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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외모가 유일한 자산"이라는 남자들의 망상이 빚은 참극

2026.05.09 04:30

"다른 남자 못 만나게..."
아내 얼굴에 끓는 물 부은 남성
여성혐오에서 싹튼 젠더폭력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지난해 12월, 경기 의정부시 자택에서 잠든 아내의 얼굴에 끓는 물을 부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은 범행 직후 "다른 남자를 만날까 봐 얼굴을 못생기게 만들고 싶었다"며 "돌봐줄 테니 관계를 유지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준 기자


지난해 12월,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30대 태국인 여성 A씨가 얼굴과 목에 2도 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옵니다. 잠을 자다 난데없이 끓는 물을 뒤집어 썼다고 했습니다. 함께 온 40대 한국인 남편 B씨는 자신이 "넘어지면서 실수로 물을 쏟았다"고 했지만 가정폭력을 의심한 병원은 경찰에 신고했고, 조사 결과 실수가 아닌 고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범행 직후 "다른 남자를 만날까 봐 얼굴을 못생기게 만들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죠. 범행을 부인하던 남편은 결국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2009년 벨기에에선 40대 여성 패트리샤 르프랑이 자신의 집에서 황산 테러를 당합니다. 범인은 배달원을 가장해 찾아온 전 남자친구. '팔이 아스피린처럼 녹아내리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르프랑은 그후 3개월 동안 혼수 상태에 빠졌고 100여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얼굴과 몸에는 심한 화상 자국이 남았습니다. 한쪽 눈과 귀의 시력, 청력은 영영 잃었습니다.

17년의 시차를 두고 수천 ㎞ 떨어진 지역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어쩐지 닮은 점이 많아 보입니다. 범인이 상대를 죽일 작정으로 '목숨'을 노렸다기보다는 영구적인 '안면 손상'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과거) 연인이나 부부 같은 친밀한 관계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일반적인 폭행과 달리 젠더폭력의 관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네가 감히! 나를 거절해?" 산 테러 피해자, 여성이 80%



산 테러 피해자 지원단체인 영국의 국제 비정부기구(NGO), ASTI(Acid Survivors Trust International)도 이런 여성 대상 화상 테러, 산 테러를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싹트는 전형적인 젠더폭력으로 규정합니다. ASTI에 따르면 전 세계 산 테러는 연간 약 1,500건 발생하는데 피해자의 75~80%가 여성입니다. 인도,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 여성 인권이 취약한 국가에서 발생 빈도가 높고 피해자 상당수가 더 큰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아 실제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행 동기로는 주로 구애 거절, 이별이나 이혼 요구에 대한 보복이 꼽힙니다.

2009년 전 남자친구에게 황산 테러를 당한 벨기에 여성 패트리샤 르프랑. 로이터 유튜브 캡처


패트리샤 르프랑은 2024년 "집에 갇혀 가해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다"며 산 테러 피해자 화보 제작 캠페인의 모델로 나섰다. 로이터 유튜브 캡처


예방의학 전문의인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도 일련의 사건을 성차별과는 결이 다른 "여성혐오, 여성멸시 범죄"라고 정의합니다. 김 위원장은 저서인 '주기율표 아이러니'에서 "여성의 '노(NO)'를 견딜 수 없고 여성이 자신보다 잘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병약하고 비뚤어진 에고(ego)와 '여성에게는 외모가 유일한 자산'이라는 망상이 결합했을 때" 산 테러가 벌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여성을 내 말을 들어야 하는 열등한 대상으로 보는 인식과 내 요구를 '네가 감히!' 거절한다면 외모와 몸을 망가뜨려서라도 집에 가두고 통제, 지배, 소유하겠다는 왜곡된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겁니다.

김신현경 서울여대 학부대학 교수도 이 사건을 "여성혐오와 결혼이주여성의 정치적 취약성을 악용한, 인종주의가 결합된 범죄"라고 지적합니다. 실제 태국인 여성 A씨의 남편 B씨는 "(다친 너를) 돌봐줄 테니 관계를 유지해달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산 테러 피해자 지원 단체가 피해자 얼굴을 공개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는 것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산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가해자의 범행 의도대로 살지 않겠다는 피해자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르프랑도 2024년 "집에 갇혀 가해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며 산 테러 피해자 화보 제작 캠페인의 모델로 나섰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 아닌데... 처벌은 미약



특정 국가에서 발생 빈도가 높을 뿐, 산 테러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5년 경기 광주시에서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에게 염산이 담긴 우유팩을 던진 30대 남성이 있었고, 2017년엔 경기 성남시에서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여성에게 염산을 뿌린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2019년엔 한 어린이용 만화책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염산 테러를 가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가 전량 폐기되는 사건도 있었죠. 2020년 서울에선 70대 남성이 스토킹을 하던 30대 여성이 일하는 곳을 찾아가 염산을 뿌렸다가 구속됐습니다. 불과 최근 10년 내 있었던 일들입니다.

출판사 대원씨아이 브랜드 대원키즈가 2019년 12월 출간했다가 논란이 일자 전량 회수 및 폐기 결정을 내린 어린이용 만화책 ‘태경TV 학교탈출’.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염산을 뿌리는 장면이 담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그럼에도 처벌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국내의 경우 통상 특수상해 혐의가 적용되는데 특수상해는 형량 자체가 1년 이상 10년 이하로 스펙트럼이 넓은 데다 여러 감형 사유를 참작해 3년 안팎의 징역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검찰은 3월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태국 여성의 남편 B씨에게도 징역 3년을 구형했습니다. 피해자가 법원에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혔고 B씨 측도 아버지 등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며 선처를 호소한 점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수사기관과 사법당국이 친밀한 관계의 범죄 특성을 보다 면밀히 살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김 교수는 "가정폭력처벌법에 '가정의 평화와 안정 회복'을 지향한다는 문구가 있듯이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경우 관련 법이 여전히 피해자 안전이나 가해자 처벌보다 가정 유지를 우선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상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히 태국 여성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결혼이주여성이라면 언어나 체류, 경제적 문제에 있어 남성에 대한 의존성이 굉장히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압박이 처벌 불원 의사로 나타난 것일 수 있다"며 "사인 간의 상해와는 다르게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진 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고 좀 더 관계의 맥락을 감안해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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