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삶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가보면 좋을 곳
2026.05.07 08:51
잡티 하나 없는 햇발 속으로 직접 들어가려고 예천 용문면 내지리에 자리한 '소백산 하늘자락공원 전망대'로 출발했다. 윤장대를 품은 용문사와 가까운 곳으로 지난번 다른 일정 때문에 들르지 못해 다시 간 것이다. 용문사와 함께 둘러보기 적당한 곳이다.
소백산 하늘자락 전망대
| ▲ 나선형으로 오르는 '소백산 하늘자락 전망대' |
| ⓒ 오순미 |
해발 730m에 위치한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은 공원, 전망대, 호수 둘레길로 이어진다. 전망대는 정상 부근까지 차로 오른 후 설치된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가면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데크길이 재밌다는 듯 아빠와 함께 온 초등학생 남매의 재잘거림만 고요 속에 퍼졌다. 꾸밈없는 재잘거림과 천천히 지나가는 바람 때문인지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한결 가뿐했다.
어디서 본 듯한 전망대는 안성시 '금광호수 하늘전망대'를 떠올리게 한다. 달팽이집처럼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예천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형성한 '어림(임금이 임한)호'와 소백산, 월악산 등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 정상을 차지한 호수도 독특하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세가 관현악의 풍부한 음색처럼 아름답다. 가까운 산은 밝고 경쾌한 바이올린, 중간 부분은 묵직한 더블베이스나 바순, 먼 산은 연주 전반에 극적인 효과를 가미하는 팀파니 소리를 연상케 하는 산빛이다. 짙고 옅은 산색이 거스러미를 다듬는 줄처럼 마음을 정돈해 준다.
| ▲ '소백산 하늘자락 전망대'에서 바라본 데크길과 '어림호', 산세 |
| ⓒ 오순미 |
배려하면서도 적당히 드러낼 줄 아는 산빛이 곧 균형이며 조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소백산 하늘자락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산빛은 사람을 유순하게 만들었다. 산 뒤의 산이, 그 산 뒤에 또 산이 서로 다른 빛깔이지만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제대로 선택한 본보기인 양 제법 잘 어울렸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건 익숙한 삶과 거리를 두는 일이기도 하다. 아래에선 단독으로 보이는 길과 집, 사람과 삶이 위에서는 한눈에 들어온다. 시시콜콜 보이던 것이 거리가 멀어지면 시야에서 작아진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 답을 찾지 못한 고민, 감당하기 어려운 관계 같은 것들이 위에선 단순하게 보인다. 거리에 따라 같은 상황이나 사람이 달리 보이는 것은 아마 감정의 열기가 한풀 꺾여 부드러워진 탓일 게다.
어쩜 우린 가까이 보이는 삶만 바라보고 가는지도 모른다. 멀어져야만 보이는 게 분명 있을 텐데 가까운 곳만 보느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오히려 멀어졌을 때 보이는 그것이 나를 새로고침하게 될 방향 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며 초간정으로 향했다.
초간 선생의 정자 초간정
| ▲ 초간 권문해 선생이 지은 '초간정' |
| ⓒ 오순미 |
예천 용문면 죽림리에 위치한 '초간정'은 조선 선조 15년(1582)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 선생이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정자다.
주차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계곡을 차지한 암석 위에 축대를 쌓은 후 정면 3칸으로 지은 정자와 마주한다. 마루에 앉으면 빛바랜 난간, 계곡을 흐르는 물, 선명한 숲이 시선을 붙잡는다. 따뜻한 햇살과 정겨운 새소리를 타고 메마른 마음을 축이는 차향과 흰 종이 위에 머문 먹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듯하다.
이곳은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공간으로 건축한 듯하다. 권문해 선생도 초간정에선 복잡한 생각을 흘려보내는 데만 집중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만큼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곳이다.
| ▲ 입구에서 바라본 '초간정"과 내부 모습 |
| ⓒ 오순미 |
잠시 멈춘 사이, 질문은 많은데 묻지 못한 감정들이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뜻 수용하지 못해 긴긴밤 몰입했던 생각들이 다른 얼굴로 다가와 평안해지는 기운이랄까. 내 자리에서만 바라볼 때는 내 상처만 깊고 내 손해만 크다고 단정지었다.
권문해 선생은 이곳에 들르는 모든 이가 상처와 손해라고 믿었던 기억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자에 깃든 평온이 한없이 푸근하다는 걸 느끼며 그리 짐작되었다.
삼강나루 삼강주막
| ▲ 3강이 만나는 삼강나루에 위치한 '삼강주막'.캠핑장, 공원, 문화전시관으로 구성. |
| ⓒ 오순미 |
여정의 끝에서 만난 '삼강주막'은 예천 풍양면 삼강리길에 있다. 삼강(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모이는 삼강나루.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과 보부상, 사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주막이다. 낙동강변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주막은 2007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이효석 단편 '메밀꽃필 무렵' 두 주인공)가 떠오르는 조각상이 반기는 이곳은 머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스치거나 인연을 맺은 장소일 테다. 수많은 사연이 겹겹이 쌓인 공간에서 14개월 되었다는 아기는 작은 발로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시간을 쓰는데 열중했다. 거침없는 아기의 행보처럼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러했을까?
| ▲ '삼강주막'을 상징하는 조각상과 뒷편에 조성된 공원 모습. |
| ⓒ 오순미 |
이미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을 놓지 못해 전전긍긍하진 않았는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되뇌며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서성거리진 않았는지. 너무 가까워서 다른 시각을 떠올리지 못해 머뭇거리진 않았는지. 이런 저런 추측 사이로 시대는 바뀌었으나 살아가는 방식은 여전하다는 생각에 미치자 거침없는 아기의 발걸음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 걸음만큼은 오래도록 막힘없길 바라는 응원이 담긴 시선이었다.
하루 만에 세 곳을 들러오는 동안 마음은 멈췄다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높은 곳에서 삶을 내려다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시간을 느끼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삼강이 만났다 흘러가듯 삶도 흘러가는 과정일 뿐인데 그 사이에서 난 얼마나 숨 고르기를 자주 했을까? 햇살이 좋아서란 핑계여도 괜찮고 산빛이 흡족해서란 구실이어도 무방하니 이젠 종종 멈춰볼 테냐고, 가끔은 익숙한 삶과 거리를 둬보는 건 어떻겠냐고도 물었다. 그래야 오해가 웃자라지 않고 용서가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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