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애도, 해녀의 숨···베니스비엔날레에 스며든 한국
2026.05.07 15:56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단조로’라고 번역되곤 한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에서 사전 공개된 비엔날레 본전시를 보면 주제 문구가 훨씬 많은 뜻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베니스비엔날레는 여전히 소수의(minor)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 코요 쿠오가 첫 아프리카 출신 여성 총감독이라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본전시장 곳곳에는 소수자들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케냐 출신 칼로키 냐마이는 전시 공간 바닥에서 천정까지 닿는 대형 캔버스에 거친 필체로 흑인이 그려진 그림을 총 6점 걸었다. 흑인 사진작가 아킨보데 아킨비이는 그가 사는 독일 베를린과, 아프리카 말리의 바마코,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사는 이들의 모습을 2003년부터 2022년까지 사진에 담아 역시 천장에서 크게 내걸었다. 전시장 곳곳에 보이는 영상 작품에서도 흑인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미얀마 출신 사왕웡세 양훼의 ‘People’s Desire’(2018)는 길이 6m인 설치 작업 위에 손가락만한 작은 인물들을 빼곡히 세워놓았다. 이따금 배나 관처럼 보이는 공간에 누운 인물이 보인다.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인 학살로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난 이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형상화했다.
인간의 근원이나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레바논 출신의 조아나 하지토마스와 칼릴 조리즈는 땅속의 쓰레기부터 흙, 암석 등을 주제로 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는데, 작품 전반에 보이는 흙은 인간이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자연 그 자체를 생각하게 한다.
무언가에 의지하길 원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도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됐다. 알제리계 프랑스인 카데르 아티아의 영상 및 설치 작업인 ‘Whisper of Traces’(2026)는 천장에 밧줄을 매단 공간에 여러 대륙의 무속 의식을 차례로, 또는 동시에 상영한다. 영상 중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 무속인이 태평소에 맞춰 춤을 추다 신이 내린 듯한 장면도 나온다. 무속 신앙이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과 관련됐음을 생각하게 된다.
본전시에는 마이클 주, 요이, 갈라 포라스-김 등 한국·한국계 작가들도 참가했다. 마이클 주는 2개의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That Which Evaporates All Around Us’(2026)는 마이클 주가 수십 년 간 수집한 대형 석판을 양팔저울 모양의 철제 조각 위에 올려 완성한 작품이다. 본전시장 통로 한가운데 걸린 그의 작품은 갯고사리나 성게, 불가사리 등 자연이 담긴 화석판을 소재로 삼아 본전시와 궤를 같이한다. 또 다른 작품 ‘Noospheres(OG: CR Venice)’(2026)는 블록체인 기술, 인공지능(AI) 생성 영상, 3D 프린팅을 복합한 작품이다. 3D 프린팅으로 만든 산호 모형을 바다에 넣었더니 그 모형 안에서 작은 생태계가 살아났던 모습이 영상에 나타나면서, 서로 다른 소재의 두 작품에 자연이 공통분모였음을 알게 된다.
요이는 두 편의 영상으로 구성된 ‘숨 오케스트라’(2026)를 공개했다. 요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작업 장소를 미국 뉴욕에서 제주로 옮겼고, 해녀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열 살 즈음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숨을 참았다 내쉬도록 한 영상, 나이 든 해녀들이 휴게실에 모여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선보인다. 요이는 ‘숨 오케스트라’ 연작을 “해녀에 대한 헌사”이자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설명했다.
갈라 포라스-김은 아르세날레 전시장 내 응용미술관(Applied Arts Pavilion)에서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V&A) 박물관과의 협업전을 열었다. 갈라 포라스-김은 미술관·박물관의 유물, 유물이 보존·전시되는 과정에서 유물이 원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모습에 관심을 가진 작업을 선보여왔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한국의 유물을 소재로 한 전시 ‘국보’가 이번에는 V&A 박물관 소장품을 소재로 확장됐다. ‘Shakers’(2026)는 V&A 박물관이 소장한 꼭두각시 인형을 그린 뒤 이를 공중에 매단 작품이다. 전시공간 위층에서 발을 구르면 꼭두각시는 움직이는데, 움직일수록 보존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박물관의 실제 꼭두각시와는 대조된다.
자르디니 전시장에 있는 한국관도 이날 사전 공개됐다. ‘해방공간 : 요새와 둥지’는 최고은의 동파이프 설치작품 ‘메르디앙’과 노혜리의 반투명 직물 오간자(oganza) 조각 4000여개로 짠 설치·수행작품 ‘베어링’으로 구성됐다.
한국관 안팎으로 뻗어나간 동파이프가 먼저 눈에 띈다. 동파이프는 한국관 내부를 뚫고 외부로도 뻗어 나간다. 외부의 적을 막는 요새에 필요한 수단 같으면서도 침처럼 혈을 순환시키고 치유할 수 있는 매개체를 형상화했다. ‘베어링’의 오간자 막은 한국관 내부에 장막처럼 둘러쳐져 관람객을 이끄는 동선을 만든다. 중간중간 수행작업을 할 수 있는 ‘스테이션’이 8개 자리한다.
‘애도하는 스테이션’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설치 작업 ‘Funeral’(2018)이 눈길을 끈다. 관람객이 자리에 앉아 바닥에 설치한 작업을 내려다 보게 했다.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누군가를 애도할 때 취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흰 눈이 쌓인 산에 검은 나무가 심긴 듯한 모양의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장면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동파이프는 한국관 옆 일본관을 향해서도 뻗어 나간다. 한국관과 일본관의 경계를 나누는 관목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일본관 간 첫 협업 사례이기도 하다.
일본관은 5㎏ 아기 인형을 다양한 형태로 전시한 ‘달 아기, 풀 아기’를 선보이고 있는데, 한국관에는 3·1 운동을 상징하며 만세를 부르는 아기와 5·18 민주화운동 때처럼 주먹을 쥔 아이가 앉아있다. 한국관은 전시 기간 일본관의 아기 인형을 매일 한국관으로 산책시키는 퍼포먼스 등의 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507134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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