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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세기 석유가 뒤흔든 국제 외교·안보 질서② [홍영식의 이슈 워치]

2026.05.08 03:29

역전된 미·소 석유 생산량 … 데탕트로 이끌어
70년대 미 석유·달러 패권 동시 흔들…사우디에 안전 보장, ‘패트로 달러’ 회복
이란 시민들이 1979년 2월 루홀라 호메이니의 사진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란 혁명으로 미국이 제재를 가하자 이란에 에너지 투자 등을 벌인 서유럽 국가들이 반발하면서 대서양 동맹은 또 흔들렸다. AFP=연합뉴스


1970년대 들어 석유시장 변동성은 더욱 커졌다. 미국의 석유 생산은 점차 줄었다. 반면 소련은 유전 개발을 지속하면서 1970년대 중반 미국의 석유 생산량을 앞섰다. 소련의 가스 생산 급증은 서독을 더 끌어당기는 요인이 됐다. 1970년대 데탕트는 이런 에너지 역학관계 변화가 그 추동력이 됐다. 미국의 에너지 권력의 약화가 소련과 더 협력토록 작용한 것이다. 1973년 미·소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시베리아 천연가스를 미국으로 운송하는 방안까지 논의했다(헬렌 톰슨 ‘질서없음’).

중동을 중심으로 1960년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70년대 석유를 본격 무기화하면서 에너지 질서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석유 메이저들의 가격 결정권을 뺏어온 것이다. 석유 생산 감소와 소비 증가가 겹쳐 미국은 중동산 원유를 수입해야 했다. 대(對)중동 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오일쇼크로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 결정적으로 금이 갔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을 계기로 아랍은 석유 생산을 줄이고,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석유 금수 조치로 보복하면서 전 세계 경제가 휘청했다. 경제 타격을 입은 일본조차 동맹 미국의 압박에도 아랍 편을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처음으로 미국과 외교적으로 갈라진 사건이었다. 유럽도 아랍을 지지했다(페르 회그셀리우스 ‘에너지 지정학’).

달러패권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비용과 복지 지출 급증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냈다. 달러 과잉 발행으로 기축통화가 흔들렸고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달라는 요청이 잇달았다. 1971년 달러를 금에 고정하고 다른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됐다. 중동 산유국들은 오일머니 관리 수단으로 달러 대신 마르크, 프랑, 엔 등 다른 통화나 금을 선택하면서 달러 수요는 급감했다.

두 위기를 동시에 맞은 미국은 중동 석유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상에 나섰다. 협상 끝에 양국은 안전보장과 달러패권 유지를 맞바꿨다. 미국은 사우디에 첨단 무기 판매, 군사훈련과 장비 제공, 왕정 보호, 오일머니의 미국 투자 보장 등을 약속했다. 사우디는 석유를 달러로 거래하고 OPEC 회원국들에도 달러로 결제토록 설득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은 ‘페트로달러’를 유지하게 됐고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를 미국 자산에 보다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미, 혁명 이란 제재…유럽, 석유 수입 지속 갈등


에너지 패권은 1979년 친미 이란 왕정이 무너지고 루홀라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으면서 또 한번의 변곡점을 맞는다. 미국은 이란을 대(對)소련 반공 거점뿐만 아니라 석유 공급원으로 삼아온 터다. 미국은 이란을 ‘걸프의 헌병’으로 지칭하고 첨단 무기들을 지원해왔다가 혁명으로 반전된 것이다. 미국 내에선 이란이 소련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까지 겹치자 미국은 이란 자산 동결,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 지점에서 미국과 서유럽 동맹 간 또 한 번 충돌이 벌어졌다. 호메이니 집권 이후에도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은 이란산 석유 수입을 지속했다. 독일 기업들은 이란 인프라 건설에 참여했다. 프랑스는 이란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했으며 유전 개발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게다가 호메이니의 망명을 허용했던 프랑스는 이란과 특수한 관계였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이란 제재에 대해 서유럽 주요국들은 반발했다. 특히 미국이 이란에 투자한 제3국 기업도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역외 조항이 문제가 됐다. 이란과 아예 거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동 에너지에 의존하는 서유럽 국가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란 혁명으로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유럽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은 마당이었다.

유럽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에 대해 소극적으로 임했다. 더군다나 1980년대 미국이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매한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지면서 유럽의 미국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추후 미국은 이란에 대한 역외 조항을 완화했다. 하지만 양측 간의 끊임없는 충돌은 서유럽의 독자노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서유럽 국가들은 중동전을 벌이던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 요청에 고개를 돌렸다. 영국은 미국이 키프로스에서 정찰기를 띄울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서유럽 국가들이 동맹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했다”고 비판했다(헬렌 톰슨 ‘질서없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미국과 서유럽의 또 다른 갈등 지점이었다. 석유 에너지 권력을 키우던 소련이 중동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미국은 나중에 9·11 테러 주범이 되는 빈 라덴을 포함한 아프간 반군을 지원하면서 또 다른 악재의 싹을 키웠다. 미국은 아울러 소련의 대중동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이라크를 은밀하게 지원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소련을 겨냥, 외부 적대 세력이 페르시아를 무력으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을 시 군사력으로 대응하겠다는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다. 중동을 관할하는 미국 중부사령부를 설치했다. 이란혁명 뒤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왕정 사우디는 적대로 돌아섰다. 미국과 사우디는 더 가까워졌다. 2차 오일쇼크 뒤 미국 요청에 사우디는 증산으로 화답했다(로버트 맥널리 ‘석유 종말은 없다’). 뒤이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에 영토 보전을 약속했다.

유럽, 소련과 가스협력 확대…미국과 갈등 심화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미·소 간 데탕트가 와해됐고 미국의 치열한 대중동 외교안보 정책에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외면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불화는 더 심화됐다. 소련과 서독은 가스 협력의 폭을 더 넓혀 트랜스-시베리안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유럽 중부뿐만 아니라 서부까지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미국은 당연히 반대하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럽 기업에 제재를 가했다. 유럽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서독은 미국의 반대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가스관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련이 에너지 수출로 벌어들이는 자금으로 군사력을 해외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우려였고 반드시 막아야 하는 과업이었다.

소련의 유럽 석유 수출이 늘자 뉴욕타임스는 ‘소비에트 연방의 석유가 서방을 분열시키다’는 평을 했다(양수영 ‘세계에너지 패권전쟁’). 에너지는 이렇게 이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또 한 번 발휘한 것이다. 석유와 가스 에너지의 힘을 절감한 미국이 에너지 자립에 나선 배경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과 분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군사작전을 두고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석유 시장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북해와 멕시코에서 석유 생산이 시작됐다. 미국은 알래스카 석유와 가스 개발 채비를 했다. OPEC 밖에서 에너지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OPEC의 가격 통제력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석유 빈곤에서 과잉으로 바뀐 것이다(‘석유 종말은 없다’). 1980년대 경제 호황의 배경이다. OPEC는 석유 생산량 쿼터제를 실시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자 사우디가 증산에 나섰고 카르텔은 붕괴됐다. 사우디가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유가 폭락을 용인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소련을 코너로 몰기 위한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③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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