김훈의 범행동기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배신감과 적개심이 극단적 수준의 보복성 공격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판단했다. 

김훈은 우리 사회가 '위험인물'로 분류해 감시하던 전과자였다. 그는 2009년과 2013년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나와 13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외출을 금지하는 명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국가의 감시는 김훈의 집착을 막지 못했다. 그는 금지 시간대를 교묘히 피해 낮 시간을 이용한 스토킹 범행을 이어갔다. A씨를 살해할 때도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으나 미리 준비한 절단기로 끊어내고 도주했다. 

김훈은 범죄자의 삶 그 자체였다. 강간치상 외에도 절도, 무면허 운전, 성매매 알선 시도 등 삶의 궤적 자체가 범죄로 점철돼 있었다. 2008년에는 지인의 신용카드를 훔쳐 유흥비로 탕진하다 붙잡히기도 했다. 타인의 재산과 인격에 대한 존중이 아예 거세된 삶이었다.

3월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남양주 가정폭력ㆍ스토킹 여성 살해 사건 정부 대응을 규탄하는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긴급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위보고 의혹까지 드러난 경찰 대응

김훈은 왜 이른 시각, A씨의 직장 근처에서 그녀를 살해한 것일까. 두 사람은 2023년부터 17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경기도 구리에서 사실혼 관계로 지냈다. 김씨는 사랑 대신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냈다. 상습적인 폭언과 폭력을 참지 못한 A씨는 2025년 5월, "그만 헤어지자"며 결별을 요구한다. 

김씨는 주먹으로 A씨의 온몸을 구타하고 "죽여버린다"며 흉기로 위협했다. 그녀는 갈비뼈 골절 등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은 상태에서 김훈이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빠져나와 신고했다. 경찰은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하고, 법원은 '피해자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라'는 임시조치 처분을 내렸다. 

A씨는 김훈을 피해 거주지를 남양주시로 옮겼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1월22일 김씨가 다시 나타나자 두 번째로 경찰에 신고하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A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주거지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김훈은 경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꼼짝 않고 기다렸다. A씨의 추가 요청이 없자 두 달 만에 보호조치가 종료된다. 

이때부터 김훈은 이전과는 달리 더욱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알게 된 20·30대 남녀 3명을 포섭해 A씨의 일상을 24시간 감시했다. 공범들은 김훈의 지시에 따라 A씨와 그녀의 가족 심지어 지인의 차량에까지 위치추적 장치를 달았다. 김씨가 공범들을 시켜 부착한 위치추적 장치만해도 5개였다.

1월28일 A씨는 자신의 차량에서 김훈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추적 장치가 발견되자 재차 경찰에 신고했다. 2월2일에는 스토킹 등의 혐의로 고소한다. 법원은 김훈에게 스토킹 처벌법상 잠정조치 1호(서면 경고)와 2호(100m 이내 접근 금지), 3호(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라고 재차 경고했다. 

위기의 징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김씨 몰래 차량을 바꿨는데, 2월21일 이 차량에서도 위치추적 장치가 발견된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구리경찰서를 관할서로 지정해 구속영장과 잠정조치 4호(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를 신청하도록 지휘한다. 

하지만 구리경찰서는 구속영장 신청이나 신병 확보뿐만 아니라 잠정조치 4호 또한 곧바로 진행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으로 접근하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와 관계 기관에 자동으로 경보가 전달되는 '잠정조치 3의 2호'가 있었지만, 경찰은 더 강력한 신병 확보 조치인 4호를 검토 중이었다는 이유로 이 3의 2호도 신청하지 않았다. 

