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차 세계대전의 시작: 피지컬 AI 시대와 진화하는 전쟁의 룰
2026.05.08 09:54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인류는 없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지정학적 충돌과 전쟁을 완벽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대에 따라 전쟁의 양상만 진화할 뿐이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 인구의 절반인 1억 7천만 명의 일상을 장악한 틱톡(TikTok)의 미국 사업권 강제 매각을 올해 추진하며 중국의 데이터·알고리즘 침투를 필사적으로 막아낸 것이 1차 방어전이었다면, 이번 마누스 사태는 미국의 AI 두뇌 흡수를 막아선 중국의 치명적인 역공이다. 진정한 3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은 이제 우크라이나의 참호와 이란 영토 앞바다의 항공모함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과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는 서버실과 첨단 반도체 팹(Fab)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역사적으로 미·중 양국이 정규군을 동원해 맞붙은 것은 한국전쟁이 유일하다. 이후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은 숫자로 무너지고 있다. 2021년 미국의 75% 수준까지 턱밑 추격했던 중국의 명목 GDP는 헝다(Evergrande) 사태와 기술 통제망에 갇히며 반전됐다. 2026년 4월 기준 32조 달러까지 팽창한 미국에 비해 중국은 20조 달러 선에 정체되며, 격차는 다시 62% 수준으로 벌어졌다. 신흥 강국과 패권국의 충돌을 예언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이미 경제 수치로 명백히 증명되고 있다.
이 치열한 다층적 봉쇄전은 딥테크 산업에 거대한 역설을 낳았다. 대중은 미국의 GPU 수출 통제로 중국의 AI 굴기가 꺾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딥시크(DeepSeek) 쇼크가 증명하듯, 하드웨어의 결핍은 오히려 중국이 극강의 알고리즘 효율성을 찾아내도록 강제 진화시켰다. 미국의 GPT-4 모델 훈련에 1억 달러 이상의 하드웨어 비용이 투입될 때, 중국은560만 달러의 이론적 비용으로 유사한 성능을 구현해 냈다. 미국의 제재가 역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괴물을 탄생시킨 셈이다. 실질적 토큰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최근 딥시크 V4는 OpenAI 모델 대비 출력 토큰 가격이 20배 이상 저렴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의 질적 변화다. 패권의 진짜 무대는 텍스트 챗봇을 넘어 로보틱스와 자율제조로 대변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옮겨갔다. 전 세계 신규 산업용 로봇의 50% 이상(연간 약 30만 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AI의 팔다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이 미·중 양국의 절대적 병목인 이유 역시 단순한 범용 칩 제조를 넘어, 전 세계 첨단 AI 칩 물량의 92%를 독점하며 피지컬 AI 인프라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연료는 더 이상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올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만 쏟아붓는 CAPEX는 무려 7,250억 달러(약 1057조 원)를 넘어섰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등이 추진하는 5,000억 달러(약 728조 원) 규모의 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Stargate)는 과거 인류 최고의 기술적 총력전이었던 아폴로 계획의 예산을 아득히 초월한다.
생성형 AI의 단일 질의 전력 소모량(약 2.9Wh)이 기존 구글 검색의 10배를 웃도는 상황에서, 현재 1기가와트(GW) 규모의 거대 AI 훈련 클러스터 하나를 가동하려면 원자력 발전소 1기가 통째로 필요하며 전용 변전소와 냉각 시설에만 수조 원이 투입된다. 21세기의 AI는 거대한 전력망과 냉각 시스템, 첨단 반도체가 결합된 고도의 물리적 중공업이며,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컴퓨팅 파워(Compute)는 그 자체가 새로운 기축 통화이자 국가 주권이다.
우리는 총성 없는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거대한 AI 중공업 시대에 한국은 단순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관찰자가 아니다. 우리는 글로벌 점유율의 80% 이상을 석권하며 AI 연산의 필수 혈관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승전보를 울릴 수 없다.
단순한 보조금을 넘어, 단일 단지로 세계 최대 규모인 960조 원(약 6,600억 달러)이 투입되어 16개의 첨단 팹을 건설하는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축된 대한민국의 물리적 요새다. 대만에 극단적으로 편중된 차세대 피지컬 AI(ASIC/FPGA)의 제조 병목을 한국으로 분산시켜 글로벌 공급망의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나아가 서구권의 거대 펀드 및 투자 자본과 전략적 인프라 동맹을 주도하며, 단순히 칩을 파는 국가에서 글로벌 AI 중공업의 핵심 테스트베드이자 자본 허브로 체급을 올려야 한다.
전쟁의 룰이 바뀌었다. 한국의 딥테크 생태계와 정책 입안자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쥔 압도적 점유율의 기술적 병목과 자본 유치력을 지렛대 삼아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제하는 전략적 지배자로 올라서야 한다. 21세기의 진짜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글=금융인 겸 칼럼리스트 최상현(아시아 하우스 한국 대표)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데이터 센터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