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몰려오자 중산층 엑소더스… 플로리다 역설
2026.05.09 00:03
찐 부자들 살기 좋고 세금 적은 남부행 열풍
원래 주민들은 집값·물가 폭등에 이주 러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테마파크 디즈니월드에서 시간제 판매 사원으로 일하는 31세 여성 제나 에르난데스는 급여를 한 푼도 모으지 못하고 모두 생활비로 사용한다.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영업직 관리자 남편의 수입까지 합산한 부부의 연 소득은 6만5000달러(약 9560만원). 미국에서 가구 합산 연 소득 6만 달러를 넘기면 중산층에 턱걸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자녀를 포함해 4인 가구를 꾸린 에르난데스가 플로리다에서 중산층처럼 살아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상환하면서 식비·의료비까지 지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에르난데스 가족은 이미 여가비를 줄인 지 오래됐고 생필품도 할인 매장에서 주로 구입한다. 그나마 에르난데스는 맞벌이에다 자가도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에르난데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보다 생활비가 저렴한 인근 앨라배마·테네시주로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부촌 벨에어에선 지난달 4억 달러(약 5880억원)짜리 대저택이 매물로 나왔다. 이 집이 팔리면 미국 부동산 매매가 사상 최고액을 경신하게 된다. 기존 최고가는 2019년 ‘헤지펀드 거물’ 켄 그리핀 시타델 최고경영자(CEO)의 뉴욕 펜트하우스 ‘센트럴파크사우스’ 매입가인 2억4000만 달러(약 3530억원)다. 벨에어의 4억 달러짜리 저택은 부지 면적이 6500㎡이며 39개의 침실과 3개의 수영장, 튀르키예식 목욕탕, 엑스레이 촬영이 가능한 진료실도 갖췄다. 이 저택 소유주는 뉴욕과 영국 런던에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 일가로 알려졌다.
소유주가 누구든 미국에서 가장 ‘똘똘한 한 채’를 매물로 내놨다는 것은 캘리포니아 초고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신호로 읽힌다. 알사니 왕가 같은 중동 부호와 실리콘밸리 기업인의 호화 저택이 즐비한 캘리포니아에선 초부유층이 떠나고 있다.
캘리포니아 초부유층은 가시화 단계에 들어간 ‘억만장자세’ 도입을 우려하고 있다. 전미서비스노조 서부의료지부(SEIU-UHW)는 캘리포니아에서 순자산 10억 달러(약 1조4700억원) 이상 부호들로부터 자산의 5%를 일회성 세금으로 징수하는 내용의 억만장자세를 신설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주민투표 성립 요건은 87만4641명의 서명인데, SEIU-UHW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16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주민투표 성립 요건의 2배가량을 충족시킨 것이다. 선거관리 당국은 다음 달 말까지 주민투표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 승인되면 오는 11월 3일 중간선거와 함께 주민투표가 치러진다.
캘리포니아 부호 억만장자세 불만
SEIU-UHW는 억만장자세로 1000억 달러(약 147조원)를 징수해 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억만장자세를 내야 할 초부유층은 정작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거물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스 CEO,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는 이미 다른 주로 이주했거나 주소지를 옮길 계획을 세웠다. 미국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부호 214명 중 억만장자세 도입을 피해 이미 주소지를 옮긴 최소 6명으로부터 징수할 수 있었던 금액은 270억 달러(약 39조7000억원)로, SEIU-UHW의 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 충당 추정액의 27%에 해당한다.
캘리포니아를 떠난 초부유층 상당수가 ‘조세회피처’로 택한 곳은 플로리다였다. 플로리다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술과 금융 기반 시설을 확충해 실리콘밸리 거물은 물론 미국 동북부와 유럽, 남미의 부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기후가 온난하고 마이애미·올랜도·파나마시티 등 대도시가 있는 플로리다는 소득세와 상속세를 징수하지 않아 세계 부호들의 선호도가 높다. 뉴욕의 부동산 재벌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집권 1기였던 2019년 10월 소셜미디어에 뉴욕의 조세 제도를 비난하며 플로리다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생활비 감담 못한 중산층 이탈
문제는 플로리다의 소득계층이 기형적으로 변화하는 데 있다. 초부유층이 유입돼 생활 물가가 상승하자 중산층 이탈이 시작됐다. 제조업보다 관광·서비스업에 치중된 산업 구조상 양질의 일자리도 늘지 않아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카리브해를 낀 반도 형태의 플로리다에서 빈번한 폭풍우 탓에 필수적인 주택보험료도 집값을 따라 상승해 전반적인 생활 물가를 끌어올렸다. 이에 44세 이하 근로소득자의 순유출이 플로리다에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에서 월세 2000달러(약 294만원)를 내고 침실 1개짜리 임대 아파트에 거주했던 시드니 버클리는 지난해 9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35만5000달러(약 5억2000만원)짜리 주택을 구입해 이주한 뒤 생활고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는 매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기존 월세보다 100달러(약 14만7000원)를 더 내고 있지만 보험료와 재산세를 대폭 줄였다고 WSJ에 말했다. WSJ는 “플로리다의 인구 증가세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한 중산층 이탈로 꺾이기 시작했다”며 “중산층 유출은 장기적으로 플로리다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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