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35년 지킨 이준익 감독도 떠났다...'극장 권력 30년' 몰락의 역사
2026.05.09 07:00
당신이 잘 몰랐던 충무로<2·끝>
1986년 9월 18일 추석날 오후 이두용(1941~2024) 감독은 을지로 2가에서 4가 쪽으로 걸었다. 국도극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이날 그의 새 영화 ‘내시’가 국도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감독은 이날 관객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첫날 극장 앞에 모여 있는 관객수를 보면 흥행수치를 예감할 수 있어서였다.
국도극장으로 향하는 이 감독의 마음은 무거웠다. 같은 날 명보극장 등에서 개봉한 영화 ‘황진이’는 배창호 감독의 신작이었다. 배 감독은 ‘적도의 꽃’(1983)을 시작으로 ‘고래사냥’(1984)과 ‘깊고 푸른 밤’(1985) 등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은 최고 흥행 감독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는 모두 안성기라는 당대 최고 스타가 출연했다. 여배우는 장미희(‘황진이’)와 이미숙(‘내시’)이었다.
영화계는 ‘황진이’의 완승을 전망했다. 히트메이커 배 감독의 새 영화이고 정윤희 유지인과 함께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히던 장미희 출연작이었으니까. 이 감독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1970년대 액션영화를 여러 편 히트시켰고, ‘돌아이’(1985)를 흥행시킨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시’의 대중성에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그가 ‘황진이’와의 맞대결을 자처한 이유들이다.
이 감독은 지하철 을지로3가역 쪽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봤다. 그는 “역시나 ‘황진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가 보다” 생각하며 긴장했다. 을지로 4가 쪽으로 걸으며 바라봤을 때 을지로3가역 오른쪽 편은 명보극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직진하면 국도극장이었다. 이 감독은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 걷다가 사람들이 국도극장 쪽에서부터 줄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명보극장 쪽은 한산했다. 이 감독은 승리를 직감했다. ‘내시’는 국도극장에서만 15만 명을 모았다. ‘황진이’는 명보극장과 동아극장, 연흥극장, 코리아극장 등 서울 4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고도 9만 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내시’의 완승이었다. 전국 흥행 추세도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은 영화 흥행을 예측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요 영화들은 이곳 극장에서 단독 개봉하는 경우가 많았다.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 개봉은 영화사나 관객에게 일종의 보증수표였다. 영화사에게는 최소한의 흥행을, 관객에게는 볼만한 영화라는 믿음을 줬다.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이 한국 영화계를 좌지우지했다 해도 과하지 않았다.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충무로의 균열과 붕괴는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 권력의 해체와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이들 극장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고, 영화사들의 충무로 엑소더스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적용됩니다.
대기업 자본의 유입과 멀티플렉스 체인의 등장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들은 영화사를 가지고 있었다. 대한극장은 대일필림, 서울극장은 합동영화사, 피카디리극장은 익영영화사를 통해 영화 제작업과 수입업, 배급업을 겸하고 있었다. 주요 영화사 중 하나였던 동아수출공사가 1985년 역삼동에 동아극장, 1988년 장충동에 장충극장 등을 잇달아 개관한 것도 서울 중심부 극장 권력과 맞서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극장 권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4년 영상산업 진출을 선언한 제일제당그룹(현 CJ그룹)이 1996년 멀티플렉스 체인 회사 CGV를 설립하면서부터다. CGV는 1998년 서울지하철2호선 강변역 인근에 CGV 강변11을 연 후 전국에 체인망을 구축해갔다. 서울 중심부 극장들 역시 지방 주요 도시에 극장을 가지고 있거나 협력 극장들이 있었지만 연결구조는 느슨했다. 자본과 시설을 앞세운 CGV는 극장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동양그룹이 메가박스씨네플렉스를 설립하며 멀티플렉스 체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롯데그룹은 롯데시네마를 통해 멀티플렉스 체인 사업에 합류했다. 상영업 대세는 멀티플렉스 체인이었다.
서울극장은 1989년 3개관 멀티플렉스 체제를 구축하고 2003년에는 관 수를 11개까지 늘리며 시대 흐름에 조응했다. 대한극장도 2001년 멀티플렉스로 전환했다.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체인의 파상공세에 나름 맞섰으나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충무로 을지로 일대와 종로 3가 극장의 힘은 급속도로 빠지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의 중심 충무로도 빠르게 권력을 잃어갔다.
1985년 영화법 개정에 따른 신진 영화인들의 유입, 1990년대 중반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 역시 충무로의 권력 해체를 가속화했다. 이전까지 국내 영화사들은 제작과 수입을 병행했다. 영화사들이 외화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연간 5편 이상 한국 영화를 제작해야 했다. 영화사들은 한국 영화보다 수익성이 큰 외국영화 수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화사들은 날림 제작으로 영화 편수를 맞춘 후 외국영화로 돈을 벌기 일쑤였다. 소수 영화사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당시 한국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았던 요인 중 하나다. 1970년대 정권이 당근을 주며 영화사들을 제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 고안해낸 영화법 조항이 소수 영화사들의 과점체제 강화와 한국 영화 부실화를 부채질했던 거다.
1984년 영화법 개정은 영화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었다. 신진 영화사들이 충무로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크게 열린 셈이다. 기성세대와 다른 젊은 영화인들이 새 영화사를 만들며 제도권에 진입했다.
영화사 상장 붐도 충무로 이탈 부추겨
신세대 영화인들은 기존 충무로 네트워크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때마침 1990년대 삼성그룹과 선경그룹(현 SK그룹), 대우그룹 등이 영화산업에 잇달아 진출했다. 젊은 영화인 대다수는 대자본과의 결합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 서울 중심부 극장 권력은 쇠약해져 갔다. 신진 영화사들이 굳이 충무로 일대에 자리잡을 이유는 없었다.
‘미스터 맘마’와 ‘결혼 이야기’(1992)의 신씨네가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남에 둥지를 텄다. 우진필름과 동아수출공사, 익영영화사 등이 극장을 만들면서 강남에 진출한 것과 다른 움직임이었다. 2000년에는 충무로 엑소더스이자 강남 러시의 신호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1996)와 ‘쉬리’(1999)로 한국 영화계 주요 인물로 떠오른 강제규 감독의 영화사 강제규필름이 역삼동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후 영화사 봄과 싸이더스, 태원, 마술피리 등 신진 영화사들이 잇달아 강남으로 향했다. 동아수출공사와 익영영화사 같은 기성 영화사들이 떠난 데 이어 신진 영화사들까지 강남에 자리잡자 충무로 공동화는 현실이 돼 갔다. 대기업 계열 대형 투자사들, 후반작업 업체들이 영화사를 따라 강남으로 갔다.
1997년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의 홍릉 이전이 결정타이기도 했다. 영화진흥공사의 현상과 녹음 시설이 옮겨가자 영화사들에게 충무로의 매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영화사들 입장에서 충무로의 근무환경은 열악했다. 구도심이라 건물은 낡았고 주차공간은 많지 않았다. 반면 강남은 장점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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