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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 빗나간 삼성전자 실적, 폴리마켓은 맞혔다

2026.05.09 00:02

[이준기의 빅데이터] 예측시장 적중률
[사진 AI 생성 이미지]
지난 4월 말 발표된 삼성전자의 2026년 1분기 실적은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증권가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영업이익 38조5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실제로 발표된 수치는 57조2000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이 700%를 웃돌며 사실상 수직 상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 속도와 규모를 정확히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반도체 업황을 매일 들여다보는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조차 실제 수치의 67% 수준에 그쳤다. 이른바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 시장 기대치와 실제 실적의 괴리)’는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겠지만, 이번엔 특히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폴리마켓(Polymarket)이라는 미국의 예측 베팅 사이트에서는 실적 발표 직전, 삼성전자가 애널리스트 컨센서스를 뛰어넘을 확률이 90%를 넘어서고 있었다. 실적 발표 수 주 전부터 AI 메모리 업황에 밝은 공급 업체 관계자, 반도체 장비 업계 종사자, 해외 기관 트레이더 등이 속속 베팅에 가세하면서 그 확률은 꾸준히 올라갔다. 월가 전문가들이 집단적으로 보지 못한 것을, 자기 돈을 거는 사람들은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널리스트는 기업과 관계 등 편향 발생
폴리마켓이 생소한 독자도 많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미래의 특정 사건에 대해 실제 돈을 걸고 예측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각 사건은 ‘Yes’와 ‘No’라는 두 종류의 계약으로 나뉘고, 가격은 0달러에서 1달러 사이에서 형성된다. 만약 어떤 계약이 35센트에 거래된다면, 이는 시장이 해당 사건의 발생 확률을 35%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1000주 계약을 350달러에 매입했다면, 결과를 맞혔을 때는 1000달러를 돌려받아 650달러의 순수익을 올리고, 틀렸을 때는 350달러를 전액 잃는 구조다. 주식처럼 결과 확정 전 언제든 중간에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도 있다. 사용자가 직접 시장을 개설할 수는 없지만,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플랫폼이 이를 검토해 공식 시장으로 만드는 구조다. 현재 폴리마켓에서는 스포츠 결과, 원유 가격 등의 특정 가격뿐만 아니라 누가 이번 에미상을 받을지, 각국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될지 등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베팅이 진행되고 있다. 폴리마켓 외에도 유사 플랫폼이 존재한다. 칼시(Kalshi)는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공식 규제를 받는 합법적 예측 시장으로, 미국 내 40개 이상의 주에서 운영된다. 메타큘러스(Metaculus)는 돈을 걸지 않고 점수와 평판으로 운영되는 연구 중심 예측 플랫폼으로, AI 안전과 과학기술 분야의 장기 예측에 특화되어 있다. 세 플랫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집단 지성을 가격에 담아낸다.

그렇다면 이 예측 시장이 정말로 월가 전문 애널리스트보다 더 잘 맞히고 있을까? 위의 삼성전자 어닝 예측은 우연한 결과의 하나일까? 싱가포르 국립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칭화대 공동 연구진이 지난 3월 발표한 논문 ‘어닝 게임에서 이기기’는 이에 대한 실증적 답변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기업 실적 예측을 놓고 예측 시장과 애널리스트를 동일한 조건에서 처음으로 직접 비교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5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폴리마켓에서 거래된 미국 기업들의 469개 분기 실적 예측을 분석한 결과, 예측 시장의 방향 적중률은 78.5%로 나타났다. 반면 애널리스트 컨센서스를 동일한 방식의 확률 예측으로 환산했을 경우의 적중률은 43.7% 수준에 머물렀다. 예측 정확도를 나타내는 ‘브라이어 스코어(Brier Score)’에서도 예측 시장은 애널리스트 대비 56% 낮은 오차를 기록했다.

