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을 믿고 선택했는데, 감시는 작동하지 않았어요"
2026.05.08 09:56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는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기자말>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녹두거리를 좋아한 청년 재현씨는 학생 활동가들이 모이는 서점에서 알바를 하고 밤늦게까지 녹두호프에서 회의와 뒤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거주지도 녹두거리로 결정하게 됐다. 공적인 신뢰를 믿고 들어간 사회주택*이었다. 처음 살았던 사회주택이 좋았기도 했고, 관악구 노후 주택들의 예측 불가능한 위험보다는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재계약 과정에서 '보증보험이 실수로 해지되었는데 괜찮을 거다'라는 운영업체의 안내를 받았다. 운영업체는 연락이 두절됐고 단전·단수 위기가 찾아왔다. 입주자들이 직접 입주자 명단을 파악하며 대책위를 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SH가 직영을 결의하면서 보증금은 지킬 수 있었지만 공적인 신뢰가 흔들렸던 그 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사회주택이란 부담가능한 임대료로 비교적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주택으로 공공이 지원하고 사회적경제주체가 공급하고 운영하는 주택이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사회주택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주거안정이라는 목적과 달리, 2024년부터 사회주택에서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 ▲ 재현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 ⓒ 민달팽이유니온 |
-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신림2동, 흔히 대학동이라고 부르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고 올해 여름 졸업을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주로 노동권 관련 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노학연대, 그러니까 노동자-학생 연대 관련 활동을 여러해 이어오고 있고 학내 인권 등 여러 권리 의제와 관련한 활동들도 함께 해왔습니다. 직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학생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대학동, 녹두거리에서 거주하신 지 얼마나 됐나요? 이 동네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기숙사 생활을 3년 정도 하다가 자취를 시작했는데 대학동에 산 건 올해로 6년째예요. 처음 이곳에 집을 구할 때 사회주택을 선택했고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사회주택입니다.
이 동네를 선택하게 된 건 일단 비용이 가장 컸어요. 서울대 근처에서 살 곳을 찾을 때 서울대입구역이나 낙성대 쪽은 굉장히 비싸거든요. 가격 대비 질을 따지면 대학동 녹두 쪽이 훨씬 낫다는 판단이었어요. 그리고 동네 자체에 대한 애정이 원래부터 있었어요. 학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들이 녹두에 있었거든요. 제가 알바를 하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도 녹두에 있고요. 학생 활동가들이 주로 모이던 녹두호프도 오랫동안 거기 있었어요. 그런 공간들이 제가 녹두를 선택한 이유가 됐죠."
| ▲ 재현 씨가 동네에서 자주 찾던 '녹두호프'의 전경 |
| ⓒ 이재현 |
- 다양한 주거지 중에서 특별히 사회주택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처음에 거주했던 사회주택이 굉장히 좋았어요. 비용도 저렴하고 시설도 괜찮아서 만족스러웠거든요. 그 경험이 있다 보니 이사를 해야 할 때도 사회주택을 먼저 찾게 됐죠. 그리고 관악구에 노후 주택이 많고 계절에 따라 드러나는 문제들도 다르다 보니 공적인 신뢰가 있는 사회주택을 선택하게 됐어요. 고시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형태라 시설도 상대적으로 나을 거라는 판단도 있었고요. 비용이 첫 번째 사회주택만큼 저렴하지는 않아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여유가 없는 조건에서 빠르게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신력 있다고 생각한 곳으로 들어간 거예요."
- 애정을 느끼는 공간들과는 반대로 동네에서 불안하거나 위험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없었나요?
"녹두 쪽이 오토바이 등 교통량은 많은데 산길이다 보니 가파르고 좁고 인도와 차도 분리가 잘 안 돼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교통 안전에 대한 불안이 있었죠.
그리고 수해 문제가 심각해요. 2022년에 도림천 수해 때 녹두에서 돌아가신 분도 계셨어요. 백화점 노동자셨는데 발달 장애인 가족과 함께 세 분이 돌아가셨죠. 그분들이 살던 반지하가 아주 멀지 않은 곳이었어요. 그때 친구들 중에도 녹두 반지하에 살던 친구들이 있어서 걱정이 됐었고요. 구조적으로도 도림천이 자연 하천으로 잘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예요.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잘 연결되지 않아서 사실상 인공하천처럼 유지되는 느낌이고, 그러다 보니 수해 위험이 더 심각해지는 측면이 있어요. 비용이 저렴한 동네지만 거주 환경의 안전이 그렇게 원만하지 않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은 낮은 곳에 위치하지만 침수 위험은 없었어요. 그것도 이 사회주택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죠. 산 위쪽에 있는 노후 주택들은 겨울에 제설도 어렵고, 교통도 잘 안 되고, 여름엔 침수 위험도 있으니까요."
- 사회주택에서의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24-25년도부터 알려진 문제인데요, 거주하시는 곳에서의 문제는 어떻게 인지하게 되었나요?