경찰이 느슨하게 대응하는 사이 김훈은 A씨의 숨통을 빠르게 조여 갔고, 그녀는 이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경찰에 지속적으로 신변보호 조치를 요청하고, 차를 바꾸고, 여러 차례 직장까지 옮겼다. 하지만 김훈은 그녀의 바뀐 차량, 새 직장의 주소를 귀신같이 찾아냈다. 김훈이 촘촘하게 쳐놓은 감시망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A씨는 김훈이 노리는 것이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주변에 "매일 목숨 걸고 출근한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김훈은 A씨를 해치기 위한 범행 준비를 차근차근 마친다. 그녀의 집과 직장 주변을 답사하며 일출 시간과 도주 경로를 계산해 살해 시나리오까지 완성했다. 범행 당일에는 다른 차량에서 훔친 임시번호판을 자신의 차량에 달고, 여유 있게 A씨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김훈이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지만 경찰과 법무부 사이의 정보 공유 체계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가 피해자 근처에 접근해도 보호관찰소는 그가 왜 그곳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경찰은 가해자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할 권한이 없었다. 피해자가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와 가해자의 전자발찌는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별개의 기기일 뿐이었다. 국가 치안 시스템의 칸막이가 피해자를 사지로 몰아넣은 셈이다.

사건 발생 후 대통령이 엄중한 조치를 지시하자 뒤늦게 경찰은 감찰에 들어갔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해자 보호 업무를 맡은 경찰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A씨의 안전을 확인해야 했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자가 이미 살해당한 뒤에야, 이전에 안전 확인을 한 것처럼 보고서를 허위로 꾸며낸 정황까지 포착됐다.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덮기 위해 죽은 자의 이름을 이용해 거짓을 기록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치안 시스템이 얼마나 허울뿐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법과 제도는 이미 충분했다. 스토킹 처벌법, 잠정조치, 전자발찌, 스마트워치. 피해자의 주변에는 온갖 장치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장치들을 움직여야 할 '공권력의 실행 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라진 공권력 실행 의지, 흉기보다 무섭다

가해자는 공권력의 침묵 속에서 범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신고해도 잡혀가지 않고, 접근 금지를 어겨도 제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포식자는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공권력의 안일함이 가해자에게는 '살인 면허'와 같은 메시지로 전달된 셈이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쥔 채 죽어가야 하는가. 경찰관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와 유감 표명만으로는 이 죽음의 행진을 멈출 수 없다. 직무를 유기하고 허위 보고를 한 이들에게 살인 방조에 준하는 엄중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즉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강제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사건을 단순히 한 사이코패스의 광기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공권력의 타성이 합작해낸 결과물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 환부를 도려내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김훈은 또다시 누군가의 집 앞에서 전동드릴 소리를 내며 나타날 것이다. 그때 다시 스마트워치의 침묵을 목격할 것인가. 공권력의 의지가 마비된 사회에서, 국민은 보호받는 시민이 아니라 그저 순서가 정해진 예비 피해자일 뿐이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공권력의 다른 소식

공권력
공권력
1시간 전
“병든 남편이 좋아해서” 단팥빵 5개 훔친 할머니, 복지 지원 연계
공권력
공권력
1시간 전
"병든 남편 주려고"…경찰, 단팥빵 5개 훔친 할머니 처벌 대신 도움
공권력
공권력
1시간 전
병든 남편 주려고 단팥빵 5개 훔친 할머니에 처벌 대신 도움
공권력
공권력
4시간 전
김진태 도지사 후보, 강원랜드 규제완화, 국가 사과 당연…
공권력
공권력
4시간 전
병든 남편 먹이려 ‘단팥빵 5개’ 훔친 할머니…공권력도 울었다
공권력
공권력
4시간 전
병든 남편 먹이려 '단팥빵 5개' 훔친 할머니…공권력도 울었다
공권력
공권력
4시간 전
장동혁 “95세 노모에 공소취소 뜻 물어보니…‘무시하냐’며 역정”
공권력
공권력
5시간 전
납북 귀환한 어부들 불법 구금·사찰…法 "국가, 춘곡호 선원 유족에 배상"
공권력
공권력
5시간 전
장동혁 “노모에 공소취소 뜻 아냐 물으니 ‘너 나 무시허냐’ 역정”
공권력
공권력
1일 전
경찰대, 김선택 교수 초청 헌법 특강…“공권력은 헌법 따라야”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