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밀실’ 덮친 한타바이러스···쥐 한 마리 없이 어떻게 번졌나
2026.05.08 16:52
대서양을 횡단하던 크루즈선 ‘MV 혼디우스’호가 거대한 ‘밀실’로 변했다. 감염된 설치류(쥐)의 배설물과 타액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진 한타바이러스가 선내를 덮쳤지만, 정작 배 안에서 바이러스 숙주인 쥐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 위 밀실에서, 바이러스는 대체 어떻게 번져나간 것일까.
7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혼디우스호에서는 사망자 3명을 포함해 총 8명의 환자가 보고됐으며 이 중 5명이 한타바이러스로 확진됐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중 유일하게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한 ‘안데스 변종’”이라면서도 “심각한 사건이지만 공중보건 위험은 낮다”고 평가했다. 사람 간 전파가 이뤄지더라도 매우 밀접한 접촉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각국 공조 속에 격리와 추적 등 통제 조치가 원활히 작동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쥐가 보이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환자가 연이어 발생하자 관심이 즉각 사람 간 전파 가능성으로 쏠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바이러스’라는 것과 ‘선박에서 사람 간 전파가 확인됐다’는 말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가 있다. 전자가 안데스 변종이 갖는 ‘가능성’을 말한다면, 후자는 배 안에서 실제로 서로에게 병을 옮겼다는 역학적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람이 옮겼느냐’보다 먼저 ‘언제, 어디서 노출됐느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단서는 시간이다. 한타바이러스는 감염 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길다. 잠복기가 1~8주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상에서 쓰러진 환자가 반드시 선상에서 감염됐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첫 사망자가 출항 전 안데스바이러스 유행지역에 머문 이력이 있고, 한타바이러스 잠복기가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잠복기 중 승선’이라는 시나리오가 시간상으로 맞아떨어진다.
두 번째 단서는 공간이다. 크루즈선은 폐쇄된 공간이다. 승객들은 같은 식당과 공용공간을 쓰며, 같은 기항지에 내린다. 여러 사람이 같은 오염원에 노출된 뒤 시차를 두고 발병하면 겉으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옮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크루즈선 같은 밀폐환경에서는 식자재나 공조 시스템, 공용 물품 등에 의한 ‘공동 노출’이 사람 간 직접 전파처럼 보일 수 있다”며 “지금 단계에서 감염 경로를 어느 하나로 단정하는 건 섣부르다”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같은 지점을 지적한다. 벤저민 브레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 바이러스연구센터 교수는 “WHO가 설치류 노출과 밀접접촉자 사이의 제한적 전파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접근을 취하는 것이 안데스바이러스 상황에 부합한다”고 봤다.
다만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코로나19와 같은 무차별적인 공기 확산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크 필더 영국 킹스턴대 교수(의학 미생물학)는 “안데스 변종의 사람 간 전파가 보고된 바는 있지만, 이는 같은 가구원 등 장기간의 매우 밀접한 접촉과 연관이 크다”며 과도한 공포에 선을 그었다.
실제로 사람 간 전파 사례였던 2018~2019년 아르헨티나 남부 에푸옌 집단발병 사태가 이를 방증한다. 당시 단일한 환경 노출(쥐)에서 시작된 감염이 파티 등 밀폐된 사교 모임을 통해 가족과 지인 등 34명에게 번졌고, 그중 11명이 사망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전파 고리는 철저히 ‘밀접 접촉망’ 안에만 머물렀을 뿐,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전반을 휩쓰는 대유행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는 이번 사태가 한국으로까지 무차별 확산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경각심마저 내려놓아선 안 된다. 한타바이러스는 낯선 전염병이 아닌, 이미 한국에 토착화된 ‘풍토병’이다. 크루즈선을 덮친 안데스 변종(치사율 35% 이상)과 달리 국내 유행 종(한탄·서울바이러스)은 사람 간 전파가 없고 치명률도 1~5%로 낮지만, 여전히 매해 300~400명 규모의 환자(신증후군출혈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감염 시 수액 투여나 혈압 유지, 산소 공급 같은 보존적 치료 외에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은 철저한 대비를 요구한다. 야외활동이나 농작업 시 풀밭에 함부로 눕지 않고, 귀가 후 즉시 옷을 세탁하고 샤워하는 등 기본 예방수칙 준수가 필수적이다. 아울러 야외활동 후 발열이나 근육통 등 의심 증상이 나타난다면 바로 병원을 찾아 조기 진단을 받아야 한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국내에는 한타바이러스 심폐증후군을 매개하는 설치류가 서식하지 않고 해외 유입 사례도 보고된 바 없어 공중보건학적 위험도는 낮다”면서도 “손 씻기 등 개인위생수칙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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