"보증보험이 중간에 해지되어 있었다는 걸 재계약 과정에서야 알게 됐어요. 운영업체에서는 직원 실수로 누락됐다고 했는데 사실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운영업체 재정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해지를 당하거나 갱신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증명된 바는 없어요. 운영업체가 입주자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해당 사실을 공유하지 않았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운영업체가 점점 어려워지더니 결국 임금 체불이 발생하고 청소 인력도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관리소장님도 임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의로만 관리를 해주시는 상황이 됐고요. 작년 말부터 그런 일들이 이어졌고 결국 운영업체가 연락 두절이 됐습니다. 단전·단수 위기도 여러 번 왔어요. 다행히 SH, 서울시와 계속 소통해서 막았지만 인터넷 요금 같은 경우는 법적으로 보장이 어려워서 입주자들이 갹출해서 미납분을 낸 경우도 있었어요."
| ▲ 재현씨가 거주하는 사회주택 전경 |
| ⓒ 민달팽이유니온 |
- 그 과정에서 입주자들은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입주자 및 퇴거자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누가 입주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SH도, 저희도 전체 입주자 명단을 갖고 있지 않았거든요. 세부 정보는 운영업체만 갖고 있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요. 최근에도 몇 달째 비어있다고 알고 있던 방에 원래 살던 입주자가 갑자기 돌아왔는데 그분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잖아요. 저희가 직접 소통해서 이분도 입주자라는 걸 SH에 전해야 했죠. 그런 일들이 생기고 입주자들을 한 명 한 명 모으면서 대응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었어요.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심했어요. 단전·단수가 언제 될지 명확하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서 대책 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죠."
- 결국 어떻게 해결됐나요?
"지난달 말에 SH 이사회에서 해당 운영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SH가 직영으로 운영하기로 결의했어요. 법적으로만 따지면 전대차 계약 구조상 SH가 책임을 져야 할 법적 의무는 없는 상황이에요. 관리 법안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공적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린 거죠. 현재 거주자가 사는 동안에는 SH가 직접 운영하고 SH 주택 관리 사업소에서 새 관리소장님이 주택을 관리해주시는 방향으로 대책이 결정됐어요.
당연히 훨씬 일찍 됐어야 할 결정이었지만 어쨌든 공적인 책임의 최소한을 그어줬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다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는 세입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로 요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이번에는 SH가 사회주택의 사업 유형과 관계없이 문제가 생겼을 때 공적으로 책임지는 방향을 마련한 거라고 해석해요."
| ▲ 재현 씨가 이번 지방선거에 요구할 세입자에게 필요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
| ⓒ 민달팽이유니온 |
- 이 경험이 사회주택, 더 나아가 공적인 주택 정책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도 했나요?
"저는 사회주택 정책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더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공적 감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어요. 운영업체에 대한 재정 건전성 감시가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도하게 위험하게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했을 때 위험 부담이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되니까요.
한편으로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생겼을 때 사회주택 자체를, 더 나아가 공적인 주택 정책 자체를 공격하는 논조로 가져가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런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제도의 미비와 운영업체의 도덕적 해이, 공공성의 부족이 겹친 문제이지, 공적인 주택 공급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니까요. 사회주택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다 민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는 건 사회주택에 대한 불신을 넘어 공공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주택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했다는 이유 만으로 공적 주택에 대한 신뢰와 필요성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공공임대든지, 건물과 시설은 공적으로 소유하면서 운영을 사회적 주체에게 위탁하는 형태든지, 다양한 형태의 공적인 주택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주택도 청년 가구의 실질적인 주거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전체 주택에서 사회주택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워낙 작아서 그런 역할을 하기 어렵잖아요."
| ▲ 재현씨가 세입자에게 필요한 주거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
| ⓒ 민달팽이유니온 |
-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변화를 바라고 계신가요?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으신가요?
"가장 시급한 건 보증금 선지급이에요. SH의 결정 덕분에 저는 보증금을 지킬 수 있었는데 그게 보장이 됐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민간 영역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보증금이 회복되지 않는 한 다른 대책들이 다 무의미하다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해요. 이러한 점에서 지난 4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임차 보증금의 최소 3분의 1이 보장될 수 있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보증금의 3분의 1이라는 보장 규모는 여전히 미진한 것 같아요.
세입자들의 보증금 보장 외에도 장기적으로는 공공임대 공급 확대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사회주택 운영기관에 대한 재정 건전성 공적 감시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해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 대한 보증보험 제도적 보장도 필요하고요. 기초의회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더라도 서울시 차원에서 SH 정책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상담 센터 확충이나 피해자 심리 치료 지원 같은 생활 지원도 시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죠. 그런 구체적인 약속을 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어요.
이건 사회주택이 아니라 민간임대주택 이야기인데요. 지인이 세들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는데, 건물주가 마음씨가 좋아서인지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해요. 그 덕분에 세입자들이 큰 문제 없이 이사를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건물주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기도 하고요. 결국 그 선의의 자리를 제도가 채워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재현씨의 보증금은 SH의 뒤늦은 결의로 지켜졌지만, 지난 해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가 없었다면 보증금을 지킬 수 있었을까. 결국 재현씨가 보증금을 공공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앞선 사회주택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와 땀 덕분일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는 결코 민간 임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공을 믿고 사회주택이라는 대안을 찾아 들어간 사람들도 단전·단수의 위협을 느끼고 보증금 반환과 퇴거 대책 마련을 위해 입주민 스스로 조직을 구성하고 대응해야 했다. 공공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는 주택이라면 보증금 보장과 같은 세입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세입자들은 6월 지방선거에서 주거 정책의 공공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그 질문을 정치에 던지고 있다.
인터뷰어: 송상기 민달팽이유니온 회원, 주택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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