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로 기업 줄 세우기, ‘연예인 기부금 리스트’와 닮은꼴
2026.05.09 07:01
● ‘누가 얼마나 기부했나?’ 따지는 온라인 여론 심판대
● 히어로 통제하려는 대중, 기업 옥죄는 사회
● CSR의 진화, 기부 압박 속에서 본업은 잃어버려
● 사회적 책임의 경계에서 ESG는 기업이 감당해야 할 짐
● 기업의 책임은 법과 시장 질서 지키며 이윤 창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유명인들의 기부 여부와 액수를 한데 모은 ‘기부 금액 리스트’가 퍼졌다. 이 명단은 선행의 기록이 아니라 비교와 검열의 도구가 됐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 줄 세우고, 공개 기부가 확인되지 않은 연예인에게는 “(기부금을) 왜 안 냈느냐”고 몰아세웠다. 상대적으로 액수가 적은 경우에는 “그것밖에 안 내느냐”는 식의 악성 댓글이 달렸다. 실제로 일부 유명 인사는 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라인 게시판의 표적이 됐다. 유명 축구선수 가족에게 기부 여부를 따지는 DM(쪽지)이 보내졌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한 인기 그룹은 3000만 원을 기부하고도 “세 명이서 고작 그것뿐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재난 앞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지만 온라인 공간은 어느새 선의를 경쟁시키고 액수를 심판하는 곳으로 변질됐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는 것일까. 주요 논리는 이렇다. 첫째, 유명인들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크다. 둘째, 그 영향력을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수익을 얻는다. 따라서 사회에 더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인이라서 더 많이 기부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그들에게 재해를 유발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등장과 확산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CSR)’이란 용어를 ‘신동아’ 독자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CSR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다. 1953년 하워드 R 보엔이 출간한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은 CSR을 비즈니스 영역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연구 서적이다. 그는 “기업인이 의사를 결정할 때 우리 사회의 목표와 가치 면에서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정의했다.이전까지 기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경제적·법적 책임만 지면 됐다. 그러나 CSR이 등장하면서 윤리적 책임과 자선 의무까지 기업이 짊어져야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기업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의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기업, 즉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에는 어떤 사회적 책임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법을 지키는 것은 기업이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따라서 경제적·법적 책임이 기본 책임이 될 수밖에 없으며 윤리적 책임과 자선은 강제성보다 자발성을 전제한다.
1950년대 이후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CSR의 중요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기업 역시 CSR이란 개념을 받아들이며 점차 그 역할의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뉴욕타임스’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증대(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기업이 사회적 양심을 가져야 한다며 고용 창출, 차별 철폐, 오염 방지 등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업가들을 비판했다.
프리드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 극대화뿐”
프리드먼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기업의 본질적 책임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며, 법과 시장 질서를 지키는 한 그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전부라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크게 4가지다.둘째, 사회문제 해결은 원칙적으로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빈곤, 환경, 복지 같은 사회문제는 원래 정부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런 문제는 공공정책과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업으로서는 법으로 정해진 납세의 의무만을 다하면 충분한 것이다.
셋째, 자유시장에서는 기업의 이윤추구가 사회 전체 효용 증가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저녁 식사 때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오직 부자가 되고 싶은 빵집 주인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다. 빵집 주인은 시장 경쟁 속에서 더 좋은 빵을 더 싸게 팔아야 이익을 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즉 기업이 굳이 사회적 책임을 신경 쓰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체가 사회적 기여라는 의미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현재 글로벌 대기업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매우 크며, 기술과 세상은 과거에 비해 급격히 변화하는 데 비해 법은 이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법적 책임만으로는 기업의 영향력을 세밀하게 통제하기 어려우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논지다.
시장 실패와 정책 실패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에 기업의 역할이 증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충분히 타당한 내용이다. 다만 필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더 옳은 주장이며 사회적 책임은 부수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앞서 제시한 유명인의 기부금 리스트 사례와 같은 사회문화 현상에 있다. 기업에 법적 책임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보면 대중은 기업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나아가 그게 규범화하고 사실상 의무처럼 변질되기 마련이다. 만약 기업이 어떤 사정으로 그 기대를 저버리면 비난을 퍼붓는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보는 히어로 영화에서도 많이 보던 장면이다. 힘을 가진 히어로가 세계를 구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선의로 사람들을 구하면 대중의 기대는 더욱 커진다. 어쩌다 실패하면 대중은 비난을 쏟아낸다. 결국 대중은 히어로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히어로는 인간을 신뢰하고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해낸다. 흔한 스토리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빈번하다.
경제적·법적 책임이 먼저다
두 번째 이유는 기업이 본업을 수행하면서 하는 사회 기여가 평가 절하된다는 데 있다. 사회 공헌이나 봉사는 부수적인 부분임에도 더 강조되고, 기업이 사회에 실제 기여하는 부분은 등한시된다. 필자가 컨설팅을 맡고 있는 토목 건설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는 터널을 뚫고, 교량을 세우고, 도로를 닦는 등 국가의 기반 인프라를 시공한다. 품질과 시공 능력이 국내 최상위 수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익재단을 설립해 불우이웃도 돕고 각종 사회 공헌에도 열심이다. 우리 사회가 기업에 사회적 책임 확대를 요구하면 후자의 사회 공헌만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 공공재를 건설하고 국민 모두의 효용을 높이는, 이 회사의 본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 가치가 훨씬 큼에도 말이다.심지어 경쟁사회에서 법을 준수하고 건실하게 일하는 기업임에도 아직 여력이 안 돼 윤리적 책임과 자선 의무를 지기 어려운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기여를 인정받기 어려워진다. 현 상황에서 보면 사회적 책임을 잘하는 기업은 대체로 돈이 많은 기업이다. 경제적 여력이 충분해야 여타 사회적 책임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한국 사회가 기업가정신을 높이 사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본업만 잘해도 충분히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은 고마움과 존중보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나아가 기업을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악마화하는 경향도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세 번째, CSR이 확장되면 정작 중요한 법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뒷전이 되는 것도 문제다. 공정거래, 윤리경영을 외치지 않는 기업이 없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뉴스가 기업들의 담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법적 책임을 충분히 지우지 않기 때문이다. 담합을 해서 버는 이익이 담합이 발각됐을 때 물어야 하는 벌금보다 크다는 것이다. 담합을 통한 기업의 이익은 큰 반면, 피해자는 광범위하고 개개인의 피해액도 미미하다. 이에 따른 사회적 논란도 크지 않고 사람들에게 쉽게 잊힌다. 윤리적 책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결국 법적 책임이 중요한 이유다. 법적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데 정작 사회적 책임 수준에서 논의가 이뤄지니 근본적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파산한다. 사회적 책임을 논할 여지도 없다. CSR의 시발점인 보엔도 경제적·법적 책임이 우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프리드먼의 주장대로 기업이미지 제고와 장기적 이윤 극대화를 위해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주객이 전도돼 자꾸만 CSR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현상이 불안스럽다. ESG 역시 CSR의 변형이라 볼 수 있다. 다만 ESG는 투자를 위한 기업 평가 측면이 강하다. 문제는 이 평가란 것이 결국 ‘줄 세우기’로 변질돼 앞서 언급한 ‘기부 금액 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줄을 잘 세울 수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사회적 기여를 정량화해서 공정하게 비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만약 100원 버는 A기업의 20원 기부와 50원 버는 B기업의 10원 기부가 사회적 기여 면에서 같을까, 다를까. 누가 더 리스트의 앞자리를 차지해야 할까. 쉽지 않은 판단이다.
● 1983년 출생
●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기부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