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레인 25m를 72번 왕복...내년엔 가능하겠죠?
2026.05.08 15:31
사무실에서는 늘 숨이 찹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업무들과 복잡한 이해관계, 해결되지 않는 크고 작은 사건들 사이에서 종종 이대로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숨은 허파 깊숙한 곳까지 닿지 못하고 코끝에서 턱 하고 막혀버립니다. 그럴 때면 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가 된 기분입니다.
그런 제가 다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숨이 가쁘게 차오를 수 있는 새벽의 수영장입니다. 지난 3월, 여러 핑계를 뒤로하고 다시 수영복을 챙겨 입었습니다. 새벽 5시 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30분간 따릉이 페달을 밟아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골목을 지나고, 이제 막 셔터를 올리는 가게들 앞을 스쳐 가는 그 길은 단순한 준비의 시간이 아닙니다. 일상의 질식으로부터 빠져나와 나만의 '해방구'로 향하는 '비상구'입니다.
'나도 한강을...' 어느 날 찾아온 뜨거운 열망
| ▲ 배우 진서연씨가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기어코 한강 횡단에 도전하는 장면. |
| ⓒ tvN |
요즘 수영에 마음을 쏟다 보니 제 유튜브 알고리즘도 온통 수영 콘텐츠로 가득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무쇠소녀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특히 한 장면이 마음을 깊이 건드렸습니다.
물 공포증이 있는 배우 진서연씨가 온몸을 덜덜 떨면서도 기어코 한강 횡단에 도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녀의 영법은 빠르지도, 우아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한강을 건넜습니다. 물살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두 팔을 휘저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말입니다.
'나도 한강을 건너보고 싶다.'
그 생각은 충동에 가까웠습니다. 100m도 한 번에 완영하지 못하는 서툰 실력이면서도, 열망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안전한 레인 안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 정해진 코스도, 방향을 잡아주는 가이드 레인도, 몸을 기대 쉴 벽도 없는, 바닥도 닿지 않는 한강 위에서 제 몸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요?
잔잔하지 않은 물결과 만만치 않을 조류 속에서, 비록 지금은 숨이 차서 레인 끝에 매달려 헐떡이고 있지만, 진심을 다해 나아간다면 저 역시 그 도도한 한강 위에 제 몸을 온전히 띄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그런 희망을 품어봅니다.
마음을 정했으니 목표도 잡아봅니다. 제가 찾아낸 이정표는 '한강 크로스 스위밍 챌린지'입니다. 참가 자격은 '수영으로 2000m 완주 가능자'. 코스는 잠실대교 남단 수중보 도선장 인근에서 출발해 한강 북단의 반환점을 돌아오는 약 1800m의 여정입니다. 대회일은 2026년 6월 20일 또는 21일 중 하루인데, 올해 대회는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으니 저는 2027년 대회를 목표로 삼기로 했습니다.
| ▲ <무쇠소녀단> 한강 횡단 수영을 끝낸 진서연. |
| ⓒ tvN |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1800m. 수영장 레인이 25m이니 72번을 왕복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지금 저는 4~5번 왕복이면 벽을 붙잡고 숨을 골라야 합니다. 참가 자격인 2000m에 비하면 지금 제 실력은 10분의 1 수준도 채 되지 않는 셈입니다. 1800m는 지금의 저에게 아득한 벽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벽 앞에 당당히 서기로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겁은 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겁은 나는데 그 겁보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컸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하루 정직하게 연습량을 늘려간다면, 2027년 6월의 어느 날 저는 마침내 한강 횡단을 무사히 완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도전은 단순히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이루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제 몸과 마음에 새기는 일, 그 과정 자체가 목적입니다.
1년간의 기록을 시작하며
내년이면 저는 어느덧 쉰 살, 지천명(知天命)입니다. 쉰이라는 숫자를 입안에서 굴려봅니다. 참으로 생경하고 낯섭니다. 아직도 제 안에는 서른 살의 제가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거울을 보면 눈가의 주름과 흰머리가 나이를 조용히 증언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모두들 100세 시대라 하니, 쉰이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셈입니다. 하루로 치면 오전 업무를 마치고 이제 막 맞이한 '점심시간'쯤 되는 것이지요.
돌아보면 마흔이 넘은 이후의 제 삶에는 저만의 목표가 희미했습니다. 가족의 목표, 회사의 목표. 그것들을 제 것인 양 여기며 달려왔습니다. 이제 인생의 오후를 시작하기 전, 이 소중한 점심시간에 오랜만에 다시 저 자신만을 위한 목표를 정해보려 합니다. 타인의 기대가 아닌, 제 근육과 심장이 증명해 줄 수 있는 정직한 성취를 향해서 말입니다.
옛말에 '병은 알려야 낫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고재비'(무엇이든 하려고 드는 사람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병에 걸려버렸습니다. 쉰 살이 되는 내년에 한강을 횡단하겠다고 이렇게 기사까지 내고 나면, 포기할 도리가 없어집니다.
오늘부터 내년 대회까지의 과정을 연재 기사로 남겨보려 합니다. 아마 한 달에 한 번쯤 올라올 것 같습니다. 단순히 거리를 늘려가는 훈련 일지가 아닙니다. 쉰 살을 맞이하는 한 남자가 물속에서 건져 올리는 성찰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잘 될 거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숨이 차서 포기하고 싶은 날도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 볼 생각입니다. 비겁하고 나약한 순간들까지도 결국 제 인생 후반전을 풍성하게 해줄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으니까요. 대단한 감동을 약속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것만은 약속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100m도 못 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초보 수영인이지만, 1년 뒤 한강 횡단을 마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그 순간을 향해 오늘 첫 스트로크를 시작합니다. 쉰 살의 첫 페이지는, 가장 정직한 땀방울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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