전문가를 뛰어넘는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순한 집단 지성의 힘일까? 연구진은 네 가지 메커니즘을 지목한다. 첫째, 애널리스트의 구조적 편향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과의 관계 유지, 투자은행 업무 수주 등의 이해관계로 인해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예측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즉, 컨센서스가 기업이 살짝 넘어설 수 있는 ‘맞춤형 목표치’에 수렴하는 구조적 문제다. 둘째, 예측 시장은 24시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새로운 뉴스, 공급망 데이터, 업계 소문 하나하나가 즉각 가격에 반영되는 반면, 애널리스트 리포트는 분기에 몇 차례 갱신될 뿐이다. 셋째, ‘대중의 지혜’가 작동한다. 해당 기업의 직원, 고객, 공급업체 관계자, 경쟁사 직원까지 수천 명이 각자가 아는 파편적 정보를 가격에 녹여내면서, 어떤 전문가도 단독으로는 갖지 못하는 집단 지성이 형성된다. 넷째, 예측 시장은 산업 전반의 거시적 흐름보다 개별 기업의 미시적 신호를 더 빠르게 포착해 가격에 반영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예측 시장의 냉정함이 한국 독자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가왔던 순간이 있었다. 지난 2월 열린 제68회 그래미상에서 블랙핑크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함께한 ‘아파트(APT.)’가 K팝 사상 최초로 그래미 4대 본상인 제너럴 필즈 후보에 올랐을 때였다. 미국 빌보드 HOT 100에서 최고 3위,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 빌보드 차트 34주 장기 차트 인이라는 기록적 성적을 바탕으로, 미국 주요 매체들도 수상 가능성을 우위에 뒀다. 국내 팬들과 언론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폴리마켓에서 ‘아파트’의 수상 확률은 시상식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낮게 수렴했다. 그래미상 투표인단이 대중적 인기보다 음악성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을 가진다는 점, 강력한 경쟁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글로벌 베터들은 냉정하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다. 결국 ‘올해의 레코드’는 켄드릭 라마가, ‘올해의 노래’는 빌리 아일리시가 가져갔고, ‘아파트’는 3개 후보 부문 모두에서 무관에 그쳤다. 팬덤의 열망과 예측 시장의 냉정한 확률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클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물론 예측 시장이 만능 수정 구슬은 아니다. 심각한 부작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폴리마켓 군사·안보 관련 시장에서 확률이 35% 이하인 2500달러 이상의 대형 베팅 성공률이 52%에 달한다. 이는 전체 정치 시장 평균 25%의 두 배, 플랫폼 전체 평균 14%의 약 네 배다. 최근 이란과의 전쟁에서 휴전설이 나오기 직전 대량의 원유 선물가격 베팅이 있었던 사례와 마찬가지로, 연구진은 이러한 패턴이 내부자 정보에 구조적으로 취약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역 미군 병사 개넌 켄 반 다이크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 작전계획을 기밀 정보로 미리 알고 관련 계약에 집중 베팅해 40만 달러 이상을 챙겼다가 기소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예측 시장 내부자 거래 기소 사례다.

한국에서는 예측 시장이 현재 불법이다. 사행산업 규제 관련 법과 형법상 도박죄 위반이기 때문이다. 복권, 경마, 스포츠토토처럼 국가가 허가한 특수한 형태를 제외하면 불특정 미래 사건에 금전적 이해관계를 걸고 공개적으로 거래하는 행위는 규제 대상이 된다. 미국에서는 칼시가 CFTC의 정식 규제를 받는 예측 시장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반면, 폴리마켓은 오랫동안 해외 기반 플랫폼으로 운영돼 미국 사용자 접근이 제한돼 왔다. 다만 최근에는 규제 라이선스를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 재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예측 시장의 정보 집약 기능과 도박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세상 가장 빨리 읽는 자는 돈 거는 사람
이런 맥락에서 한 가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필자는 올해 서울시장 선거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정원오 전 성동구청장의 이름을 최근에야 처음 접했다. 그런데 폴리마켓에는 이미 지난해부터 ‘2026년 서울시장 선거’ 관련 베팅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었고 민주당 후보군 중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당내 경선 결과가 나오기도 훨씬 전, 자기 돈을 거는 사람들은 이미 세상의 변화를 가격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예측 시장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하나다. 세상을 가장 빨리 읽는 사람은 분석 보고서를 쓰는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돈을 직접 거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베팅하지 않더라도, 그 가격이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집단적 판단은 그 자체로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와 올 시즌 한화 이글스의 운명을 두고도, 세상은 이미 조용히 확률을 매기기 시작했다. 예측 시장은 어쩌면 미래를 맞히는 도구라기보다, 사람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창인지도 모른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후, 카네기멜론대 사회심리학 석사, 남가주대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인공지능의 기업 활용에 대해 여러 회사에 자문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AI로 경영하라』 『오픈 콜라보레이션』 『웹 2.0과 비즈니스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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